어느 날 저녁(어머니가 늘 그렇듯 외출하셨던 날), 우리는 평소처럼 스타킹과 줄자, 밀랍 조각, 뚜껑에 성 바오로 성당이 그려진 상자, 그리고 악어 책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때 페고티가 나를 몇 번 쳐다보다가 입을 열어 뭔가 말을 하려는 듯하더니 말없이 그냥 두었다. 나는 그저 하품을 하는 줄로만 알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꽤 놀랐을 것이다. 그러고는 그녀가 달래듯 말했다.
"데이비 도련님, 저랑 같이 야머스에 있는 제 오빠네 집에 가서 이 주일 정도 지내다 오는 건 어떠세요? 정말 신나는 일 아니겠어요?"
"페고티, 당신 오빠는 좋은 분이신가요?" 나는 일단 확인해 보려 물었다.
"아유, 얼마나 좋은 분이신데요!" 페고티가 두 손을 치켜들며 외쳤다. "게다가 바다도 있고, 배랑 선박들도 있고, 어부들도 있고, 해변도 있고, 같이 놀 수 있는 햄도 있으니까요……"
페고티는 내 첫 장에서 언급했던 조카 햄을 말한 것이었지만, 그녀는 그를 마치 영문법의 한 조각처럼 불렀다.
그녀가 늘어놓은 즐거운 일들에 나는 얼굴이 상기되었고, 정말 신나는 일이겠지만 어머니가 뭐라고 하실지가 문제라고 대답했다.
"그럼 제가 1기니를 걸고 장담할게요." 페고티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보내주실 거예요. 원하시면 어머니가 집에 오시는 즉시 여쭤볼게요. 그럼 됐죠?"
"하지만 우리가 없는 동안 어머니는 어떻게 하죠?" 나는 작은 팔꿈치를 식탁에 괴고 따지듯 물었다. "혼자서는 지내실 수 없잖아요."
만약 페고티가 갑자기 스타킹 뒤꿈치에서 구멍을 찾고 있었던 거라면, 그 구멍은 아주 작아서 꿰맬 가치도 없는 것이었을 게 틀림없다.
"저기요! 페고티! 어머니는 혼자 못 지내신다니까요."
"아이고, 얘도 참!" 마침내 페고티가 다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몰랐니? 어머니께서 그레이퍼 부인 댁에서 이 주일 동안 머무르기로 하셨단다. 그레이퍼 부인 댁에 손님이 많이 오기로 했거든."
아! 그런 거라면 난 당장이라도 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그레이퍼 부인 댁(바로 그 이웃집이었다)에서 돌아오시기만을 몹시 안달하며 기다렸는데, 이 엄청난 계획을 허락받을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예상보다 훨씬 덜 놀라신 어머니는 흔쾌히 동의하셨고, 그날 밤 모든 일이 정리되었으며 방문 기간 동안의 식비와 숙박비도 지불하기로 했다.
우리가 떠날 날이 곧 다가왔다. 기대감으로 열병을 앓듯 들떠 있던 나에게조차 그날은 무척 빨리 찾아왔다. 혹시라도 지진이나 화산 폭발 같은 엄청난 자연재해가 일어나 이 여행을 가로막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반쯤 섞인 기대였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떠나는 짐마차를 타고 가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밤새 옷을 껴입고 모자와 장화를 신은 채 잠들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지금 가볍게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행복했던 집을 떠나고 싶어 얼마나 안달이 났었는지, 그리고 영원히 떠나버린 그곳에 대해 내가 얼마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지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뭉클하다.
짐마차가 대문 앞에 왔을 때 어머니가 서서 내게 입을 맞추시던 장면을 기억하면 기분이 좋다. 어머니와, 그전까지 한 번도 등을 돌려본 적 없던 이 옛집에 대한 고마운 애정 때문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도 함께 우셨고, 내 가슴에 맞닿은 어머니의 심장 박동을 느꼈던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짐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어머니가 대문 밖으로 달려 나오셔서, 한 번 더 입을 맞추시려고 마차를 세우라고 부르시던 모습을 떠올리면 흐뭇하다. 어머니가 진심 어린 사랑을 담아 얼굴을 들어 내게 입을 맞춰 주시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행복하다.
우리가 어머니를 길가에 남겨두고 떠날 때 머드스톤 씨가 어머니께 다가와, 어머니가 그렇게 감상적으로 구는 것에 대해 따지는 듯했다. 나는 짐마차 덮개 너머로 뒤를 돌아보며 그 사람이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반대편에서 역시 뒤를 돌아보고 있던 페고티도 전혀 못마땅해하는 눈치였는데, 마차 안으로 다시 돌아온 그녀의 얼굴이 그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페고티를 바라보며 이런 상상에 빠져 있었다. 만약 페고티가 동화 속 소년처럼 나를 길에 버리는 임무를 맡는다면, 나는 그녀가 흘리고 간 단추들을 따라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