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뉘르주가 파리 귀부인에게 짓궂은 장난을 쳤으나 오히려 본인에게 손해가 된 이야기
그 이튿날이 성체 축일이라 모든 여인이 화려한 차림으로 한껏 멋을 뽐내는 날이었다는 점을 기억하라. 그날 부인은 진홍색 새틴으로 만든 아름다운 드레스에 아주 값비싼 흰색 벨벳 속치마를 입었다. 축일 전날, 파뉘르주는 이리저리 찾아다닌 끝에 발정 난 암캐 한 마리를 발견해 허리띠로 묶어 방으로 데려와 하루 종일 밤새도록 아주 잘 먹였다. 아침이 되자 그는 개를 죽여 그리스의 지오만서들이 아는 부위를 챙긴 다음, 최대한 잘게 썰어 잘 숨겨 가지고 부인이 관례대로 행렬에 참석하러 올 교회로 향했다. 부인이 들어오자 파뉘르주는 아주 정중하게 인사하며 성수를 찍어주었고, 부인이 짧은 기도를 마치자 곧 부인의 자리 옆으로 다가가 다음과 같이 적힌 론도를 건네주었다.
아름다운 부인이여, 이번만큼은
제 마음을 고백하려니 부인은 너무도 모질게
돌아올 희망도 없이 저를 내쫓으셨으니,
부인께 결코 거친 행동을 한 적이 없고
말이나 행동, 의심이나 비방도 없었거늘.
제 구애가 그토록 부인께 불쾌했다면
중매쟁이 없이 직접 제게
"친구여, 여기서 어서 떠나요"라고 말하실 수 있었으리.
"이번만큼은."
부인께 마음을 여는 것이 죄는 아니리니,
부인의 옷차림 뒤에 감춰진 불꽃이
어떻게 아름다움을 태우는지 보여드리는 것이니,
바라는 건 오직 부인께서 제 차례에
제게 기꺼이 마음을 열어주시는 것뿐이라네,
이번만큼은.
그녀가 편지를 펼쳐 내용을 확인하려 하자, 파뉘르주는 재빨리 가지고 있던 가루를 그녀의 온몸, 특히 소매와 옷 주름 곳곳에 뿌린 뒤 이렇게 말했다. "부인, 가난한 연인들은 늘 마음이 편치 않답니다. 저로 말하자면, 저는 제 운명이
고통스러운 밤과,
고생과 번민이,
연옥의 고통만큼이나 잇따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소한, 부디 제가 이 고통을 인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께 기도해주십시오."
파뉘르주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교회 안에 있던 모든 개가 부인에게 뿌려진 약 냄새를 맡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작든 크든, 뚱뚱하든 말랐든 모든 개가 성기를 내놓고 냄새를 맡으며 그녀의 온몸에 오줌을 갈겨댔는데, 세상에 이보다 더 지저분한 꼴은 없었다.
파뉘르주는 개들을 조금 쫓아버린 뒤, 부인에게서 물러나 구경하려고 어느 예배당으로 향했다. 이 못된 개들이 부인의 옷을 온통 오줌으로 적시고 있었는데, 큰 그레이하운드 한 마리가 그녀의 머리 위에 오줌을 누는가 하면, 다른 것들은 소매에, 또 다른 것들은 엉덩이에, 작은 것들은 그녀의 신발에 오줌을 누는 통에 주변의 모든 여인이 그녀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파뉘르주는 깔깔 웃으며 시의 귀족 중 한 사람에게 말했다. "저 부인이 발정 난 게 틀림없소, 아니면 방금 어떤 그레이하운드 녀석이 덮쳤거나." 그가 보니 개들이 마치 발정 난 암캐 주위를 맴돌듯 그녀 주위에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를 떠나 팡타그뤼엘을 찾으러 갔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개마다 발로 걷어차며 그가 말했다. "너희도 친구들 따라 잔치에 가지 않겠느냐? 어서 가라, 악마의 이름으로, 어서들 가!"
집에 도착한 파뉘르주는 팡타그뤼엘에게 말했다. "주인님, 부탁하건대 이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인 주변으로 온갖 개가 몰려들어 그녀를 범하려 드는 이 구경을 좀 하러 가시지요." 팡타그뤼엘은 기꺼이 응했고, 그가 발견한 아주 흥미롭고 기이한 광경을 함께 보았다.
하지만 압권은 행렬에서였다. 그 부인 주변으로 60만 14마리의 개가 몰려들어 온갖 괴롭힘을 가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지나가는 곳마다 새로 나타난 개들이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왔고, 그녀의 옷자락이 스쳤던 길 위마다 오줌을 갈겨댔다. 사람들은 모두 걸음을 멈추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는데, 개들이 그녀의 목까지 기어 올라가 예쁜 옷을 죄다 망쳐놓는 꼴을 보고는 아무런 손을 쓸 수 없어 그녀는 결국 숙소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개들은 뒤를 쫓아갔고, 그녀는 숨었으며, 하녀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자, 반 리(lieue) 밖에서까지 개들이 달려와 문에 오줌을 어찌나 누어댔는지 오줌 시냇물이 흘러 암캐들이 헤엄칠 정도였다. 바로 그 시냇물이 지금 생빅토르를 지나가는데, 고블랭이 그곳에서 오줌 누는 개들의 특수한 효능 덕에 진홍색 물감을 들인다고 우리 스승 도리뷔스가 예전에 공개적으로 설교한 바 있다. 신께서 도우셨다면 그곳에 물레방아라도 세울 수 있었을 테지만, 툴루즈의 바자클에 있는 물레방아들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팡타그뤼엘이 딥소드족이 아마우로트 영토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파리를 떠난 이야기와 프랑스의 리(lieue) 단위가 유독 짧은 이유
얼마 지나지 않아 팡타그뤼엘은 아버지가 옛날 오지에르나 아르투스 왕처럼 모르그 요정에 의해 요정의 나라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퍼지자 딥소드족이 국경을 넘어 유토피아의 넓은 영토를 황폐화하고 현재 아마우로트 대도시를 포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사안이 시급했던 터라 그는 누구에게도 작별 인사 없이 파리를 떠나 루앙으로 향했다.
길을 가던 팡타그뤼엘은 프랑스의 리(lieue) 단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짧다는 사실을 깨닫고 파뉘르주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파뉘르주는 마로투스 뒤 라크 수도사가 쓴 『카나르 왕들의 행적』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에는 리, 밀리아레, 스타디온, 파라상가 등으로 나라를 구분하지 않았는데, 파라몽 왕이 이를 구분하기 시작했지. 방식은 이랬다네. 그는 파리에서 잘생기고 기운 넘치는 젊은이 백 명과 피카르디 출신의 아름다운 처녀 백 명을 뽑아 여드레 동안 잘 먹이고 보살폈네. 그러고는 그들을 불러 각자에게 처녀 한 명씩과 넉넉한 노잣돈을 쥐여 주며 각지로 흩어지라고 명령했지. 길을 가다 처녀와 관계를 맺을 때마다 돌을 하나씩 놓게 했는데, 그 거리를 1리(lieue)로 정한 거야. 그렇게 젊은이들은 즐겁게 길을 떠났고, 혈기 왕성하고 푹 쉰 상태였으니 가는 곳마다 틈만 나면 관계를 맺었지. 프랑스의 리 단위가 그렇게 짧은 이유가 바로 그거라네."
"하지만 긴 길을 걸어 불쌍한 악마들처럼 지치고 성욕도 다 떨어졌을 때쯤엔 자주 관계를 맺지 않았고, 하루에 형편없는 짓을 한 번씩 하는 것으로 만족했지. 바로 그래서 브르타뉴나 랑드, 독일 같은 먼 나라들의 리 단위가 그렇게 긴 거야. 사람들은 다른 이유도 대지만, 이 설명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하네."
팡타그뤼엘은 기꺼이 그 말에 동의했다.
루앙을 떠난 그들은 옹플뢰르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팡타그뤼엘, 파뉘르주, 에피스테몬, 에우스테네스, 카르팔림은 배에 올랐다. 순풍을 기다리며 배의 틈을 메우던 중, 팡타그뤼엘은 오랫동안 사귀어 온 파리의 한 부인에게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힌 편지를 받았다.
파리의 한 부인이 팡타그뤼엘에게 보낸 편지와 금반지에 새겨진 문구의 해석
팡타그뤼엘은 적힌 내용을 읽고 무척 당황했다. 그는 전령에게 편지를 보낸 여인의 이름을 묻고는 편지를 열어보았는데, 안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고 오직 테이블 컷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반지만 하나 들어 있었다. 그는 곧 파뉘르주를 불러 상황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파뉘르주는 편지지에 내용이 쓰여 있긴 하지만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정교한 기법으로 작성된 것 같다며, 물에 갠 염화암모늄으로 쓴 것인지 확인하려고 종이를 불 근처에 가져다 댔다. 이어 등대풀 즙으로 쓴 것인지 확인하려고 물에 담가보기도 하고, 흰 양파 즙으로 쓴 것인지 보려고 촛불에 비춰보기도 했다.
그런 다음 호두기름을 발라 무화과나무 즙으로 쓴 것인지 확인했고, 첫딸에게 젖을 먹이는 여인의 모유를 묻혀 두꺼비 피로 쓴 것인지 보기도 했다. 또 제비 둥지에서 얻은 재를 모서리에 문질러 알리카카부트 사과 속에서 나오는 이슬로 쓴 것인지 확인했으며, 귀지 끝을 문질러 까마귀 쓸개즙으로 쓴 것인지도 보았다. 이어 식초에 담가 대극의 젖으로 쓴 것인지 확인했고, 박쥐 지방을 발라 용연향이라 불리는 고래 정액으로 쓴 것인지도 보았다. 마지막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시원한 물 대야에 넣었다가 바로 꺼내어 우모명반으로 쓴 것인지 확인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알 수 없자 그는 전령을 불러 물었다. "여보게, 자네를 보낸 그 부인이 여기 가져갈 막대기를 주지는 않았나?" 아울루스 겔리우스가 언급한 기교를 생각한 것이었다. 전령이 "아니오, 나리"라고 대답하자 파뉘르주는 부인이 그녀의 머리를 깎고 검은색 염료로 전할 말을 적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그의 머리카락을 밀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렇게 자라지는 않았으리라 판단하고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팡타그뤼엘에게 말했다. "주인님, 맹세컨대 저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군요. 편지가 쓰였는지 확인하려고 보이지 않는 글자를 읽는 법을 쓴 투스카니 사람 프란체스코 디 니안토 경의 저서와 조로아스터의 『문자들에 관하여』, 칼푸르니우스 바수스의 『판독 불가능한 글자들에 관하여』에 나온 방법들을 일부 써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반지만 있을 뿐인 것 같으니, 한번 살펴봅시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히브리어로 '라마 하자브타니(Lamah hazabthani)'라고 적혀 있었다. 그들은 에피스테몬을 불러 무슨 뜻인지 물었다. 에피스테몬은 그것이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의 히브리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파뉘르주가 즉시 맞받았다. "무슨 상황인지 알겠군. 이 다이아몬드 보이나? 가짜 다이아몬드야. 즉, 이 부인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이거지. '말해봐, 가짜 연인아, 어찌하여 나를 버렸느냐?'" 팡타그뤼엘은 그 해석을 듣자마자 떠나올 때 부인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았던 일이 떠올라 괴로웠고, 파리로 돌아가 그녀와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에피스테몬은 그에게 아이네아스가 디도를 떠났던 일을 상기시켰고, 헤라클리데스 타렌티누스의 말을 빌려 배가 닻에 걸려 있을 때 급한 상황이라면 줄을 푸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당장 끊어버려야 한다고, 그러니 사사로운 감정은 접어두고 위기에 처한 고향 도시를 구하러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연 한 시간 뒤 북북서풍이 불어오자 그들은 돛을 가득 펼치고 공해로 나아갔다. 며칠 지나지 않아 포르투산투와 마데이라를 거쳐 카나리아 제도에 기항했다. 그곳에서 출발해 카보블랑코, 세네갈, 카보베르데, 감비아, 사그레스, 멜리, 희망봉을 지나 멜린데 왕국에 기항했다. 다시 그곳에서 떠나 북풍을 타고 메덴, 우티, 우덴, 겔라심, 요정들의 섬을 지나 아코리아 왕국 근처를 거쳐 마침내 아마우로트 성에서 3리(lieue) 조금 넘게 떨어진 유토피아 항구에 도착했다.
그들이 땅에 도착해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자 팡타그뤼엘이 말했다. "얘들아, 도시가 여기서 멀지 않다. 더 나아가기 전에 무엇을 할지 의논하는 것이 좋겠다. 일이 벌어진 뒤에야 뒤늦게 의논하던 아테네 사람들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너희는 나와 함께 살고 죽을 준비가 되었느냐?"
"예, 나리." 그들이 모두 대답했다. "저희를 나리 자신의 손가락처럼 믿어주십시오."
"그렇다면," 그가 말했다. "내 마음을 불안하고 의구심 들게 하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성을 에워싼 적들이 어떤 대형으로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걸 알면 더 안심하고 갈 수 있을 텐데 말이지.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그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함께 의논해보자."
그러자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저희가 가서 살펴보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오늘 안으로 확실한 소식을 가져오겠습니다."
"내가 적진 한복판인 경비병과 파수꾼 사이로 들어가 그들 비용으로 잔치를 즐기고 으스대 보겠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포병대와 대장들의 막사를 모두 둘러보고 무리 사이를 유유히 거닐지. 악마라도 나를 잡아내진 못할 거야. 나는 조피루스의 혈통이니까."
"내가 가겠네. 나는 과거의 용맹한 장수들과 투사들이 쓴 모든 전략과 무용담, 그리고 군사 규율의 온갖 기만술을 꿰고 있으니까. 설령 들통나더라도 그들에게 내가 원하는 대로 당신들에 대한 거짓말을 믿게 해서 빠져나올 거야. 나는 시논의 혈통이니까."
"내가 파수꾼과 경비병들을 뚫고 참호 사이로 들어가겠네. 그놈들 배 위를 밟고 지나가 팔다리를 분질러 놓을 테니, 설령 악마처럼 강하다 해도 상관없어. 나는 헤르쿨레스의 혈통이니까."
"내가 들어가겠네. 새들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말이야. 나는 몸이 워낙 가벼워서 그들이 눈치채기도 전에 참호를 뛰어넘어 적진을 꿰뚫고 지나갈 거야. 화살도, 투창도, 페르세우스의 페가수스나 파콜레의 말처럼 빠른 그 어떤 말도 두렵지 않아. 놈들 앞을 유유히 빠져나갈 테니까. 나는 밀 이삭 위나 들판의 풀 위를 걸어도 굽히지 않고 지나갈 자신이 있네. 나는 카밀라 아마존의 혈통이니까."
파뉘르주, 카르팔림, 에우스테네스, 에피스테몬이 660명의 기사를 재치 있게 물리친 이야기
그가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그들은 경마를 탄 660명의 기사가 새로 항구에 정박한 배가 무엇인지 보려고 달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기사들은 잡을 수만 있다면 잡으려는 듯 고삐를 늦추지 않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자 팡타그뤼엘이 말했다. "얘들아, 배로 물러나 있거라. 저기 달려오는 우리 적들을 보아라. 내가 저놈들을 여기서 짐승처럼 죽여버릴 테니, 열 배로 덤벼든다 해도 상관없다. 그동안 너희는 물러나서 구경이나 하렴." 그러자 파뉘르주가 대답했다. "아니오, 주인님, 그러실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주인님과 다른 분들은 배로 물러나 계십시오. 저 혼자 여기서 놈들을 해치울 테니 말입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어서 가십시오." 그러자 다른 이들이 말했다. "좋은 생각이오. 주인님, 물러나 계시면 저희가 여기서 파뉘르주를 도울 것이니, 저희가 얼마나 잘하는지 보시게 될 겁니다." 이에 팡타그뤼엘이 말했다. "좋다, 그리 하도록 해라. 하지만 혹시라도 너희가 불리해지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
그러자 파뉘르주는 배에서 밧줄 두 개를 가져와 갑판 위의 회전틀에 묶은 다음, 땅에 내려놓고는 하나는 더 넓게, 하나는 그 안쪽에 커다란 원을 그리며 둘렀다. 그러고는 에피스테몬에게 말했다. "배 안으로 들어가게. 내가 신호를 보내면 갑판 위에서 회전틀을 부지런히 돌려 이 밧줄 두 개를 끌어당기게." 이어 에우스테네스와 카르팔림에게 말했다. "얘들아, 여기 머물면서 적들에게 당당히 맞서는 척하며 순순히 항복하는 시늉을 해라. 하지만 절대로 저 밧줄 안쪽으로 들어오지는 마라. 계속 밖으로 물러나야 한다." 파뉘르주는 곧바로 배 안으로 들어가 짚 뭉치와 화약 한 꾸러미를 가져와 밧줄 원 주변에 뿌려놓고는, 불을 붙일 막대기를 들고 곁을 지켰다. 곧 기사들이 들이닥쳤는데, 선두에 있던 자들은 배 근처까지 달려들다가 해안가가 미끄러운 탓에 말과 함께 마흔네 명이나 나자빠졌다. 이를 본 나머지 기사들도 다가왔는데, 놈들은 우리가 저항할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파뉘르주가 그들에게 말했다. "신사분들, 다치신 것 같군요. 부디 용서하십시오. 이건 우리가 한 짓이 아니라, 항상 미끌미끌한 바닷물 탓입니다. 저희는 당신들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의 두 동료와 갑판 위의 에피스테몬도 똑같이 말했다. 그사이 파뉘르주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모든 기사가 밧줄 원 안으로 들어오고, 자기 동료들이 배를 구경하러 떼 지어 몰려드는 기사들에게 길을 터주며 밖으로 물러나자, 그는 곧바로 에피스테몬에게 외쳤다. "당겨, 당겨!" 그러자 에피스테몬이 회전틀을 돌리기 시작했고, 밧줄 두 개가 말들 사이에 뒤엉키면서 기사들은 말과 함께 쉽게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놈들은 사태를 깨닫고는 칼을 뽑아 우리를 해치려 했지만, 파뉘르주가 뿌려놓은 화약 줄에 불을 붙이자 놈들은 모두 지옥의 망령들처럼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사람과 말 할 것 없이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는데, 터키 말을 타고 도망친 놈 하나만은 예외였다. 하지만 카르팔림이 그놈을 발견하고는 날쌔게 뒤쫓아가 백 걸음도 안 되는 거리에서 놈을 낚아채더니, 말 뒤에 올라타 놈을 껴안고 배로 끌고 왔다.
이 전투가 완전히 끝나자 팡타그뤼엘은 무척 기뻐하며 동료들의 재치를 크게 칭찬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해변에서 즐겁게 휴식을 취하고 배불리 먹고 마시게 했는데, 엎드린 채로 술을 마시게 했고 포로도 그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게 했다. 단지 그 불쌍한 악마 놈만은 팡타그뤼엘이 자신을 통째로 집어삼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팡타그뤼엘은 목구멍이 워낙 넓어서 사탕 한 알을 먹듯 쉽게 삼킬 수 있었고, 그렇게 삼킨다 해도 당나귀 입에 들어간 좁쌀 한 알보다도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