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메
봄이 되어 여원의 1주기가 지나고 관인들이 상복을 벗은 뒤 4월의 옷갈이 시기가 되니, 화사한 기운이 가득한 초여름이었으나 전 재원은 여전히 쓸쓸하고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계셨다. 뜰에 있는 계수나무의 새잎이 내뿜는 향기에도 젊은 여방들은 궁이 재직하던 시절 가모의 인에서 열린 제 무렵의 일을 그리워했다. 겐지로부터 제의 미소기 날도 지금은 조용하겠지요 라는 안부 인사를 전하는 사자가 왔다.
오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물가의 파도도 되돌아오거늘, 그대의 미소기에 깃든 등나무 꽃처럼 수척해진 모습을 어찌 잊으리오.
보랏빛 종이에 쓴 정식 입문의 형태로 접은 편지가 등꽃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재원은 만물이 조금 몸에 스며드는 듯한 날이라 답장을 쓰셨다.
등나무 옷 입던 것이 어제라 생각했는데, 오늘은 미소기의 여울로 바뀌는 세상이여.
덧없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라고만 적힌 편지를 겐지는 평소처럼 열렬히 바라보고 있었다. 재원이 부친의 상을 마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을 때도 겐지로부터 상당한 선물이 왔다. 여왕은 그것을 받는 것은 보기 흉한 일이라며 말씀하셨으나, 구혼자로서의 말이 곁들여져 있다면 거절이라도 하겠건만, 그동안 오랫동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공공연히 선물을 보내온 겐지였기에 친절에서 하는 일이라 반환할 방법이 없다고 여방들은 곤란해했다. 온노미야 쪽으로도 이런 식으로 시종일관 물질적으로 보조하는 겐지였기에, 궁은 겐지를 깊이 사랑하고 계셨다.
"겐지노기미라고 하면 늘 아름다운 소년이 떠오르는데, 이렇게 어른스러운 친절을 보여주시는구려. 얼굴이 고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게 완성되어 있군요."
라고 칭찬하시자 젊은 여방들은 웃고 있었다. 서쪽 여왕을 만나실 때는,
"겐지 대신께서 열렬히 결혼을 신청해 오신다면 좋지 않겠소? 지금 처음 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아주 오래전부터의 일 아니오. 고인이 되신 궁께서도 당신이 재원이 되셨을 때 결혼을 할 수 없게 된 것을 실망하셨지요. 예전에 궁께서 그것을 실행하려 하셨을 때 당신의 마음이 내키지 않아 이야기를 그대로 두었던 것을 후회하며 말씀하시곤 하셨답니다. 그렇지만 궁께서 그렇게 마음먹으셨던 무렵에는 좌대신가의 부인이 계셨으니, 그렇게 하면 산노미야가 가엾다고 여기셔서 제2의 결혼을 이쪽에서 시키기는 어려웠던 것이지요. 당신과 사촌지간인 그 부인도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해도 좋으련만 싶고, 한편으로는 또 새로이 열렬히 신청해 오는 것은 역시 전생의 인연이 아닐까 싶소."
등등 고풍스러운 권고를 하시자 여왕은 쓴웃음을 지으며 듣고 계셨다.
"아버지께서도 저를 그토록 고집불통으로 생각하셨으니, 이제 와서 겐지 대신의 명성이 높다고 결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시니 궁께서도 끝내 권하지 않으셨다. 저택 사람들은 위아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것을 여왕은 알고 경계하고 계셨으나, 겐지 자신은 지극한 정성으로 여왕을 감동시킬 날을 기다리고 있을 뿐 억지로 힘을 써서 결혼을 이루고 싶지는 않다며 여왕의 감정을 존중하고 있었다.
고 태정대신가에서 태어난 겐지의 젊은 도련님의 겐푸쿠 식을 올릴 준비가 되어, 겐지는 니조의 인에서 거행하고 싶어 했으나 할머니인 궁께서 직접 보고 싶어 하시는 것이 당연했기에 그것을 가엾게 여겨 결국 지금까지 키워온 궁의 어전에서 식을 치렀다. 우대장을 비롯한 외삼촌들이 모두 훌륭한 현관이 되어 세력 있는 인물들이었기에 외가 친척들이 보내온 축하 물품과 그 밖의 선물도 엄청났다. 예전부터 교토 전체가 떠들썩할 정도로 화려한 축하 행사가 되었다. 처음부터 4위로 삼으려 겐지는 생각했고 세상도 그렇게 보았으나, 아직 극히 어린아이를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되는 시대에 그런 식으로 조처하는 것은 속인의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겐지는 장남에게 4위를 주는 것을 그만두고 6위의 아사기 포를 입혀버렸다. 오미야가 언어도단이라며 이를 탄식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가엾게 여겨졌다. 겐지는 궁을 찾아뵙고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당장 굳이 낮은 관직에 둘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제게 생각하는 바가 있어 대학 과정을 밟게 할까 합니다. 향후 2, 3년은 아직 겐푸쿠 이전이라 여기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조정의 공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자연히 출세는 뒤따를 것이라 봅니다. 저는 궁중에서 자라 세상 물정 모르고 어전에서 교육받은 몸이라, 폐하께서 친히 스승이 되어 주셨건만 끝내 각고정려를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하여 시를 짓는 데에도 소양이 부족함을 느끼고, 음악을 함에 있어서도 소리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통감했습니다. 변변찮은 부모보다 나은 자식은 자연에 맡겨두어서는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손자 대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될지 불안하여, 그리 조처하는 것입니다. 귀족의 자식으로 태어나 관작이 마음대로 오르고 자가(自家)의 세력에 만심한 청년이 된다면, 학문 따위에 몸을 괴롭히는 일은 필시 우스꽝스러운 일로 보일 것입니다. 놀이에 빠져 있으면서 관위만 쑥쑥 오르는 일이 있더라도, 가문에 권세가 있는 동안에는 속으로 조소하면서도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 아첨을 떨 테니 겉보기에는 훌륭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문의 권력이 실추하거나 보호자와 사별하는 경우, 남들에게 경멸을 당해도 스스로 믿을 구석 없는 비참한 자가 되고 맙니다. 역시 학문이 제일입니다. 일본 정신을 어떻게 살려 쓸 것인가는 학문의 뿌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 여깁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6위밖에 가지고 있지 않음을 보고 있자니 미덥지 못한 기분은 들지만, 장래 국가의 주춧돌이 될 교양을 받아두는 편이 죽어서도 제 마음이 놓일 듯합니다. 지금 당장은 어쨌든 제가 있으니, 궁박한 대학생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도 없으리라 봅니다."
겐지가 이렇게 말하자, 듣고 계시던 궁은 탄식하시며,
"지당하신 말씀이라 생각합니다만, 우대장 등도 너무나 유별난 취향이라며 의아해하고, 아이도 서운한 모양입니다. 대장이나 사에몬노카미의 아들들, 즉 자신보다 낮다고 깔보던 자들의 위계가 모두 위로 위로 올라가는데, 자신은 아사기 포를 입고 있어야 하는 것을 괴로워하는 듯하니 말입니다. 저는 그 점이 가엽더군요."
라고 말씀하신다.
"어른스럽게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군요. 어떠하오, 이리 작은 아이가."
겐지는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학문 등을 하여 사리를 이해하게 되면, 그 원망도 자연히 사라질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젊은 도련님이 스승에게 자(字)를 받는 식은 히가시노인에서 거행하기로 하여, 히가시노인에 식장 설비가 갖추어졌다. 고관들은 모두 이 식을 신기하게 여겨 참회하는 자가 많았다. 박사들은 우쭐하면서도 기가 죽어하는 모양이다.
"사양 말고 정해진 대로 엄격하게 해주십시오."
겐지에게 이런 말을 들었기에 억지로 냉정한 태도를 보이며, 빌려 입은 의상이 몸에 맞지 않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표정과 말투에 학자의 현기를 내비치며 줄지어 앉은 모습은 매우 이색적이었다. 젊은 관리 등은 웃음을 참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웃기 쉬운 상황이 아니며, 점잖은 사람이 술병을 따르는 역으로 뽑혀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색달랐다. 우대장이나 민부경 등이 정중하게 술잔을 권하는 것을 보고도 예법에 어긋난다며 호통을 치니,
"접대역이 너무 많아 좋지 않소. 당신들은 오늘의 학계에 있는 나를 모르고 조정에서 봉직하고 있소? 잘못된 일이야."
등등의 말을 듣고 참지 못해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이 있으면,
"소리가 높으니 그만두게. 매우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니 자리를 물러나시오."
등등 위협한다. 대학 출신의 고관들은 득의양양하게 미소 지으며 겐지의 교육 방침이 훌륭함에 경복하는 기색을 보였다. 잠시 그들 앞에서 말을 해도 박사들은 꾸짖고, 무례하다며 별것 아닌 일도 탓한다. 시끄럽게 제멋대로인 말을 내뱉는 학자들의 얼굴은 밤이 되어 등불이 켜진 무렵부터 더욱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참으로 기묘한 모임이다. 겐지는,
"나처럼 규율에 익숙지 않은 칠칠치 못한 자는 실수하여 꾸지람만 들을 테니,"
라고 말하며 미스 뒤에 숨어서 지켜보았다. 식장의 자리가 부족하여 뒤늦게 왔다가 돌아가려는 대학생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겐지는 그 사람들을 따로 츠리도노 쪽에서 대접했다. 선물도 주었다. 식이 끝나고 퇴출하려는 박사와 시인을 겐지는 다시 붙잡아 시를 짓게 했다. 고관이나 덴조비토 중에서도 그 방면의 재능이 있는 사람은 모두 남겼다. 박사들은 율(律)의 시를, 겐지와 그 밖의 사람들은 절구(絶句)를 지었다. 재미있는 제목을 몬조 박사가 골랐다. 짧은 밤 무렵이었기에 밤이 완전히 밝고 나서 시를 강독했다. 사추벤이 강사 역을 맡았다. 잘생긴 사추벤이 중후하고 예스러운 어조로 시를 낭독하는 것이 느낌이 좋았다. 이 사람은 특히 깊은 학식을 지닌 박사이다. 이토록 대귀족 가문에 태어나 영화를 누릴 법한 사람이 형설의 공을 쌓아 학문을 뜻한다는 것을 여러 비유를 빌려 찬미한 작품들은 구절마다 재미있었다. 중국 사람에게 보여 비평을 받고 싶을 정도의 시들뿐이라는 평을 들었다. 겐지의 시는 물론 걸작이었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정이 잘 나타나 있다며, 참석자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읊었다.
이어서 입학식도 치렀다. 히가시노인 안에 젊은 도련님의 공부방을 마련하고 성실한 학자 한 명을 붙여 겐지가 공부하게 했다. 젊은 도련님은 오미야의 처소에도 자주 가지 않게 되었다. 밤낮으로 귀여워만 하며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처럼 대하려 하셨기에, 그곳에서는 면학이 어려우리라 겐지가 판단하여 학문소를 따로 정해 젊은 도련님을 넣은 것이었다. 한 달에 세 번만 오미야를 찾아뵈어도 좋다고 겐지가 정해주었다. 학문소에만 갇혀 있어야 하는 괴로움에 젊은 도련님은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다. '너무하셔.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출세해서 세상에 중용될 방법은 없을 텐데.'라고 생각은 했지만, 본래 성격이 진지하고 경박함이 없는 소년이었던지라 잘 참아내었다. 어떻게든 빨리 읽어야 할 책들은 전부 읽어, 남들처럼 사회에 나가 입신양명의 길을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매진한 결과 서너 달 만에 『사기』 같은 서적도 읽어버렸다. 겐지는 이제 대학 시험을 보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전에 자신의 앞에서 한번 학력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평소의 외삼촌인 우대장, 시키부다이유, 사추벤 등만을 불러 가정교사인 오나이키에게 명하여 『사기』 속 해석이 어려운 곳, 즉 기숙사 시험 문제로 나올 법한 부분들을 젊은 도련님에게 읽게 했다. 그런데 젊은 도련님은 매우 명료하게 난해한 대목을 여러 방식으로 읽고 의미를 설명할 수 있었다. 스승이 손톱으로 짚어줄 곳이 한 군데도 없음을 보고 사람들은 젊은 도련님에게 학문을 할 천분이 풍부하게 갖춰져 있음을 기뻐했다. 외삼촌인 우대장은 더욱 감동하여,
"아버지인 대신께서 살아계셨다면."
하고 말하며 울고 있었다. 겐지 또한 냉정한 척하려 하지 않았다.
"세상의 부모들이 사랑에 눈이 멀어 자식에 대해서는 정당한 판단조차 내리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저도 본 적이 있습니다만, 막상 제 일이 되고 보니 아이가 자란 만큼 부모는 늙어가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석이 됩니다. 저 같은 사람은 아직 대단한 나이는 아니지만 역시 그렇게 되는군요."
등등의 말을 하며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는 젊은 도련님의 스승은 기뻤다. 명예로운 일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대장이 술잔을 건네자 이미 깊게 취한 채 송구스러워하는 얼굴은 가여울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괴짜로 통하며 학문에 걸맞은 지위도 얻지 못하고 후원자도 없이 빈곤했던 이 사람을 겐지는 안목이 있어 자식의 스승으로 초빙했던 것이다. 졸지에 겐지의 비호를 받는 몸이 되어 젊은 도련님 덕분에 다시 태어난 것 같은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앞으로는 더욱이 지금의 젊은 도련님에게 중용되어 나갈 것이라 여겨졌다.
젊은 도련님이 대학에 가서 기숙사 시험을 치르는 날, 기숙사 문 앞에는 고관들의 차가 무수히 멈춰 섰다. 온갖 조정 대신들이 오늘 다 이곳으로 모인 듯 화려하게 늘어선 사람들 사이로,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온 젊은 도련님은 대학생 동료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품격 있고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관례대로 가난한 학생이 많은 자리 끝에 앉아야 하는 것에 도련님이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이곳에서도 질책하고 위협하는 이가 있어 불쾌했으나, 도련님은 조금도 겁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시험을 치렀다. 예전 학문이 성했던 시절에 뒤지지 않을 만큼 대학이 번성하던 때라 상·중·하 각 계급에서 학생들이 나왔기에 학문과 식견을 갖춘 인재가 속출할 뿐이었다. 문인과 의생 시험도 젊은 도련님은 성적 좋게 통과했기에, 스승과 제자 모두 더욱 분발하여 학업에 열중하게 되었다. 겐지의 집에서도 시회가 수시로 열리곤 하여 박사와 문사들의 전성시대가 온 것처럼 보였다. 어떤 분야든 우수한 자가 인정받지 못하는 법이 없는 시대였다.
황후를 책립하게 되었는데, 사이구의 뇨고는 모친으로부터 위탁받은 분이기에 자신으로서는 반드시 이분을 추천해야 한다는 것이 겐지의 태도였다. 모후도 내친왕이었던 자리에 또다시 왕씨의 황후가 서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처사라고 비난을 가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은 고키덴의 뇨고가 누구보다 빨리 후궁에 들어온 사람이니 그분이 황후로 승격되는 것이 당연하다고도 말했다. 양쪽에 아군이 나타나 모두가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해했다. 효부쿄 친왕이라 불리던 분은 이제 시키부쿄가 되어 당대의 외척으로 중시되고 있었는데, 그 친왕의 공주 또한 예정대로 후궁에 들어와 사이구의 뇨고와 같은 왕뇨고로 모시고 있었다. 타인이 아닌 짙은 친척 관계이기도 하니 모후를 대신하여 황후가 되는 것이 합리적인 처사일 것이라고 그쪽을 돕는 사람들은 말하며 세 뇨고의 경쟁이 되었으나, 결국 우메쓰보의 전 사이구가 황후가 되었다. 여왕의 행운에 세상은 놀랐다. 겐지가 태정대신이 되고 우대장이 내대신이 되었다. 그리고 관백의 일을 겐지는 이 사람에게 양보했다. 이 사람은 정의 관념이 강한 훌륭한 정치가이다. 학문이 깊은 사람이었기에 운새우기 유희에는 졌으나 공무를 처리하는 데는 현명했다. 여러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식은 열 명 정도였고, 어른이 되어 관리가 된 이들은 차례로 승진하기만 했으나, 딸은 뇨고 외에 한 명뿐이었다. 친왕가의 공주에게서 태어난 이로, 고귀함은 적처의 자식에게 뒤지지 않으나 그 모친이 지금은 아제치 다이나곤의 부인이 되어 현재의 남편과의 사이에 여러 자녀가 태어난 가운데 계부의 손에 맡겨두는 것은 가련하다고 하여, 대신은 딸을 데려와 자신의 모친인 오미야에게 공주를 맡겨두었다. 대신은 뇨고를 사랑하는 만큼 이 딸을 사랑하지는 않았으나, 성품도 용모도 아름다운 소녀였다. 그런 연유로 겐지의 젊은 도련님과 이 공주는 같은 집에서 자랐는데, 양쪽 다 열 살이 넘었을 때부터는 다른 곳에 머물게 하여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남성에게는 조심해야 한다고 대신은 딸을 가르치며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젊은 도련님은 마음에 차지 않는지 꽃과 단풍을 보내거나 인형 놀이 재료를 제공하는 등으로 진심을 보여 여전히 놀이 상대라는 지위만은 유지했기에, 공주도 이 사촌을 사랑하여 남자를 얼굴 보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조심성 따위는 무시하고 있었다. 유모 같은 후견인도 이 소년 소녀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익힌 습관이 있었기에 갑자기 엄격하게 둘 사이를 갈라놓을 수는 없다며 눈감아주었으나, 공주는 무사태평할지라도 소년 쪽의 감정은 앞서서 어느샌가 연인의 관계에까지 이른 듯했다. 히가시노인으로 학문을 위해 갇히다시피 된 것은 이 일 때문에 젊은 도련님을 번민케 했다. 아직 어린 듯하면서도 장차 발전이 기대되는 필치로 두 연인이 주고받는 편지가 유치한 아이들의 소행이라 빈틈이 많아 여기저기 떨어져 흩어져 있는 것을 공주를 모시는 여방이 보고 두 사람의 교정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짐작하는 자도 있었으나, 그런 일은 남에게 고할 일도 아니었기에 아무도 그 비밀을 그저 그대로 비밀로 해두었다. 황후궁과 양 대신가의 대향연도 끝나고, 다른 행사 준비로 바쁠 일도 없이 세상이 조용할 무렵, 가을의 지나가는 비가 그치고 억새 잎에 불어오는 바람조차 쓸쓸한 날 저녁에 내대신이 오미야의 처소로 방문했다. 대신은 공주를 오미야의 거처로 불러 비파 등을 연주하게 했다. 오미야는 여러 예술에 능한 분이라 공주에게도 잘 가르치고 계셨다.
"비파는 여자가 타면 조금 반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귀족적인 멋이 있지요. 오늘날은 흉내가 아닌 진정으로 비파를 탈 줄 아는 사람은 드물어졌습니다. 모 친왕, 모 겐지."
등등 대신이 꼽아본 뒤,
"여인 중에서는 태정대신이 사가의 산장에 머물게 하는 사람이 매우 능숙하다지요. 거슬러 올라가면 음악의 천재가 나온 가문이긴 합니다만, 경관에서 낙오하여 지방까지 내려간 남자의 딸에게서 어떻게 그런 명수가 나왔을까요. 겐지 대신도 꽤 감탄하고 계신 듯하여, 이런저런 자리에서 자주 그 사람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다른 예능과 달리 음악은 조금 성질이 달라서, 많이 듣고 많은 사람과 합주해보아야 훨씬 진보하는 것인데, 독학으로 그 경지에 다다랐다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등 이런 이야기도 했지만, 대신은 궁께 비파를 타보시기를 권했다.
"이제 현을 누르는 것 등이 마음대로 되지 않게 되었답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오미야는 훌륭하게 거문고를 연주하셨다.
"그 산장의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무척 총명한 사람인 것 같더군요. 나에게 맡겨준 것은 아들 하나뿐이지만, 그분의 딸도 얻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딸을 그 사람은 낳았고, 게다가 자신이 데리고 있으면 아이가 불행해질 것을 잘 이해하여 훌륭한 부인 쪽으로 그 아이를 보낸 일 같은 것은 대단하다고 나도 들었답니다."
이런 이야기를 오미야께서 하셨다.
"여자는 머리가 좋으면 어떻게든 출세할 수 있는 법이지요."
등 내대신은 다른 이들을 비평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자기 집안의 불행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나는 뇨고가 완벽하지는 못해도 남들보다 떨어지는 딸로 키우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상대에게 패배할 운명을 지녔더군요. 인생이란 이토록 예상을 빗나가는 것인가 싶어 비관적인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아이만이라도 내가 바라는 행운을 누리게 하고 싶어 도구의 겐푸쿠가 머지않았으리라 짐작하며 내심 그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방금 말씀하신 아카시의 행운아가 낳은 황후 후보가 뒤에서 점점 자라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후궁에 들어간다면 대체 누가 경쟁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