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며 겐지는 웃었다. 수레는 이미 떠나려 하고 있었지만, 사신을 뒤따라 보내,
"진귀하다며 고향 사람들도 기다려 보리라, 꽃 비단 옷을 입고 돌아오는 그대여."
더할 나위 없는 일이라며 만족해하실 것이오."
라고 겐지가 전하게 하니 친왕은 쓴웃음을 지으셨다. 도노노 추조나 벤노 쇼쇼 등에게는 눈에 띌 정도의 텐토가 아니라, 호소나가나 고우치기 따위를 겐지는 선물했다.
모기 의식을 치르는 서쪽 저택으로 겐지 부부와 공주는 오후 8시에 갔다. 츄구가 머무시는 어전의 서쪽 별채에 의식 준비가 되어 있었고, 공주의 머리 올리기 역(정장 차림일 때는 앞머리를 조금 묶는다)인 나이시 등도 이곳으로 왔다. 무라사키 부인도 이 기회에 츄구를 알현했다. 츄구 측, 부인 측, 공주 측의 성장을 한 여방들이 앉아 있는 것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보였다. 치마를 입히는 의식은 12시에 시작되었다. 은은한 등불 빛으로 보셨는데, 츄구는 공주를 아름답게 여기셨다.
"사랑해 주시는 마음을 믿고, 실례를 무릅쓰고 귀하의 앞에 내보냈습니다. 고귀하신 당신께서 이토록 돌봐주시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 감격할 따름입니다."
라고 겐지는 아뢰었다.
"경험이 부족한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일에 그런 인사를 하시니 오히려 난처하군요."
그렇게 겸손하게 말씀하시는 츄구의 젊고 애교 넘치는 모습을 보며, 이 아름다운 이들이 모두 자신의 일가족이라는 사실에 겐지는 행복을 느꼈다. 아카시가 그늘에 있어 이 성대한 의식을 보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는 듯하자 겐지는 안쓰러운 마음에 이쪽으로 부를까도 생각했지만, 역시 세간의 이목을 염려하여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이런 의식에 관한 기록은 명문으로 적혀 있어도 번거로운 법인데, 나 같은 사람이 어설프게 써 내려갔다가는 오히려 아름답고 훌륭한 일을 망칠까 두려워 자세히 적지 않겠다.
도구의 겐푸쿠는 20일경에 있었다. 이미 어엿한 어른과 같으셨기에 누구나 영애들을 후궁으로 입궁시키고 싶어 했으나, 겐지가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히메기미를 도구께 바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는 이 궁궐 생활은 오히려 딸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여 사다이진과 사다이쇼 등도 주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겐지는 들었다.
"그렇게 해서는 임금님께 송구스러운 일이 됩니다. 궁궐 생활은 다수 중에서 다만 조금의 총애의 차이를 경쟁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귀족 가문의 훌륭한 영애들이 나가지 않는다면 이쪽도 경쟁할 맛이 나지 않게 됩니다."
라고 말하고는 히메기미의 입궁 시기를 늦추었다. 설령 딸을 내보내더라도 나중에 하려 했던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먼저 사다이진이 셋째 딸을 도구께 입궁시켰다. 레이케이덴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겐지 측은 옛 숙직소인 기리쓰보의 실내 장식 등을 보수하느라 시일이 늦어지고 있었는데, 도구께서 기다리는 기색이 역력하셨기에 4월에 입궁하기로 정했다. 히메기미의 도구류 등도 원래 있던 것에 새로이 덧붙여 만들게 하였고, 겐지 자신이 직접 형태를 구상하거나 도안을 짜고는 전문가 명인들을 모아 예술적인 제작을 명했다. 소시 상자 같은 곳에 넣을 소시로, 훗날 제본하여 책이 될 만한 것들을 겐지는 고르고 있었다. 고인들 중 서도의 대가라 불리는 이들이 쓴 작품도 겐지의 곁에는 많이 있었다.
"모든 것이 옛날보다 나빠지는 말세라 해도 가나만은 어디까지 재미있어질까 싶을 정도로 요즘이 더 좋아졌소. 옛 가나는 정확하긴 하지만 융통성이 없고 변화의 묘미가 없어 단조롭구려. 솜씨 있게 가나를 쓰는 이들이 근대에 들어 늘긴 했지만, 나도 가나를 배우는 데 열심이었을 무렵 무난한 가나 글씨를 본보기로 여럿 모으곤 했소. 그런데 중궁의 모친이신 미야스도코로께서 아무 생각 없이 쓰신 한두 줄의 글씨를 얻게 되었는데, 최고의 가나 글씨는 바로 이것이라며 심취해 버렸던 것이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세상에 소문이 나게 되었고, 나와의 관계를 쓰라린 경험이라 생각하여 분해하며 돌아가셨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소. 지금은 츄구를 보필하고 있으니, 총명했던 분이셨던 만큼 저세상에서도 나의 성의를 알아주시겠지. 츄구의 글씨는 예쁜 듯하나 재기가 부족하오."
라고 겐지는 부인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입도 중궁님께서는 최상의 귀부인다운 품격 있는 글씨를 쓰셨으나, 약한 부분이 있어 화려한 기분은 없소. 원의 나이시노카미는 현대의 가장 뛰어난 서예가지만, 지나치게 분방하여 습관이 배어 나오지. 하지만 어쨌든 원의 나이시노카미와 전 사이인, 그리고 당신을 이 소시의 필자로 점찍어 두었소."
겐지에게 인정받은 것에 부인은,
'그런 분들과 함께한다니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겸손이 너무 지나치오. 부드러운 가락의 아주 좋은 점이 있소. 한자는 잘 쓰지만 가나에는 가끔 힘이 빠진 글자가 섞이는 결점이 있구려."
등등 겐지는 말하며 쓰지 않은 무지 소시도 몇 권 새로이 묶게 했다. 표지나 끈 등을 정밀하게 선택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효부쿄노미야나 사에몬노카미에게도 부탁해 보려 하오. 나도 한 권 쓰겠소. 잘난 척하는 이들도 나와 함께 글을 쓰는 것은 영광으로 여기겠지."
라고 겐지는 자찬하고 있었다. 먹과 붓도 엄선하여 곁들이고, 늘 그런 교류가 있는 곳마다 집필을 부탁했으나, 누구든 이 부탁을 받는 것을 어렵게 여겨 그중에는 사양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겐지는 거듭 간절한 말로 집필을 바랐다. 조선지의 우스요풍의 아주 매혹적인 느낌이 드는 종이로 제본된 책을 겐지는 보며,
"풍류를 즐기는 청년들에게 이것을 쓰게 해 보려 하오."
라고 말했다. 사이쇼 츄조, 시키부쿄노미야의 효에노카미, 나다이진 가문의 도노 츄조 등에게 아시데나 노래 그림 등 무엇이든 마음껏 쓰라고 겐지는 말했던 것이다. 젊은 이들은 앞다투어 제작에 나섰다.
늘 이런 때가 되면 하듯 겐지는 신덴 쪽으로 가서 글을 썼다. 꽃이 만개한 시기가 지나고 연녹색 빛이 감도는 화창한 날, 겐지는 옛 시가를 조용히 고르며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글씨를 쓰고자 한자든 가나든 열심이었다. 그 방에는 뇨보도 많이 두지 않고, 다만 서너 명만을 불러 먹을 갈게 하거나 옛 가집의 노래를 명받은 대로 찾아내게 하는 등 도움이 될 만한 자들을 두었다. 방의 어미스들은 모두 올리고, 교소쿠 위에 장부를 얹어 마루 가까운 곳에서 느긋한 자세로 붓대를 입에 물고 사색에 잠긴 겐지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희거나 붉거나 도드라진 옷자락, 붓을 고쳐 잡고 특히 주의를 기울여 글씨를 쓰는 태도 등은 마음 있는 자라면 누구든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효부쿄노미야께서 오셨다는 소식에 겐지는 놀라 겉에 노시를 걸치거나 좌석에 더 시토네를 가져오게 하여 맞이했다. 이 친왕 또한 고운 자태로 계단을 매혹적으로 오르시는 모습을 뇨보들은 어미스 너머로 훔쳐보고 있었다. 서로 정중한 예의를 갖추어 인사가 오갔다.
"틀어박혀 있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지루하던 차였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라고 겐지는 말하고 있었다. 부탁했던 글을 친왕은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바로 이 자리에서 겐지는 배견하였다. 매우 훌륭한 글씨라기보다는 일부분에 맑고 투명한 예술미가 보이는 것이었다. 노래도 상식적인 것은 피하고 색다른 것들이 선택되어 있었으며, 고작 세 줄 정도에 글자 수를 줄여 느낌 좋게 적혀 있었다. 겐지는 예상보다 뛰어난 솜씨에 놀랐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쓴 것 따위는 보기 싫어질 정도군요."
라고도 말하였다.
"대가들 틈에 끼어 글을 쓸 자신만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소."
친왕은 농담을 하셨다. 이미 완성된 겐지의 장부 등도 숨길 것이 아니기에 내어 친왕이 보시게 하였다. 중국 종이의 수수한 빛깔 위에 한자를 초서로 쓴 것이 뛰어나게 아름답다고 친왕은 보셨으나, 그 뒤에 조선 종이의 바탕 결이 곱고 부드러운 느낌이 나는, 색은 화려하지 않으나 매혹적인 종이 위에 가나 문자가, 그것도 바르고 열의가 느껴지는 글씨로 적힌 절묘한 작품을 발견하셨다. 그것은 보는 이의 감동 어린 눈물까지 함께 흐를 것 같은 필적이라, 언제까지고 눈을 떼지 못하셨는데, 또한 일본산 종이인 가미야가미 색지의 화려한 색 위에 분방하게 흩뿌려 쓴 글씨에서는 무한한 재미가 느껴지기도 하여, 어지럽게 쓴 글씨 구석구석에 사람을 취하게 할 듯한 애교가 깃든 이 낱장 이외에는 더 보려 하지 않으셨다.
사에몬노카미의 글씨는 본격적으로 쓰였으나 속기가 다 빠지지 않아 기교가 기교로서 눈에 띄었다. 노래 또한 작위적인 것들이 선택되었다. 여인의 손으로 쓴 장부는 조금밖에 보여주지 않았다. 특히 사이인의 것은 아예 숨기고 내놓지 않는 겐지였다. 청년들에 의해 아시데로 쓰인 몇 권의 장부는 저마다 재미가 있었다. 겐주조의 것은 물을 풍부하게 그리고, 듬성듬성 갈대가 돋아난 풍경에 나니와 포구가 떠오르는 곳에 이쪽저쪽 아름다운 노래 글자가 배치된 듯한, 맑은 가락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색다른 기암이 솟은 풍경에 어울리는 웅건한 가나가 적힌 낱장도 있는 식의 아시데였다.
"놀랐구려. 이것은 보는 데 시간이 걸리겠어."
라고 친왕은 즐거워하셨다. 예술가풍의 풍류기가 많은 분이었기에 마음에 드는 것은 끝까지 칭찬하셨다. 이날은 또 글씨 이야기만 나누셨는데, 색지를 이은 권물들이 몇 권이고 자리 위로 나타났으나, 친왕은 자식인 시주를 저택으로 보내어 자신의 보물들도 가져오게 하셨다. 사가 천황이 고만요슈에서 가려 뽑아 두신 네 권, 엔기 천황이 고킨슈를 중국의 옅은 남색 색지를 잇고, 같은 색으로 짙게 무늬가 나타난 당지 표지에 같은 색 보석 축을 단 권물에 권마다 서풍을 바꾸어 직접 쓰신 것들이 그것이었다. 다리가 짧은 등불을 곁에 두고 둘이서 보고 계셨는데,
"어찌 이토록 다양하게 쓰실 수 있었을까요. 요즘 사람들은 겨우 이 일부분을 작업하는 데에도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형편이지요."
등등 겐지는 칭찬하고 있었다. 이 두 가지 물건은 친왕께서 겐지에게 기증하신 것이었다.
"딸을 두었다 해도, 이런 물건의 가치를 잘 모를 아이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드는 물건들이니까요. 게다가 저에게는 딸도 없으니, 당신 곁에 두시는 편이 좋겠지요."
라고 친왕은 말씀하셨다. 겐지는 시주에게 당본 중 훌륭한 것을 침향 나무 상자에 담고 고려 피리를 곁들여 선물하였다.
요즘 겐지는 서도, 그중에서도 특히 가나 글씨를 감상하는 데 열중하여 좋은 글씨를 쓴다는 사람들은 상중하 계급을 가리지 않고 저마다의 작품을 골라 글씨를 부탁하고 있었다. 겐지가 쓴 장부가 들어가는 상자에는 높은 계급에 속한 이들의 손으로 쓴 서예 작품만, 장부든 권물이든 진귀한 장정을 더해 보관하기로 했다. 다른 나라 궁정에도 없을 듯한 화려함을 다한 히메기미의 다른 가구들보다도, 젊은이들은 이 필적 상자를 엿보고 싶어 했다. 겐지는 그림 등도 정리하여 히메기미에게 주곤 하였는데, 스마에서 일기처럼 써 내려간 그림 두루마리는 히메기미에게 전해주고 싶었으나, 좀 더 복잡한 인생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러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그 속에는 넣지 않았다.
나이다이진은 궁궐에 들어갈 성대한 준비를, 자기 집안일이 아니라 겐지의 히메기미 일로 소문을 통해 듣는 것이 무척 서운하고 외롭게 느껴졌다. 묘령에 달한 구모이노카리의 히메기미는 아름다워져 있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혼담도 없이 틀어박혀 있는 이 딸이 나이다이진에게는 근심거리였다. 사이쇼 주조는 조금도 초조해하는 기색 없이 냉정한 태도를 계속 보이고 있었기에, 이쪽에서 먼저 혼담을 꺼내는 것도 체면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었고, 그가 열렬히 딸을 생각했을 때 허락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며 남몰래 후회도 하고 있었기에 나이다이진은 사이쇼 주조의 태도만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조금 기가 꺾인 사실도 사이쇼 주조는 듣고 있었으나, 아직은 원망스러운 기억이 사라질 때까지는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여 나이다이진에게 구혼하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연애 상대를 만들 마음도 없었다. 스스로도 이런 답답한 사고방식에 반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사이쇼 주조는 로쿠이였음을 비난했던 구모이노카리의 유모들에 대해 나곤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 선결 문제라고 믿고 있었다. 겐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붕 떠 있는 중장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있는 것을 보다 못해,
"저쪽과의 혼담을 포기한 것이라면, 사다이진이나 나카쓰카사노미야 등에서 이야기가 오고 있으니 누구와 결혼할지 정해 버리는 것이 좋겠소."
라고 말했으나, 사이쇼 주조는 묵묵히 송구스러운 기색을 보일 뿐이었다.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예전의 나도 임금님의 조언을 따르지 못했으니 감히 입을 대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의 가르침은 영구한 진리였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오. 오래도록 독신으로 지내면 이루어지지 않을 환상을 좇는 것처럼 남들도 볼 것이고, 그것이 숙명인지는 모르겠으나 끝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여인과 함께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면 시작은 좋아도 끝이 나빠지고 말 것이오. 잘난 척을 해도 젊은 시절에는 밖에서 유혹이 많으니 다정한 행동에 빠지기 쉬운 법이지만, 타락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야 하오. 궁중에서 자라나 자유로운 일이라곤 하나도 못 하고, 그저 과실 하나만 있어도 세상이 시끄럽게 비난할 것이라며 전전긍긍하던 젊은 날의 나조차도, 결국엔 연애를 찾아 헤매는 남자로 비춰져 좋지 못한 평을 들었소. 신분이 낮고 주목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하여 방종한 짓을 해서는 안 되오. 교만한 마음이 넘칠 때, 여자 문제로 현명한 사람이 실패하는 사례는 역사 위에도 있는 법이니 말이오. 연모해서는 안 될 사람을 마음에 품어 여인의 명예를 더럽히고 자신도 남의 원망을 사는 일은 평생의 마음 짐이 될 것이오. 불운한 결혼을 하여 여인의 단점만 눈에 띄어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그런 때일수록 인내하며 만인을 사랑하는 인도적인 마음을 익히도록 힘쓰거나, 혹은 여식의 부모들이 지닌 호의를 생각하며 모자란 점을 보완한다거나, 아니면 부모 없는 이와 결혼했을 때도 부족한 처지일지언정 아내가 가치 있는 여인이라면 그것으로 보충하기에 충분하다고 인식해야 하오. 그런 동정을 품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아내를 위해서도 장래에 큰 행복을 얻는 과정이 될 것이오."
이런 말도 하며 한가할 때는 자주 사이쇼 주조를 가르치는 겐지였다. 이 교훈의 정신으로 보아도, 설마하니 첫사랑을 잊고 다른 여인을 생각하는 짓은 할 수 없으리라 주조는 생각했다. 구모이노카리 또한 최근 들어 아버지가 유독 수심 어린 기색을 보이는 것을 알고 부끄러워하며, 자신은 불행한 여인이라 깊이 생각하고 있었으나,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태연하게 상념에 젖어 있었다. 사이쇼 주조는 견디기 힘들 때에만 정열이 담긴 편지를 구모이노카리에게 썼다. 하지만 진심을 ('거짓이라 생각하는 마음이기에, 이제 와서 누구의 진심을 나는 믿으리오') 마음속으로 되새겨 보아도, 세상 물정에 밝은 이들처럼 함부로 남을 의심하지 않는 순진한 구모이노카리는 주조의 편지에서 가슴 깊이 읽히는 대목이 많다고 생각되었다.
"나카쓰카사노미야께서 따님과 사이쇼 주조의 혼담을 다이조다이진께 신청하여 대신도 찬성하신 듯합니다."
라고 이런 소문을 내대신에게 전한 이가 있었을 때, 내대신의 마음은 수심으로 가득 찼다. 대신은 그러한 소문이 귀에 들어갔음을 구모이노카리에게 살며시 알렸다.
"그 사람이 다른 결혼을 해도 좋다는 마음을 먹다니 너무하구나. 다이조다이진도 입을 넣으신 적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내가 강경했기에 이제 와서 대신이 그런 식으로 권하시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 경우에 내가 상대방의 말대로 결혼을 허락했더라도 체면상 부끄러운 일이었을 테니."
라며 눈에 눈물을 머금고 말하는 아버지를 구모이노카리는 부끄럽게 생각하며 듣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민망하게 여겨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 가련하였다. 어찌하면 좋을까. 역시 이쪽에서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걸까 하며 번민하면서 대신이 떠난 뒤에도 구모이노카리는 정원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는 또 무슨 어리석은 눈물인가,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며 마음을 졸이고 있는 곳에 사이쇼 주조의 편지가 도착했다. 원망스럽게 지금까지 생각했던 사람이지만, 그래도 편지는 곧바로 열어 읽었다. 정이 담긴 편지였다.
"매정함은 덧없는 세상의 일상이 되어가는데, 잊지 않는 그대만은 다른 이와 다르구려."
라고도 적혀 있었다. 아버지가 나눈 이야기 따위는 조금도 적혀 있지 않은 것을 구모이노카리는 원망스럽게 생각했지만 답장을 적었다.
"끝이라며 잊기 힘든 이를 잊는 것 또한, 이 세상에 순응하는 마음인 것인가."
이 노래의 의미를 납득하지 못해 사이쇼 주조는 오랫동안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