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그리운 내 몸도 저물어 가건만, 남은 눈물은 많기도 하구나.
라고 덧붙여 적으셨다.
구월이 되어 솜을 씌운 국화를 보시고,
함께 머물던 국화의 아침 이슬도, 홀로 소매를 적시는 가을이로구나.
하고 원께서 노래하셨다.
시월은 가랑비가 잦은 계절이라 원의 마음은 더욱 쓸쓸해 보였고, 저녁 무렵의 하늘 빛깔도 말할 수 없이 심란하게 바라보시며, "언제나 비는 내렸건만 (이토록 소매가 젖는 적은 없었네)" 따위를 읊조리셨다. 하늘을 건너가는 기러기가 날개를 나란히 하고 가는 모습마저 부러운 듯 바라보셨다.
대공을 오가는 환영이여, 꿈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영혼이 가는 곳을 찾아주오.
그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하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원의 슬픔은 더욱 깊어질 뿐이었다.
고세치라 하여 세상이 화려하게 밝아질 무렵, 대장의 자식들이 처음으로 덴조(殿上) 근무를 나간다며 로쿠조인으로 왔다. 둘 다 무척 아름다웠다. 외삼촌인 도노 주조와 구로도 쇼쇼 등이 아오즈리(靑摺)의 오미고로모 차림의 깔끔한 모습으로 소년들을 수행해 왔다. 명랑한 기운의 이 젊은이들을 보시는 원은 자신의 청춘 시절을 되돌아보며, 옛날 이날의 무희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일 같은 것도 새삼 그리운 듯 떠올리셨다.
궁인들은 도요노 아카리에 서두르는 오늘, 날 가는 줄도 모르고 지내왔구나.
올해를 이렇게 인내하며 보내신 원은 이제 다음 봄이 되면 출가를 실현할 차례라며 그 준비를 조금씩 시작하시려 했지만, 그저 서글픈 마음만 들 뿐이었다. 원 안의 사람들에게도 각기 차등을 두어 물건을 하사하셨다. 눈에 띄게 오늘까지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모습은 보이지 않으셨지만,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들은 원께서 출가를 결심하고 계심을 짐작할 수 있어 모두들 올해가 지나가는 것을 무척이나 심란하게 생각했다. 세간의 눈에 좋지 않으리라 여긴 옛 연애 편지들을 차마 없애기 아쉬우셨는지, 누구의 편지든 조금씩 남겨두셨던 것을 어떤 계기로 발견하고는 찢어버리게 하거나, 다시금 정리하기 시작하셨는데, 스마에 유폐되어 계실 때 각지에서 보내온 편지들도 있는 가운데 무라사키노 우에의 편지만은 따로 한 묶음으로 되어 있었다. 스스로 간직해 두신 것이지만 옛일이라 마치 전생의 일처럼 생각하시면서도, 묶음을 열어 읽어보니 지금 막 쓴 것처럼 부인의 먹글씨가 생생했다. 이것은 영원히 유품으로 간직하기 좋겠다고 생각하셨지만, 이마저도 보아서는 안 될 몸이 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친한 여방 서너 명을 불러 거실에서 찢어버리게 하셨다. 평소에도 죽은 이의 편지를 눈으로 보는 것은 슬픈 일인데, 모든 감정을 멸각해야 할 세계로 발을 들이려는 원의 마음에 무라사키노 우에의 글자가 얼마나 격렬한 슬픔을 가져다주었을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기분은 가라앉고 눈물이 옛 먹글씨 자취를 따라 흐르는 것이 여방들 보기에 민망하고 부끄러워져서, 옛 편지들을 조금 앞쪽으로 밀어두고는,
저승길을 넘어간 이를 그리워하며, 그 흔적을 보며 여전히 헤매는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여방들도 감히 자세히 읽을 수는 없었으나, 군데군데 글귀를 조금씩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무척 슬펐다. 같은 세상에 있으면서도 가까운 곳에서 생이별을 해야 했던 슬픔을 실감 그대로 써 내려간 고인의 글이 당시보다 지금 원의 마음을 더 울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이토록 나약하게 슬퍼하는 자신이 보기 흉하다고 생각하시어, 차마 다 읽지도 못한 채 길게 쓰인 무라사키노 우에의 편지 옆에,
모아둔 글귀들 보람 없구나, 모시오(藻塩) 풀처럼 같은 구름 위 연기로 변해버리니
라고 적으시고는, 그것들도 모두 불태워 버리게 하셨다.
붓묘(佛名)의 승려를 맞이하는 행사가 올해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승려의 석장 소리조차 사무치게 들려왔다. 원을 위해 앞날의 장수를 비는 승려들의 기도 소리도, 원의 마음에는 부처님께 부끄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눈이 펑펑 쏟아져 두텁게 쌓였다. 돌아가려는 도사를 원은 어전으로 불러 술잔을 하사하셨는데, 평소 붓묘식 날보다 더 극진한 대우였다. 전두(纏頭) 같은 선물도 하사하셨다. 오랫동안 원을 출입하며 어소의 일을 보아온 친숙한 승려가, 머리색도 바뀌어 어느덧 노승이 된 모습을 보니 원은 애처로운 마음이 드셨다. 이날도 늘 그렇듯 궁가들과 고관들이 다수 찾아왔다. 매화가 조금씩 꽃망울을 터뜨려 눈 속에서 유난히 아름답게 보이는 날이라 음악을 즐겨도 좋을 법했으나, 올해는 관현조차 울음소리를 내는 듯하게만 느껴지는 마음이기에 그런 일은 하지 않고, 시가를 읊게 하여 감상하는 정도로 그치셨다. 도사에게 원이 술잔을 올리실 때 읊으신 노래는 다음과 같았다.
봄까지의 목숨일지 알 수 없으나, 눈 속에 빛깔 드러낸 매화를 오늘 꽂아보리라
였으며, 답가는,
천년의 봄을 보시라 기도했건만, 이내 몸은 눈과 함께 저물어가는구나
참석자들의 작품도 많았으나 생략한다. 원의 미모는 옛 히카루 겐지였을 때보다 한층 더 광채가 더해져 보이는 것을 우러러보며, 이 늙은 승려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올해가 지나가는 것을 심란하게 생각하시는 원이었기에, 와카미야가,
"나라이(儺追)를 할 때, 무엇을 던지면 가장 높은 소리가 날까"
하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셔도, 이 귀여운 사람조차 보지 못하는 생활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쓸쓸할 뿐이었다.
근심 속에 흐르는 달일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해와 내 삶도 오늘로 다하는가
원일 참하(參賀)를 오는 손님들을 위해 원은 유난히 화려하게 준비를 시키셨다. 친왕들과 대신들에게 줄 선물, 그 이하 사람들에게 줄 전두(纏頭)의 물품들도 지극히 훌륭한 것으로 준비하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