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와키
노와키
중궁은 이곳에 마음이 끌려 줄곧 친정에서 생활하고 계셨는데, 음악회를 열어도 좋을 시절이라 할지라도 팔월은 부친인 전황태자의 기일이 있는 달이었기에, 그를 삼가며 지내는 동안 어느덧 풀꽃들은 더욱 만개하였다. 올해의 노와키(가을 태풍) 바람은 예년보다 더욱 거센 기세로 하늘빛마저 바꿀 정도로 불어닥쳤다. 풀꽃들이 시드는 것을 보고는 자연에 그다지 애착이 없는 얄팍한 사람조차 마음이 아픈 법인데, 하물며 이슬이 흩뿌려지고 처참하게 흐트러져 가는 가을 풀을 바라보시는 궁께서는 병이라도 나지 않으실까 염려될 정도로 걱정이 깊으셨다. 가릴 듯한 소매라는 것은 봄날의 벚꽃보다 실제로는 가을 하늘 앞에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날이 저물어 갈수록 짓밟히는 초목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바람 소리만이 점점 거세지는 것이 두려웠으나, 격자창들도 모두 내려버린 터라 궁께서는 그저 풀꽃을 가련히 여기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으셨다.
남쪽 저택도 앞 정원을 수리한 직후였기에, 이번 노와키에도 거칠게 자란 어린 싸리나무가 제멋대로 가지를 휘두르는 것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가지가 꺾여 이슬 맺힐 곳도 없는 형편의 가을 풀을 여왕은 툇마루 가까이 나와 지켜보고 있었다. 겐지는 어린 히메기미가 있는 곳에 있었는데, 중장이 와서 동쪽 와타도노(복도)의 쓰이타테(가림막) 너머로 쓰마도(여닫이문)가 열린 안쪽을 무심코 들여다보니 여관들이 많이 있었다. 중장은 멈춰 서서 소리를 내지 않게 조심하며 엿보고 있었다. 병풍 등도 바람이 거세어 모두 접어 두었기에 저 안쪽까지 잘 보였는데, 그곳 툇마루가 붙은 좌식에 있는 한 여성이 중장의 눈에 들어왔다. 여관들과 섞여 보일 모습이 아니었다. 기품 있고 아름다워서, 문득 향기가 피어오르는 느낌이 들었고, 봄날 새벽 안개 속에서 아름다운 카바자쿠라(산벚나무)가 만발한 것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 정신없이 바라보는 자의 얼굴에까지 애교가 반영될 정도였다. 일찍이 본 적 없는 미인이었다. 미스가 바람에 들려 올라가는 것을 여관들이 눌러가며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어째서인지 그 사람이 웃었다. 매우 아름다웠다. 풀꽃들을 동정하여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무라사키 여왕이 있었던 것이다. 여관들도 예쁜 사람들뿐인 듯했으나, 그런 쪽으로는 눈이 가지 않았다. 아버지 대신이 자신에게 접근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이런 식으로 남성이 보고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미모의 계모와 자신을, 총명한 아버지는 격리하듯 하여 가까이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라 생각하니, 중장은 자신의 엿보기 죄가 두려워져서 자리를 떠나려 할 때, 겐지는 서쪽 후스마를 열고 부인의 거실로 들어왔다.
"싫은 날씨군. 야단스러운 바람이야. 격자를 모두 내려버리는 게 좋겠어. 남자 하인들이 이 근처에도 있을 테니 주의를 기울여야겠지."
라고 겐지가 말하는 것을 듣고, 츄죠는 다시 원래 장소로 다가가 엿보았다. 여왕은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고 겐지도 미소 지으며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모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겐지는 젊고 단정하여, 아름다운 남성의 전성기처럼 보였다. 여인의 미 또한 완성의 영역에 도달했을 때가 아닐까 싶어 가슴이 사무칠 정도라고 츄죠는 생각했으나, 이 동쪽 격자마저 바람에 흩어져 서 있는 곳이 안에서 보일까 두려워 몸을 피하고 말았다. 그러고는 방금 온 것처럼 헛기침 등을 하며 남쪽 툇마루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니 내가 말했듯이 조심성이 없었군."
이렇게 말한 겐지가 비로소 동쪽 아내 문이 열려 있었음을 발견했다. 긴 세월 동안 이런 기회를 얻지 못했었는데, 바람은 바위도 움직인다는 말에 진리가 있다. 삼가고 조신한 귀부인도 바람 때문에 가장자리로 나오셨기에 자신에게 드문 기쁨을 주신 것이라고 중장은 생각했다. 가사들이 나와서,
"대단한 바람입니다. 북동쪽에서 불어오니 이곳은 그나마 다행입니다만, 마바도노와 남쪽 쓰리도노 등은 위험해 보입니다."
등을 주인에게 보고하고, 하인들에게 여러 가지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중장은 어디서 오는 길인가?"
"산조노미야에 있었는데 바람이 거세질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되어 이쪽으로 왔습니다. 그곳에서는 혼자 계셔서 무척 불안해하시고 바람 소리도 어린아이처럼 무서워하시기에 안타까워, 다시 그곳으로 가보려 합니다."
라고 중장은 말했다.
"정말 그렇군. 어서 가게나. 나이가 들어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것이 신기해 보여도 사실은 누구나 다 그런 법이지."
라고 겐지는 오오미야에게 동정하고 있었다.
날씨가 소란스러우니 어떠실까 염려되오나, 이 아손(중장)이 곁을 지키고 있으니 안심하고 찾아뵙지는 않겠소.
라는 인사말을 전했다. 도중에도 바람이 심하게 불어 적적했으나 성실한 공자였기에 산조의 미야(할머니)와 로쿠조원의 아버지에게 문안 인사를 빼놓는 일이 없었다. 궁중의 근신일 등으로 고쇼에서 나갈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관청의 일이 바쁠 때나 임시 용무가 바쁠 때에도 가장 먼저 로쿠조원의 아버지 앞에 나아가, 산조의 미야에서 고쇼로 출근하는 것을 규칙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이었기에 이런 악천후 속에서 몸을 내던지는 듯한 문안 인사도 고생이라 여기지 않았다. 미야께서는 츄죠가 오자 힘을 얻은 듯 기뻐하셨다.
"나이 많은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태풍이군요."
라며 떨고 계셨다. 큰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도 대단했다. 집집마다 기와가 날아다니는 속을 뚫고 온 것은 모험이었다고 미야님은 말씀하셨다. 화려하게 지내시던 시절은 모두 과거의 일이 되고, 오직 이 사람 하나만을 의지해 살아가는 지금의 처지를 뵙자니 인생의 덧없음마저 느껴졌다. 지금도 세상에서 받는 존경이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정작 하나뿐인 아들인 내대신이 취하는 태도에는 따스함이 결여되어 있었다.
밤새도록 불어대는 바람에 잠 못 이룬 중장은 애잔한 기분에 젖어 있었다. 오늘은 연인 생각이 나지 않고, 바람 속에서 틈새로 엿보다가 처음 알게 된 계모 무라사키노 우에의 모습이 잊히질 않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감히 몹쓸 죄를 마음으로 저지르는 것은 아닌가 싶어 반성하려 애썼지만, 다시 똑같은 환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을 미모의 여인이었으니, 그런 부인이 계신 곳에 히가시노키미(타마카즈라)가 섞여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히가시노키미가 가엾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 대신의 훌륭한 성품이 그것으로 증명된 기분도 들었다. 성실한 중장은 무라사키노 우에를 연애 대상으로 생각할 리는 없었지만, 자신도 저런 아내를 얻고 싶다, 짧은 인생이라도 저런 사람과 함께한다면 장수할 수 있을 텐데 따위의 생각을 계속했다.
새벽녘에 바람이 습기를 머금은 무거운 소리가 되더니 무라사메 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로쿠조원에서는 떨어진 건축물들이 모두 쓰러질 것 같습니다."
등등 무관들이 보고했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동안, 넓은 로쿠조원 중에서도 대신의 거처 주변은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을 것이나, 히가시노마치 등은 사람이 적어 하나치루사토 부인은 마음을 졸였을 것이라며 중장은 놀라서, 아직 날이 희미하게 밝아오는 무렵에 산조의 미야님을 찾아 나섰다. 가로지르는 비가 차갑게 수레 안으로 들이치고, 하늘 빛깔마저 험상궂은 길을 가면서도 중장은 왠지 영혼이 몸에 붙어 있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또 어찌 된 일인가, 나 자신에게 근심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인가 싶어 몸서리쳤다. 이래서는 안 될 일이다, 내가 미친 것인가 하며 갖가지로 고뇌하던 중장은 로쿠조원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히가시노키미를 문병하러 갔다. 매우 두려워하던 하나치루사토를 정성껏 위로한 뒤, 가신을 불러 파손된 곳곳의 수선을 명하고는 이어서 남쪽 마당으로 갔다. 아직 격자문도 열리지 않고 사람들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중장은 겐지의 침실 앞에 해당하는 고란에 기대어 정원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뒤라 축산의 나무들도 피해를 입어 가지가 많이 꺾여 있었다. 풀밭이 엉망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노송나무 껍질이나 기와 등이 날아다니고, 타테지토미나 스키가키 등이 무수히 쓰러져 있었다. 잠시 비친 햇살에 원망 섞인 표정의 풀잎 이슬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하늘은 몹시 흐려 있고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이러한 경치를 마주하고 중장은 무심결에 흘러나오는 눈물을 꾹꾹 눌러 닦으며 헛기침을 해 보았다.
"중장이 와 있는 모양이군. 아직 이른 시간일 텐데."
라고 말하며 겐지는 몸을 일으켰다. 부인이 무어라 말하는 듯하지만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겐지가 웃는 소리만 들려왔다.
"예전에는 당신에게 경험하게 한 적 없는 새벽의 이별을, 이제야 처음 겪으니 쓸쓸하겠구려."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듣기 좋게 들려왔다. 왕비의 말은 들리지 않지만, 한쪽의 대화로 미루어 볼 때 이렇게 농담을 주고받는 지금도 긴장된 사이라는 것을 중장은 알 수 있었다. 겐지가 직접 격자문을 여는 것을 보고,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은 실례라 여겨 중장은 조금 뒤로 물러났다.
"어떻던가, 어젯밤 찾아뵙고는 미야님께서 기뻐하시던가?"
"그러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눈물을 흘리시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라고 중장이 말하자 겐지는 웃으며,
"이제 오래 계시지는 못할 걸세. 정성을 다해 모셔두게나. 내대신은 그렇지 않으면 내게 불평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지. 화려하고 번지르르한 것을 좋아해서 부모 효도도 남들 눈을 놀라게 하듯 하고 싶은 사람이야. 인정미를 가지고 어떻게 대우해 드려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지. 복잡한 성격에 매우 총명해서 말세의 대신으로서는 과분한 역량을 가진 사람이지만 말일세. 뭐 그렇다 해도 누구에게나 결점은 있는 법이지."
라며 겐지는 말했다.
"그 엄청난 바람에 중궁 쪽 관원들이 모두 나와 있었던가? 어젯밤 일이 불안하군."
라고 말하며 겐지는 중장을 문병하러 보냈다.
어젯밤 바람이 거세던 무렵에는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저는 그때부터 몸 상태가 조금 좋지 않아서 아직 찾아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는 인사말을 전하게 했다. 그곳을 떠나 복도 문을 지나 중궁의 저택으로 향하는 젊은 중장의 아침 모습이 아름다웠다. 히가시노타이의 남쪽 난간에 서서 중앙의 침전을 바라보니 격자창이 두 칸 정도 올려져 있고, 아직 희미한 새벽빛 속에 발을 걷어 올린 채 여방들이 나와 있었다. 난간에 기대어 정원을 내려다보는 것은 젊은 여방들뿐이었다. 허물없는 모습으로 이런 식으로 나와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지 몰라도, 모두 아름답게 여러 겹의 겉옷과 모까지 갖춰 입고 층층이 앉아 여럿이 함께하고 있으니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중궁은 동녀들을 정원으로 내려보내 벌레 상자에 이슬을 담게 하고 계셨다. 자색, 패랭이꽃색 같은 진하고 옅은 색의 아코메에, 마타리꽃 색의 얇은 겉옷 등 철에 맞는 옷을 입고 네다섯 명씩 무리 지어 이쪽저쪽 풀숲으로 각기 다른 상자를 들고 다니며, 꺾인 패랭이꽃의 처량한 가지 따위도 꺾어 오고 있었다. 안개 속으로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방 안을 통과해 불어오는 바람은 시종의 향기로운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귀부인의 세계다운 세련미가 넘쳐나는 거처였다. 놀라게 할까 봐 중장은 선뜻 나서기 어려웠으나, 조용히 발소리를 내며 걸어가자 여방들은 별로 놀란 기색도 없이 모두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미야님께서 궁에 들어오실 때 동녀의 모습으로 호종한 이래로 알고 지낸 여방들이 많아 중장에게는 친숙한 장소이기도 했다. 겐지의 인사를 전한 뒤, 사이쇼노키미와 나이시 등이 있는 것을 알고 중장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에는 다른 어떤 곳보다 고결한 공기가 감돌았다. 그런 맑은 기분 속에서 여방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중장은 어제부터 시작된 고민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돌아와 보니 남쪽 어전은 격자창이 모두 올려져 있었고, 부인은 어젯밤 걱정하며 잠든 화초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로 엉망이 된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중장은 계단 쪽으로 가서 중궁의 답장을 전했다.
거친 바람도 막아주시겠지 하며 어리게만 의지하고 있었기에, 문병을 받고서야 비로소 안심하였습니다.
라고 하였다.
"연약한 미야님이시니 그랬겠지. 여자라면 누구나 다 무서워서 견딜 수 없었을 그런 밤이었으니, 사실 불친절하게 생각하셨을 거야."
라고 말하며 겐지는 곧장 방문하기로 했다. 노시 등을 입기 위해 건너편 방의 발을 걷어 올리고 겐지가 들어갈 때, 짧은 기초를 가까이 당겨 세운 사람의 소매가 보였는데, 그게 여왕일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했다. 곤란한 일이라 생각한 중장은 일부러 바깥쪽을 바라보았다. 겐지는 거울을 향하며 부인에게 나직이 말했다.
"중장의 아침 모습이 아름답지 않소? 아직 어리긴 하지만 세련되어 보이는 것이 부모라서 그런 것일까."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그 무엇보다 뛰어난 미를 지녔다고 겐지는 자신하고 있었다. 차림새를 가다듬느라 애를 먹은 뒤,
"중궁을 뵐 때는 언제나 긴장되는군. 어떤 식견을 겉으로 드러내시는 건 아니지만, 앞에 나서는 사람은 긴장하게 된단 말이야. 아주 여성스럽고도 높은 비평안을 갖추신 분이지."
이렇게 말하며 겐지는 어미렴 밖으로 나오려 했으나, 중장이 한쪽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겐지가 나오는 줄도 모르는 기색인 것을 본 예민한 감각의 겐지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발길을 돌려 부인에게,
"어제 바람 틈에 중장이 그대를 본 게 아닐까? 문이 열려 있었을 테니 말이야."
라고 하자 여왕은 얼굴을 붉히며,
"설마요. 와타도노 쪽으로는 사람 발소리가 나지 않았는걸요."
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심스럽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