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앉아서 조용히 속으로 기도를 읊조렸다. 마침내 자리에 일어났는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하겠소?" 그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가십시오." 나는 말했다. "사람들에게 알리십시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진실 하나만 남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당신의 위대한 결심 속에 얼마나 큰 관대함이 담겨 있었는지 깨달을 것입니다."그는 정말 결심한 듯 나를 떠났다. 하지만 그 후로도 2주 넘게 매일 저녁 나를 찾아와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는 내 마음을 갉아먹었다. 때로는 굳은 표정으로 찾아와 감격에 젖어 말했다.
그는 정말로 결심한 듯 나를 떠났다. 하지만 그 후로도 2주 넘게 매일 저녁 나를 찾아와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는 내 마음을 갉아먹었다. 때로는 굳은 표정으로 찾아와 감격에 젖어 말했다.
"고백하는 즉시 내게 낙원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소. 14년 동안 지옥 속에 있었으니까. 고통받고 싶소. 고통을 받아들이고 새 삶을 시작할 것이오. 거짓으로 세상을 다 살 수는 없으며, 다시 돌아갈 수도 없소. 이제 나는 이웃은커녕 내 아이들조차 사랑할 자격이 없소. 주여, 아이들이 나의 고통이 어떤 것이었는지 언젠가는 이해하고 나를 단죄하지 않겠지요! 주님은 힘이 아니라 진리 안에 계시니까."
"모두가 당신의 숭고한 행위를 이해할 것입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이해할 것입니다. 당신은 진실을 위해, 더 높은 진실, 이 세상 것이 아닌 진실을 위해 봉사했으니까요."
그는 위안을 얻은 듯 나를 떠나곤 했지만, 다음 날이면 갑자기 다시 사납고 창백한 얼굴로 찾아와 조롱하듯 말했다.
"매번 내가 올 때마다 당신은 그렇게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는군. '또 고백을 안 했나?' 싶어서 말이야. 기다리시게, 너무 경멸하지는 말고. 당신 생각만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어쩌면 나는 영영 하지 않을지도 모르오. 그럼 그때 당신은 나를 고발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나는 그저 무지한 호기심으로 그를 쳐다보는 것은 고사하고, 그를 쳐다보는 것조차 두려웠다. 나는 병이 날 정도로 지쳐 있었고, 내 영혼은 눈물로 가득 찼다. 밤잠마저 설칠 정도였다.
"이제 아내에게서 오는 길입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아내라는 존재가 뭔지 아시오? 내가 집을 나설 때 아이들이 소리쳤지요. '아빠, 안녕, 빨리 와서 우리랑 「어린이 독본」 읽어요.' 아니, 당신은 이걸 이해 못 할 거요! 남의 불행은 지혜를 주지 못하니까."
그는 눈을 번뜩였고 입술이 떨렸다. 갑자기 식탁을 주먹으로 내리쳤는데, 식탁 위의 물건들이 펄쩍 뛸 정도였다. 그렇게 온순한 사람이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정말 그래야 하오?" 그가 외쳤다. "정말 그럴 필요가 있소? 누구도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았고, 나 때문에 유형을 간 사람도 없으며, 하인은 병으로 죽었소. 그리고 흘린 피에 대해서는 나도 고통으로 벌을 받았단 말이오. 게다가 사람들은 나를 전혀 믿지 않을 것이며, 내가 제시하는 어떤 증거도 믿지 않을 거요. 꼭 고백해야 하오? 꼭? 피를 흘린 대가로 평생을 더 고통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소. 그들까지 나와 함께 망치는 것이 정의일까?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건 아닐까? 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소? 그리고 사람들이 이 진실을 알기나 할까, 가치를 알아보고 존중해 주기나 할까?"
'맙소사!'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순간에 사람들의 존경을 생각하다니!' 그 당시 그가 너무나 가여워서, 그 고통을 덜어줄 수만 있다면 나 자신이 그 운명을 대신 나누고 싶을 정도였다. 그가 마치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지성이 아닌 살아있는 영혼으로, 그러한 결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고는 공포에 질렸다.
"내 운명을 결정해 주시오!" 그가 다시 외쳤다.
"가서 고백하십시오." 나는 그에게 속삭였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탁자 위의 복음서 러시아어 번역본을 집어 요한복음 12장 24절을 보여주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나는 그가 오기 바로 직전에 이 구절을 읽고 있었다.
그가 읽었다.
"진실이군." 그가 말했지만,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이 책들을 보면." 잠시 침묵한 뒤 그가 말했다. "무시무시한 것들이 가득하지. 남의 코앞에 들이밀기는 쉽지. 대체 누가 이걸 쓴 건지, 정말 인간들이 쓴 게 맞나?"
"성령께서 쓰셨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말하기는 쉽군." 그가 다시 비웃었지만, 거의 증오에 가까웠다. 나는 다시 책을 집어 다른 곳을 펼쳐 「히브리서」 10장 31절을 보여주었다. 그가 읽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그가 읽더니 책을 던져 버렸다. 온몸을 떨기까지 했다.
"무서운 구절이군." 그가 말했다. "더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군." 의자에서 일어났다. "자," 그가 말했다. "안녕히, 아마 다시는 오지 못할 거요…… 낙원에서 봅시다. 그러니까 지난 14년 동안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있었던' 셈이군. 그 14년이란 세월이 결국 그런 뜻이었나 봐. 내일 그 손에 나를 놓아달라고 청해 보겠소……."
그를 껴안고 입 맞추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눈빛은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는 밖으로 나갔다. '맙소사,'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이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즉시 성상 앞에 무릎을 꿇고 그를 위해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께, 그 신속한 보호자와 조력자께 눈물로 기도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지 반시간 정도 지났을까, 이미 밤도 깊어 열두 시쯤 되었을 때였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그가 다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어디에 다녀오셨습니까?" 내가 그에게 물었다.
"나는," 그가 말했다. "나는 뭔가 잊은 것 같아서…… 손수건 말이야…… 뭐, 아무것도 안 잊었더라도 좀 앉게 해주게……."
그는 의자에 앉았다. 나는 그 옆에 서 있었다. "자네도 앉게." 그가 말했다. 나는 앉았다. 2분 정도 그렇게 앉아 있는데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갑자기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을 기억한다. 그러고는 일어나 나를 힘껏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기억하게." 그가 말했다. "내가 두 번째로 자네를 찾아왔던 일을 말이네. 듣고 있나? 이걸 기억하게!"
처음으로 자네가 나에게 말을 걸었구나. 그리고 그는 떠났다. '내일이구나.' 나는 생각했다.
정말로 그대로 되었다. 나는 그날 저녁, 바로 다음 날이 그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 자신도 며칠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았기에 그 누구에게서도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날은 매년 그가 성대한 모임을 여는 날이라 온 도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고는 점심 식사가 끝난 뒤, 그가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는데 손에는 서류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상부에 올리는 정식 보고서였다. 상사들이 마침 그 자리에 있었으므로 그는 그 자리에서 모인 사람들 모두에게 그 종이를 낭독했다. 그 안에는 모든 범죄 행위가 낱낱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나는 인간 세상에서 스스로를 괴물로 내쫓는다. 신께서 나를 찾아오셨다." 그는 종이를 맺으며 말했다. "고통받고 싶다!" 그러더니 즉시 14년 동안이나 범죄를 증명하겠다고 간직해 온 물건들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의심을 피하려고 훔쳤던 살해당한 여인의 금붙이들, 그녀의 목에서 떼어낸 메달과 십자가, 메달 속에 든 약혼자의 초상화, 수첩,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통의 편지가 있었다. 그녀의 약혼자가 곧 도착한다는 소식을 담은 편지와, 그녀가 쓰기 시작했으나 다 끝내지 못하고 다음 날 우체국에 보내려고 탁자 위에 남겨두었던 답장이었다. 그는 그 편지 두 통을 모두 가져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왜 증거를 인멸하지 않고 14년 동안이나 간직해 왔던 걸까? 그런데 결과는 어땠을까. 모두가 경악하고 공포에 떨었으며, 누구도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다들 엄청난 호기심으로 듣기는 했으나 마치 환자가 하는 소리처럼 여겼고, 며칠이 지나자 온 마을 사람들이 그 불행한 남자가 미쳤다고 결론을 내렸다. 상부와 법원도 사건을 접수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결국 잠시 멈췄다. 제출된 물건과 편지들이 의구심을 자아내긴 했지만, 설령 그 서류들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들만으로는 최종적인 기소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물건들은 그가 그녀의 지인으로서 신임을 얻어 직접 받았을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 그 물건들의 진품 여부가 살해당한 여인의 많은 지인과 친척들을 통해 확인되었으며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또다시 마무리되지 못할 운명이었다. 닷새쯤 지나자 모두들 그 고통받던 이가 병이 났고 생명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는 설명할 수 없으나 심장 질환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하지만 아내의 요청에 따라 의사 협의회가 그의 정신 상태를 감정했고, 그가 이미 정신 이상 상태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나는 아무것도 발설하지 않았으나 사람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나를 캐물었다. 하지만 그를 방문하려 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오랫동안 막아섰는데, 특히 그의 아내가 심했다. "당신이," 아내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그이를 망쳤어. 그는 전에도 우울했지만, 작년에는 모두가 그에게서 비정상적인 동요와 이상한 행동을 보았거든. 그런데 당신이 그를 아주 망쳐놓았어. 당신이 그에게 책을 너무 많이 읽혀서 한 달 내내 당신한테서 나오지도 않게 만들었단 말이야." 그래서 결국 아내뿐만 아니라 온 도시 사람이 나에게 달려들어 나를 비난했다. "모두 당신 탓이야." 그들은 말했다. 나는 침묵했고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그가 스스로 일어나 자신을 벌한 것에 신의 확실한 자비가 임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정신 이상을 믿을 수 없었다. 마침내 그들이 나를 그에게 들여보냈고, 그는 나와 작별하기 위해 나를 간곡히 찾았다. 내가 들어갔을 때 나는 그의 날뿐만 아니라 시간까지도 다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쇠약하고 창백했으며, 손은 떨리고 숨을 헐떡였으나, 표정은 감격에 차 있고 기쁨이 가득했다.
"다 이루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오랫동안 자네를 보고 싶었는데, 왜 오지 않았나?"
나는 그에게 사람들이 나를 들여보내지 않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나를 가엾게 여기시어 당신 곁으로 부르시는군.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건 알지만, 수년 만에 처음으로 기쁨과 평화를 느끼네. 해야 할 일을 마치자마자 내 영혼에 낙원이 찾아왔어. 이제 나는 비로소 내 아이들을 사랑하고 입 맞출 자격을 얻었네.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고, 아내도 판사들도 아무도 믿지 않았지. 아이들도 결코 믿지 않을 거야. 나는 내 아이들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를 보네. 내가 죽으면 내 이름은 그들에게 더럽혀지지 않고 남을 거야. 이제 신을 예감하고, 내 심장은 낙원에 있는 것처럼 기쁘네…… 의무를 다했으니……."
그는 숨이 차서 더 말을 잇지 못하면서도 내 손을 뜨겁게 움켜쥐고 열정적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 대화할 수 없었는데, 그의 아내가 끊임없이 우리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는 나에게 속삭일 수 있었다.
"그때 한밤중에 내가 두 번째로 자네를 찾아왔던 일을 기억하나? 내가 꼭 기억하라고 했었지? 내가 왜 들어왔는지 아나? 사실 자네를 죽이러 왔던 거야!"
나는 그 말에 몸을 떨었다.
"그때 나는 자네 집을 나와 어둠 속을 걸으며 거리에서 스스로와 싸웠네. 그러다 갑자기 자네를 너무나 미워하게 되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지. '이제 이 사람이 나를 옭아매고 내 재판관이 되었으니, 그는 모든 것을 다 아니까 나는 내일의 형벌을 피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 자네가 밀고할까 봐 두려웠던 건 아니야(그런 생각은 아예 없었네). 그저 '내가 자수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그를 대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뿐이었지. 자네가 세상 끝에 있다 해도, 자네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네가 살아 있고 모든 것을 알며 나를 판단하고 있다는 그 생각 자체가 견딜 수 없었네. 마치 자네가 모든 불행의 원인이고 모든 죄의 근원인 것처럼 자네를 미워했어. 그때 다시 자네에게 돌아왔던 것을 기억하나, 자네 탁자 위에 단검이 놓여 있던 것을. 나는 앉아서 자네에게도 앉으라고 했고, 1분 동안 고민했네. 만약 내가 자네를 죽였다면, 비록 예전 범죄를 고백하지 않았더라도 살인죄로 결국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야.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런 건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네. 나는 그저 자네를 미워했고, 모든 것에 대해 있는 힘껏 복수하고 싶었을 뿐이야. 하지만 주님께서 내 마음속의 악마를 물리쳐 주셨지. 기억하게, 그때 자네는 죽음과 그토록 가까이 있었단 사실을."
일주일 뒤 그는 세상을 떠났다. 온 도시가 그의 관을 무덤까지 뒤따랐다. 주임 사제가 애절한 추도사를 낭독했다. 사람들은 그의 생명을 앗아간 그 무서운 병을 애도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른 뒤 온 도시가 내게 등을 돌렸고, 심지어는 나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사실 처음에는 소수였지만 점차 많은 사람이 그의 고백이 진실임을 믿기 시작했고, 그들은 큰 호기심과 기쁨을 안고 나를 찾아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사람은 의인의 타락과 수치를 즐기는 법이니까. 하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도시를 완전히 떠났다. 그러고는 5개월 후 주님의 가호로 확고하고 영광스러운 길에 들어설 자격을 얻었으며, 이 길을 내게 그토록 분명하게 일러준 보이지 않는 손길에 감사드렸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여전히 고통받던 하느님의 종 미하일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다.
III. 조시마 장로의 가르침과 담화
5) 러시아의 수도승과 그가 가질 수 있는 의미에 관하여
신부님들과 스승님들, 수도승이란 무엇입니까? 오늘날 계몽된 세상에서 이 단어는 누군가에게는 조롱거리로, 또 누군가에게는 욕설로 쓰이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요. 물론, 아 물론, 수도원에도 기생충이나 다름없는 자들, 육욕에 빠진 자들, 방탕한 자들, 뻔뻔한 부랑자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식견 있는 세속 사람들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너희들은 사회의 무익한 기생충이자, 남의 노동에 빌붙어 사는 뻔뻔한 거지들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수도원에는 고요 속에서 홀로 뜨겁게 기도하기를 갈망하는 겸손하고 온유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이들에 대해서는 덜 언급하거나 아예 침묵으로 일관하지만, 만약 제가 이 온유하고 고독한 기도를 갈망하는 이들로부터 러시아 대지의 구원이 다시 한번 나올지도 모른다고 말한다면 다들 얼마나 놀랄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참으로 '그날과 그 시간, 그리고 달과 해'를 위해 침묵 속에서 준비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직 고독 속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고결하고 훼손되지 않은 채, 하느님 진리의 순수함 속에서 고대 교부들과 사도들, 순교자들로부터 이어받아 간직하고 있으며, 때가 되면 흔들리는 세상의 진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생각입니다. 저 동방으로부터 그 별이 솟아오를 것입니다.
수도승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과연 그릇된 생각일까요, 아니면 오만한 것일까요? 세속 사람들과 하느님의 백성 위에 군림하려는 그들의 세상을 보십시오. 그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과 그분의 진리가 일그러지지 않았습니까? 그들에게는 과학이 있고, 과학에는 오직 감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들만 존재합니다. 하지만 인간 존재의 더 높은 절반인 영적인 세계는 완전히 부정당했고, 어떤 승리감에 도취해, 심지어 증오를 담아 추방당했습니다. 세상은 자유를 선언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더욱더 그랬죠. 그런데 그 자유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오직 노예 상태와 자살뿐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그대에게는 욕구가 있으니 그것을 충족하라. 그대에게는 가장 고귀하고 부유한 사람들과 똑같은 권리가 있으니 말이다. 욕구를 채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더 늘려라." 이것이 오늘날 세상의 가르침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자유라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욕구를 늘릴 권리에서 무엇이 나옵니까? 부자에게는 고립과 영적인 자살이, 가난한 이들에게는 시기와 살인이 남습니다. 권리는 주었지만, 그 욕구를 채울 수단은 제시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거리가 줄어들고 생각을 공중으로 전달하면서 점점 더 하나가 되고, 형제애적 결합으로 나아간다고 장담합니다. 아아, 사람들의 그러한 결합을 믿지 마십시오. 자유를 욕구의 증대와 즉각적인 충족으로 이해하는 것은 스스로의 본성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면에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욕망과 습관, 기상천외한 허상을 키워내기 때문입니다. 오직 서로에 대한 시기심, 육욕, 거들먹거림을 위해 살아갑니다. 근사한 저녁 식사, 외출, 마차, 직위, 하인을 두는 것을 이제는 당연한 필수 조건으로 여기며, 이를 충족하기 위해 생명과 명예, 박애조차 희생하고, 끝내 채우지 못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부유하지 않은 이들도 똑같고, 가난한 이들의 욕구 불만과 시기심은 아직은 술로 억누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들은 술 대신 피에 취하게 될 것입니다. 그쪽으로 그들이 이끌리고 있으니까요.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자유롭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저는 '사상을 위해 싸우는 투사'라는 사람을 알고 있었는데, 그가 제게 직접 말하길 감옥에서 담배를 빼앗기자 그 금단 현상이 너무나 괴로워 담배를 얻을 수만 있다면 자신의 '사상'을 팔아넘길 뻔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런 자가 "인류를 위해 싸우러 간다"고 말합니다. 그런 자가 어디로 가겠으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장의 행동은 할지 몰라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자유 대신 노예 상태에 빠지고, 형제애와 인류의 단결에 봉사하는 대신 도리어 고립과 외톨이가 된 것이 놀랍지 않습니다. 내 젊은 시절, 신비로운 방문객이자 스승이었던 분이 제게 하신 말씀처럼 말입니다.그렇기에 세상에서는 인류에 대한 봉사나 형제애, 인간의 통합에 관한 생각이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으며, 진실로 이런 생각은 이제 조롱의 대상이 되기까지 합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수많은 욕구를 충족하는 데 익숙해진 노예가 어떻게 자신의 습관을 버리고 어디로 떠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고립되어 있고, 전체가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사람들은 결국 물건만 더 많이 쌓아두었을 뿐, 기쁨은 오히려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수도승의 길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순종과 금식, 기도를 비웃지만, 실은 바로 그것들이야말로 진정하고 참된 자유로 가는 길입니다. 저는 덧없고 불필요한 욕구를 잘라내고, 이기적이고 오만한 제 의지를 순종으로 굴복시키고 채찍질하며,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정신의 자유와 그에 따른 정신적 기쁨에 이릅니다! 고립된 부자와 사물과 습관의 폭정에서 해방된 이 수도승 중 누가 더 고귀한 사상을 품고 그것을 위해 헌신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수도승을 고립되었다고 비난하며 '당신은 수도원 담장 안에서 자기 한 몸 구원하려고 은둔하며 인류를 위한 형제적 봉사는 잊었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누가 더 형제애를 위해 헌신하는지 어디 한번 지켜봅시다. 진정한 고립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겪고 있는데, 정작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예로부터 우리에게서 민중을 위한 일꾼들이 나왔으니, 지금이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겸손하고 온유한 금식자들과 침묵 수행자들이 일어나 위대한 과업에 나설 것입니다. 러시아의 구원은 민중에게서 옵니다. 러시아의 수도원은 예부터 늘 민중과 함께했습니다. 만약 민중이 고립되어 있다면 우리도 고립된 것입니다. 민중은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신을 믿지 않는 일꾼은 아무리 마음이 진실하고 지능이 뛰어나더라도 아무것도 해낼 수 없습니다. 이 점을 명심하십시오. 민중은 무신론자를 마주하면 그를 이겨낼 것이고, 하나 된 정교회 러시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민중을 아끼고 그들의 마음을 지키십시오. 고요 속에서 그들을 가르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수도승으로서의 과업입니다. 이 민중이야말로 하느님을 품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6) 주인과 하인에 관하여, 그리고 주인과 하인이 영적으로 서로 형제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하느님,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민중 사이에도 죄는 만연합니다. 타락의 불길은 이제 눈에 보일 정도로 매시간 커지고 있으며, 위에서부터 아래로 번지고 있습니다. 민중 사이에서도 고립이 시작되어 악덕 고리대금업자와 마을의 착취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상인들은 점점 더 명예를 탐하며, 교양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으면서도 스스로를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이려 애씁니다. 그들은 옛 관습을 비열하게 무시하고 조상들의 신앙마저 부끄러워합니다. 귀족들과 어울리려 하지만, 결국은 타락한 농부일 뿐입니다. 민중은 술독에 빠져 썩어가고 있으며, 이미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가족과 아내, 심지어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잔혹함은 또 어떻습니까. 모두 술 때문입니다. 나는 공장에서 열 살짜리 아이들도 보았습니다. 쇠약하고 병들고 허리가 굽은 채 벌써 타락해버린 아이들을요. 숨 막히는 작업실, 덜컹거리는 기계, 온종일 이어지는 고된 노동, 입에 담지 못할 음란한 말들과 술…… 아직 어린아이의 영혼에 필요한 것이 과연 이런 것입니까? 그 아이들에겐 햇살과 아이들의 놀이, 어디에서나 빛나는 모범과 최소한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수도승들이여, 결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을 고문하는 이런 상황을 끝내십시오. 부디 일어나서 이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어서, 하루빨리요. 하지만 하느님께서 러시아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평민들이 타락하여 더러운 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죄악이 하느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며, 죄를 짓는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민중은 여전히 지칠 줄 모르고 진리를 믿으며, 하느님을 인정하고 가슴 벅찬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상류층은 다릅니다. 그들은 과학을 쫓아 오직 자신의 이성만으로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범죄란 없으며 죄 또한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이 없다면 무슨 범죄가 있겠습니까? 유럽에서는 민중이 부유층에 대항해 무력으로 봉기하고 있으며, 지도자들은 도처에서 그들을 피의 길로 이끌며 그들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그들의 분노는 저주받을지니, 잔혹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주님께서 예전에도 여러 번 구원해주셨듯이 이번에도 구해주실 것입니다. 구원은 민중에게서, 그들의 신앙과 겸손함에서 나올 것입니다. 신부님들과 스승님들이여, 민중의 신앙을 지켜주십시오. 이것은 꿈이 아닙니다. 나는 평생 우리 위대한 민중이 지닌 숭고하고 진실한 품위에 놀라곤 했습니다. 나는 직접 보았고 증언할 수 있습니다. 민중의 더러운 죄악과 초라한 행색 속에서도 나는 그것을 보았고 경탄했습니다. 그들은 노예가 아닙니다. 2세기 동안이나 노예로 살았으면서도 말입니다. 그들은 태도와 행동이 자유롭지만, 결코 남을 해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복수심도, 시기심도 없습니다. '당신은 지위가 높고 부유하며 똑똑하고 재능이 있군요. 좋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하지만 나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것을 압니다. 시기심 없이 당신을 존경함으로써, 나는 당신 앞에서 나의 인간적 존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정말로 그들이 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아직 말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행동합니다. 나는 직접 보았고 직접 경험했습니다. 믿으십니까? 우리 러시아 사람은 가난하고 비천할수록 그 안에 이 숭고한 진리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부유한 자들 중에는 악덕 고리대금업자와 마을의 착취자들이 이미 타락해버린 경우가 너무나 많으며, 이는 우리 신부들의 게으름과 무관심에서 비롯된 바가 매우 큽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러시아는 그 겸손함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의 미래를 꿈꾸고, 또 이미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가장 타락한 부자조차도 결국 가난한 이 앞에서 자신의 부를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며, 가난한 이는 그 겸손함을 보고 이해하며 기꺼이 그에게 양보하고, 그의 숭고한 수치심에 다정함으로 화답할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결국 이렇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적 영적 존엄 안에만 평등이 있으며, 이를 이해할 곳은 오직 우리뿐입니다. 형제가 된다면 형제애는 자연히 생길 것이며, 형제애가 먼저 없이는 결코 아무것도 나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은 간직되어 있으며, 그것이 보석 같은 다이아몬드처럼 온 세상에 빛을 발할 것입니다…….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신부님들과 스승님들, 한번은 제게 가슴 벅찬 일이 있었습니다. 길을 떠돌던 중 어느 지방 도시 K에서 예전 제 당번병이었던 아파나시를 만났는데, 그와 헤어진 지 8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시장에서 우연히 저를 본 그는 저를 알아보고는 달려와, 세상에, 얼마나 기뻐하며 제게 달려들던지요. "나리, 주인님, 정말 주인님이십니까? 제가 주인님을 뵙다니요!" 그는 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이미 제대하여 결혼했고, 두 아이까지 둔 상태였습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시장에서 노점을 하며 소소하게 장사를 하고 있었죠. 그의 방은 가난했지만 정갈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는 저를 앉히고 사모바르를 올리고 아내를 부르며 마치 제가 그에게 큰 명절이라도 가져다준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제 앞으로 데려오며 말했습니다. "나리, 축복을 내려주십시오." "내가 무슨 축복을 하겠나." 제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소박하고 겸손한 수도승일 뿐이라네. 아이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겠네. 그리고 아파나시 파블로비치, 자네에 대해서도 헤어진 그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기도하고 있다네. 모든 것이 자네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저는 아는 대로 그에게 다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저를 빤히 쳐다보며, 예전의 주인이었던 장교가 지금은 이런 모습과 이런 옷차림으로 자신의 앞에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기지 않는 듯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왜 우나." 제가 말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여, 차라리 내 몫까지 즐거워하게. 내 길은 기쁘고 밝으니까." 그는 말없이 탄식하며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 뿐이었습니다. "나리의 재산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그가 물었습니다. "수도원에 바쳤네. 지금은 공동생활을 하고 있지." 차를 마신 후 그들과 작별하려는데, 갑자기 그가 수도원에 바치라며 50코페이카를 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보니 또 다른 50코페이카를 제 손에 다급히 쥐여주며 말했습니다. "이건 나리께서 떠돌아다니시는 길에, 혹시 필요하실지도 모르니 가져가십시오." 저는 그의 돈을 받고 그와 그의 아내에게 절을 한 뒤 기쁜 마음으로 떠나며 길에서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 둘 다, 자기 집에 있는 그도, 길을 떠나는 나도, 아마 탄식하며 기쁨에 젖어 고개를 끄덕이고 있겠지.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게 해주셨음을 떠올리면서 말이야.' 그 뒤로 저는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그에게 주인이고 그는 제 하인이었지만, 우리가 사랑과 영적인 감동 속에 서로 입 맞추었을 때 우리 사이에는 위대한 인간적 통합이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이 일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이제는 이렇게 믿습니다. 이 위대하고 소박한 통합이 우리 러시아 사람들 사이에서 때가 되면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되리라고 믿으며, 그 시간도 머지않았습니다.
하인들에 관해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젊은 시절 나는 하인들에게 자주 화를 냈습니다. '요리사가 음식을 뜨겁게 냈네', '당번병이 옷을 제대로 닦지 않았네' 하며 말이죠. 하지만 그때 어린 시절에 내 사랑하는 형에게 들었던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과연 나라는 인간이, 나의 빈곤함과 무지함 때문에 나를 대신해 봉사하는 이들에게 군림할 자격이 있는가?' 나는 가장 단순하고 눈앞에 훤히 보이는 생각조차 우리 마음속에 너무나 늦게 찾아온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세상에 하인 없이 살 수는 없겠지만, 하인이 하인이 아닌 경우보다 정신적으로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대하십시오. 내가 나의 하인에게 하인이 되어주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며, 그가 그것을 알게 하되 내 쪽에서는 오만함이 없고 그의 쪽에서는 의심이 없도록 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하인을 마치 나의 혈육처럼 여겨 마침내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기뻐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입니다. 이는 인간이 오늘날처럼 하인을 찾거나 동료를 하인으로 부리려 하는 대신, 오히려 복음에 따라 스스로 기꺼이 모두의 하인이 되고자 하는 미래의 위대하고 찬란한 인간 통합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인간이 결국 오늘날의 잔혹한 기쁨, 즉 과식과 방탕, 거들먹거림, 허세, 그리고 남을 시기하고 짓누르는 것에서 벗어나 오직 깨달음과 자비의 실천에서 기쁨을 찾게 된다는 것이 과연 꿈에 불과할까요? 나는 결코 그렇지 않으며 그 시간이 머지않았음을 굳게 믿습니다. 사람들은 비웃으며 묻습니다. '그때가 대체 언제 오며, 올 기미라도 있는가?' 나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이 위대한 일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상 10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사상들이 신비로운 시기가 도래하자 갑자기 나타나 온 세상을 휩쓴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고, 우리 민족이 세상에 빛을 비추면 모든 사람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집 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도다.' 비웃는 자들에게 스스로 되묻고 싶습니다. '우리 생각이 꿈이라면, 당신들은 대체 언제 그리스도 없이 오직 이성만으로 당신들의 건물을 세우고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겠습니까?' 그들이 정작 자신들은 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중 가장 순진한 사람들만이 진심으로 그것을 믿고 있을 뿐이며, 나는 그 순진함에 오히려 놀랄 따름입니다. 사실 그들이야말로 우리보다 더 허황된 공상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지만,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순간 결국 세상을 피로 물들이고 말 것입니다. 피는 피를 부르고, 칼을 쓴 자는 칼로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약속이 없었다면, 그들은 이미 서로를 멸망시켜 지구상에 마지막 두 사람만 남았을지도 모릅니다.만약 그리스도의 약속이 없었다면, 그들은 이미 오만함 때문에 서로를 멸망시켜 지구상에 마지막 두 사람만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두 사람조차 오만함을 이기지 못해, 결국 마지막 사람이 그 앞사람을 죽이고 자신마저 파멸시켰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약속, 즉 온유하고 겸손한 자들을 위해 이 파국을 단축하겠다는 약속이 없었다면 실제로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결투를 마치고 장교 군복을 입은 채로 사람들에게 하인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다들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 우리더러 하인을 소파에 앉히고 차라도 대접하란 말인가?" 그들이 말했죠. 나는 대답했습니다. "왜 안 되겠습니까, 가끔은 그렇게 해도 좋을 텐데." 다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경박했고 내 대답은 모호했지만, 나는 그 안에도 어떤 진실이 담겨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8) 기도와 사랑, 그리고 다른 세계들과의 접촉에 관하여
젊은이여, 기도를 잊지 마라. 기도가 진심에서 우러나온다면 매번 새로운 감정이 스칠 것이고, 그 안에서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생각이 떠올라 그대를 다시 기운 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기도가 곧 수양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 기억하라. 매일, 가능한 순간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읊조리도록 하라. '주여, 오늘 주님 앞에 선 모든 이를 불쌍히 여기소서.' 매시간 매 순간 수천 명의 사람이 이 땅에서 삶을 마감하고 그 영혼이 주님 앞에 서기 때문이다. 그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홀로 이 세상을 떠났는지, 아무도 슬퍼해주지 않고 그들이 살았는지조차 아는 이 없이 슬픔과 고독 속에 잊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서 그를 위해 올리는 그대의 기도가 주님께 닿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대는 그를 전혀 모르고, 그 또한 그대를 알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주님 앞에 두려움으로 선 그의 영혼이, 이 순간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는 이가 있으며 자신을 사랑하는 인간 존재가 지상에 남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얼마나 감격스럽겠느냐. 하느님께서도 너희 둘을 더욱 자비로운 눈길로 바라보실 것이다. 그대가 그토록 그를 가엾게 여겼다면, 그대보다 무한히 더 자비롭고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더 그를 가엾게 여기시겠느냐. 그리고 그대를 보아서라도 그를 용서하실 것이다.
형제들이여, 사람의 죄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죄 속에서도 인간을 사랑하라. 그것이 바로 하느님 사랑의 모습이며 지상 사랑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 전체와 모래알 하나하나까지 사랑하라. 나뭇잎 하나, 햇살 한 줄기까지도 사랑하라. 동물도, 식물도, 그 어떤 것도 사랑하라. 만물을 사랑하게 되면 사물 속에 담긴 하느님의 신비를 깨닫게 될 것이다. 한 번 깨닫게 되면 매일 끊임없이 그 신비를 더 깊이 알아가게 될 것이고, 마침내 온 세상을 전체적이고 보편적인 사랑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동물을 사랑하라.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사유의 단초와 평온한 기쁨을 주셨다. 그러니 그것을 방해하지 말고, 괴롭히지 말고, 기쁨을 빼앗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지 마라. 인간이여, 동물 위에 군림하려 하지 마라. 그들은 죄가 없으나, 그대는 자신의 위대함을 뽐내며 지상에 나타나 땅을 썩게 하고 사후에는 고름 섞인 흔적을 남기니, 아, 우리 중 거의 모두가 그러하구나! 아이들을 특별히 사랑하라. 그들 또한 천사처럼 죄가 없고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우리 심장을 정화하고 우리에게 일종의 지표가 되어주기 위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아이를 괴롭히는 자에게 화 있으라. 앙핌 신부님은 내게 아이들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우리들의 방랑 길에서 다정하고 묵묵하시던 그분은, 시주받은 푼돈으로 아이들에게 줄 과자와 사탕을 사서 나눠주시곤 했다. 아이들 앞을 지날 때마다 영혼이 흔들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셨으니,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셨다.
어떤 생각을 마주하면 당혹스러울 때가 있지, 특히 사람들의 죄를 볼 때면 말이야. 그때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될 거다. '힘으로 제압할 것인가, 아니면 겸손한 사랑으로 감화할 것인가?' 항상 이렇게 결정하도록 해라. '겸손한 사랑으로 하겠다.' 한 번 그렇게 결심하면 온 세상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겸손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힘이며, 그에 비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매일 매시간, 매 순간 자기 자신을 살피고 단속하여 그대의 모습이 고결하게 유지되도록 하라. 가령 그대가 어린아이 옆을 지나갈 때, 악에 차서 나쁜 말을 내뱉고 성난 마음으로 지나쳤다고 치자. 그대는 아이가 있었는지조차 몰랐을지 모르지만, 아이는 그대를 보았고 그대의 보기 흉하고 불경한 모습이 아이의 무방비한 마음속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대는 그것을 몰랐겠지만, 어쩌면 그대는 이미 아이의 마음속에 나쁜 씨앗을 뿌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 씨앗은 자라날 테고, 그 모든 이유는 그대가 아이 앞에서 조심하지 않았고 사려 깊고 실천적인 사랑을 마음속에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제들이여, 사랑은 스승이다. 하지만 그 사랑을 얻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랑은 얻기 어렵고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며, 긴 세월에 걸친 긴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우연이 아니라 평생 동안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악인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내 젊은 형제는 새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언뜻 무의미해 보이지만, 사실은 진실이다. 모든 것은 바다와 같아서 다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한곳을 건드리면 세상 끝 어딘가에서도 울림이 생겨나는 법이다. 새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미친 짓이라 해도, 그대가 지금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고결해진다면 새들에게도, 아이에게도, 그대 주변의 모든 동물에게도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모든 것은 바다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 그때 그대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에 고통받으며 일종의 황홀경 속에서 새들에게도 기도하고, 그들이 그대의 죄를 용서해주기를 빌게 될 것이다. 사람들에게 아무리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그 황홀경을 소중히 여겨라.
나의 친구들이여, 하느님께 기쁨을 청하십시오. 어린아이처럼, 하늘의 새들처럼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사역 속에서 사람들의 죄 때문에 동요하지 마십시오. 그 죄가 여러분의 일을 가로막아 이루지 못하게 할까 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죄가 강하고, 불경함이 강하며, 타락한 환경이 강하니 우리는 외롭고 무력하다. 타락한 환경이 우리를 짓눌러 선한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할 것이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아이들아, 이러한 낙담에서 도망치십시오! 여기 유일한 구원이 있으니, 스스로 책임자가 되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것입니다. 친구여, 이것은 참으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책임자가 되는 순간, 여러분은 그것이 실제로 그러하며 바로 당신 자신이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해 죄인임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게으름과 무력함을 남의 탓으로 돌리다 보면 결국 사탄의 오만에 빠져 하느님을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사탄의 오만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그것을 이해하기란 어렵기에, 잘못에 빠져 그것에 동참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 심지어 자신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말입니다. 또한 우리 본성의 가장 강력한 감정과 움직임 중 많은 부분을 우리는 지상에서 아직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에 유혹당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어떤 면에서 여러분의 변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영원한 심판관께서는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을 물으실 것이지, 할 수 없었던 것을 묻지는 않으실 것이며, 여러분은 그때 모든 것을 올바르게 보게 되어 더 이상 논쟁하지 않게 될 것이기에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상에서 우리는 실로 방황하고 있으며, 우리 앞에 귀중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홍수 이전의 인류처럼 파멸하고 완전히 길을 잃었을 것입니다. 지상에서 많은 것이 우리에게 숨겨져 있지만, 그 대신 우리에게는 타 세계, 즉 저 높은 하늘의 세계와 살아있는 연결을 느끼는 비밀스럽고 내밀한 감각이 주어졌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의 뿌리 또한 이곳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있습니다. 철학자들이 사물의 본질을 지상에서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세계에서 씨앗을 가져와 이 땅에 뿌리고 당신의 정원을 가꾸셨습니다. 싹을 틔울 수 있는 모든 것은 싹을 틔웠으나, 가꾸어진 것들은 신비로운 다른 세계와의 접촉을 느끼는 감각을 통해서만 살아가고 생명을 유지합니다. 만약 당신 안에서 이 감각이 약해지거나 사라진다면, 당신 안에서 자라난 것들도 죽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삶에 무관심해지고 심지어 삶을 증오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9) 자신의 동료들을 심판할 수 있는가? 끝까지의 믿음에 관하여
무엇보다 그 누구의 재판관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왜냐하면 재판관 자신도 자기 앞에 선 죄인과 똑같은 죄인임을 깨닫고, 어쩌면 그 앞에 선 자가 저지른 죄의 책임이 그 누구보다 자신에게 있음을 알기 전까지는 지상에서 누구도 죄인을 심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재판관이 될 자격이 생긴다. 겉으로 보기엔 어리석게 들릴지 몰라도 이것이 진실이다. 내가 스스로 의로웠다면 내 앞에 선 죄인 또한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대 마음으로 심판하려는 죄인의 죄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즉시 그를 대신해 고통받고 그를 비난 없이 놓아주어라. 설령 법이 그대를 재판관으로 세웠다 하더라도, 그 정신을 잊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그렇게 하라. 그러면 죄인은 떠나가 스스로를 그대의 심판보다 더 혹독하게 단죄할 것이다. 그가 무감각하게 그대의 입맞춤을 받고 오히려 그대를 비웃으며 떠난다 해도 실망하지 마라. 그의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을 뿐 언젠가는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혹 오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그가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가 그를 대신해 깨닫고 고통받으며 스스로를 단죄하고 고발할 것이며, 진리는 온전히 실현될 것이다. 이것을 믿어라, 의심 없이 믿어라. 바로 여기에 성인들의 모든 희망과 믿음이 달려 있으니 말이다.
끊임없이 행하라. 잠자리에 들 때 '나는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일어나 행하라. 주변에 악하고 무감각한 사람들만 있어 그들이 그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더라도 그들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라. 그들이 듣지 않으려는 것 역시 그대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악에 받친 이들과 대화할 수 없다면 묵묵히 겸허한 마음으로 그들을 섬기되, 결코 희망을 잃지 마라. 모두가 그대를 떠나 억지로 쫓아낸다 해도 홀로 남거든 땅에 엎드려 입 맞추고 그대의 눈물로 땅을 적셔라. 그대의 고독을 아무도 보거나 듣지 못한다 해도 그 눈물을 통해 땅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끝까지 믿어라. 설령 세상 모든 사람이 타락하고 그대 혼자만 신앙을 지키는 상황이 온다 해도, 그때 역시 제물을 바치고 하느님을 찬양하라. 만약 그런 이가 둘만 모여도 그곳이 곧 살아있는 사랑의 세계가 될 것이니, 감격 속에 서로 껴안고 주님을 찬양하라. 둘뿐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주님의 진리는 온전히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스스로 죄를 짓고 자신의 죄나 갑작스러운 과오 때문에 죽을 만큼 괴롭더라도, 다른 이들을 위해 기뻐하라. 의로운 자를 위해 기뻐하고, 비록 그대가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는 의로워 죄를 짓지 않았음을 기뻐하라.
만약 사람들의 악행이 그대를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으로 채워, 악인들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게 한다면, 그 감정을 무엇보다 두려워하라. 즉시 그곳을 떠나 그대 자신이 그 악행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통을 찾아 나서라.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견뎌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이 평온해질 것이며, 그대 또한 죄인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유일한 무죄한 자로서 악인들에게 빛을 비춰줄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빛을 비추었다면 그 빛으로 다른 이들의 길을 밝혀주었을 것이고, 악행을 저지른 자도 그대의 빛 아래서 어쩌면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대가 빛을 비추었음에도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을 보더라도, 굳건히 마음을 지키고 하늘의 빛을 의심하지 마라. 지금 구원받지 못했다면 훗날 구원받으리라고 믿어라. 그때도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들의 자손들이 구원받을 것이다. 그대가 이미 죽었을지라도 그대의 빛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의인은 떠나지만 그의 빛은 남는다. 그리고 구원은 언제나 구원자의 죽음 이후에 이루어진다. 인류는 선지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죽이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죽인 순교자들을 사랑하고 공경한다. 그대는 전체를 위해 일하고 미래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보상을 바라지 마라. 지상에서 그대가 받는 보상은 이미 충분히 크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의로운 자만이 얻는 그대의 정신적인 기쁨이다. 귀족이나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혜롭고 항상 고결하게 행동하라. 절제를 알고 때를 알고, 그것을 배우라. 홀로 있을 때는 기도하라. 땅에 엎드려 입 맞추기를 즐겨라. 땅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끝없이 사랑하라. 모든 이를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며, 그 황홀경과 열광을 찾아라. 그대의 기쁨의 눈물로 땅을 적시고 그 눈물을 사랑하라. 그 열광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소중히 여겨라. 그것은 하느님의 위대한 선물이며, 많은 이가 아닌 선택받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10) 지옥과 지옥의 불에 관한 신비주의적 고찰
신부님들과 스승님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옥이란 무엇인가?' 저는 '더는 사랑할 수 없다는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나 공간으로도 측정할 수 없는 무한한 존재 안에서, 지상에 태어난 어떤 영적 존재에게 '나는 존재하며, 나는 사랑한다'라고 말할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단 한 번, 오직 한 번, 살아있는 실천적 사랑의 순간이 주어졌고 그를 위해 지상에서의 삶과 시간, 기한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되었습니까. 이 행복한 존재는 귀중한 선물을 거부했고, 그 가치를 모르고 사랑하지 않았으며, 조소 어린 시선으로 무관심하게 남았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자는 아브라함의 품을 보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듯 아브라함과 대화하며 낙원을 봅니다. 주님께 나아갈 수도 있지만, 사랑하지 않았던 자가 사랑하는 자들 곁으로 나아가 그들이 사랑으로 베푼 은혜를 저버렸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그는 분명히 깨닫고 스스로 말합니다. '이제 지식을 얻었고 사랑하고 싶지만, 내 사랑에는 더 이상의 노력도 희생도 없을 것이다. 지상의 삶은 끝났고, 아브라함이 생명의 물 한 방울(즉, 과거의 실천적이었던 지상의 삶이라는 선물)을 가지고 와서, 지상에서 내가 저버렸던 지금의 이 갈증의 불꽃을 식혀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삶은 없고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타인을 위해 내 목숨을 바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사랑을 희생할 수 있었던 그 삶은 이미 지나갔고, 그 삶과 지금의 존재 사이에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사람들은 지옥의 물질적인 불꽃에 대해 말하지만, 저는 그 신비를 탐구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합니다. 설령 물질적인 불꽃이 있다 해도 그들은 오히려 기뻐할 것입니다. 그 물질적 고통 속에서는 잠시나마 지금 겪는 더 끔찍한 영적 고통을 잊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영적 고통을 앗아가는 것 또한 불가능합니다. 그 고통은 밖이 아니라 그들 내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앗아갈 수 있다 해도, 그들은 더욱 비참해질 것입니다. 낙원의 의인들이 그들의 고통을 지켜보며 끝없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불렀다 한들, 오히려 그 고통은 더 커질 것입니다. 이미 불가능해진, 보답하는 실천적이고 감사하는 사랑에 대한 갈증의 불꽃을 더 거세게 일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 한구석의 두려움 속에서도 저는 생각합니다. 그 불가능함을 깨닫는 것 자체가 결국에는 그들에게 위안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의인들의 사랑을 받되 보답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그 순종과 겸손의 행위 속에서 마침내 그들이 지상에서 저버렸던 그 실천적 사랑의 어떤 형태를, 그리고 그와 유사한 어떤 행위를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형제들이여, 나의 친구들이여, 제가 이 말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니, 자살한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들보다 더 불행한 존재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은 죄라고 말하며 교회도 겉으로는 그들을 거부하는 듯하지만, 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랑 때문에 화를 내지는 않으실 테니까요. 저는 평생 이런 이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해왔으며, 신부님들과 스승님들께 고백하건대 지금도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 지옥에 머물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한 진리를 깨닫고 거역할 수 없는 진실을 목격했음에도 여전히 오만하고 흉포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탄과 그 오만한 영에 완전히 사로잡힌 끔찍한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지옥은 이미 스스로 선택한 것이자 채워지지 않는 굴레가 되었으니, 그들 스스로가 자원하는 순교자가 된 셈입니다. 하느님과 삶을 저주함으로써 스스로를 저주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막에서 굶주린 자가 제 몸에서 나오는 피를 빨아먹기 시작하는 것처럼, 자신의 악독한 오만함을 양분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으며 용서를 거부하고, 그들을 부르시는 하느님을 저주하며 살아계신 하느님을 미움 없이는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삶의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기를, 하느님께서 스스로와 당신의 모든 피조물을 소멸시키기를 요구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분노의 불길 속에서 타오르며 죽음과 무(無)를 갈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죽음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의 원고는 여기서 끝난다. 거듭 말하지만, 이 원고는 완전하지 않으며 파편적이다. 예를 들어 전기적 정보는 장로의 젊은 시절만을 다루고 있다. 그의 가르침과 견해들은 분명 서로 다른 시기에 다른 동기로 말씀하신 것들이지만, 마치 하나로 이어진 것처럼 정리되어 있다. 장로께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신 말씀들은 정확하게 기록되지 않았으며, 다만 알렉세이 표도로비치의 원고에 담긴 이전의 가르침들과 비교해 볼 때 그 담화의 정신과 성격에 대한 개념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장로의 임종은 실로 너무나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그 마지막 저녁에 모인 모든 이들은 그분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그 죽음이 그렇게 갑자기 닥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앞서 언급했듯이 그 밤에 장로의 생기 있고 활발한 모습을 본 친구들은 잠시나마 건강이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고 확신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놀라움과 함께 전해진 바에 따르면, 임종 5분 전까지도 아무런 징조를 예측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갑자기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낀 듯 창백해졌고, 두 손을 가슴에 강하게 움켜쥐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분께 달려갔지만,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미소를 띠며 그들을 바라보던 장로는 의자에서 조용히 바닥으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얼굴을 땅에 대고 팔을 넓게 벌린 채, 마치 기쁜 황홀경 속에서 직접 가르치셨던 것처럼 땅에 입 맞추며 기도하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하느님께 영혼을 바쳤다. 그분의 부고는 즉시 스키트 전역으로 퍼져 수도원까지 도달했다. 고인을 가까이 모시던 이들과 예법에 따라 임무를 맡은 이들은 고대 전통 방식대로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고, 수도원의 모든 형제는 대성당으로 모여들었다. 소문에 따르면 동이 트기도 전에 부고는 시내에까지 알려졌다고 한다. 아침이 되자 거의 온 도시가 이 사건을 이야기했고, 수많은 시민이 수도원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 일은 다음 권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모두에게 그토록 예기치 않았던 일이 일어났음을 미리 언급해두고자 한다. 수도원과 도시 전체에 퍼진 그 인상은 너무나 기이하고 불안하며 혼란스러웠기에,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 도시에는 많은 이들을 불안하게 했던 그날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