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이치에 맞지 않게 요새를 고집스럽게 사수하다가는 처벌을 받는다.
용기에도 다른 미덕들처럼 한계가 있어서, 이를 넘어서면 악덕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따라서 그 경계를 잘 알지 못하면 무모함과 고집, 그리고 광기로 흐를 수 있으며, 사실 그 접경지대에서 선을 긋기란 매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군사적 규칙상 지켜낼 수 없는 요새를 고집스럽게 방어하는 자들을 처벌하거나 심지어 사형에 처하는 관습이 전쟁 중에 생겨났다. 그렇지 않다면 처벌받지 않으리라는 기대 아래 그 어떤 보잘것없는 요새라도 군대 하나쯤은 저지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몽모랑시 총사령관은 파비아 공성전 당시 티치노 강을 건너 생 앙투안 교외에 주둔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다리 끝에 있는 탑이 완강하게 버티며 포격까지 자초하자 그 안에 있던 자들을 모두 교수형에 처했다. 그 후 그는 도팽과 함께 알프스를 넘어 원정을 떠났을 때, 강제로 빌라네 성을 점령하고 병사들의 광기에 의해 성 안의 모든 이들이 살해당했는데도, 대장과 기수만큼은 같은 이유로 교수형에 처하고 목을 졸라 죽였다. 토리노 총독이었던 마르탱 뒤 벨레 대장 또한 같은 지역에서 생 보니 대장을 그렇게 처단했는데, 생 보니의 부하들은 요새가 함락될 때 이미 모두 학살당한 상태였다. 하지만 요새의 강약에 대한 판단은 공격하는 군대의 힘을 추산하고 저울질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서른 문의 대포를 기다리는 것은 미친 짓이지만, 두 문의 컬버린 포 정도라면 정당하게 고집을 부려볼 수 있는 것처럼), 또는 정복 군주의 위엄과 명성, 그리고 그에게 바쳐야 할 경외심까지 계산에 넣기 때문에, 저울추가 그쪽으로 조금 기우는 위험이 존재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어떤 이들은 자신과 자신의 역량에 대해 너무나 큰 자부심을 가진 나머지, 감히 자신에게 대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없다고 여겨, 운이 다할 때까지 저항하는 곳마다 칼날을 휘두르곤 한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동방의 군주들과 그 계승자들이 사용하는 거만하고 오만하며 야만적인 명령조의 항복 권고와 도전의 형식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인도에 진출했던 지역에서는 왕이 직접 또는 그의 대리인을 통해 정복한 모든 적군은 몸값이나 자비를 구할 수 없다는 보편적이고 불가침한 법을 가진 국가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누구든 할 수만 있다면 승리하여 무장한 적대적인 판사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상황을 무엇보다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