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히메
그 무렵 세상으로부터 존재를 무시당하며 지내는 노친왕이 계셨다. 어머니 쪽도 높은 귀족이라 제의 후계자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춘 분이었으나, 시대가 바뀌어 정권이 반대편으로 넘어가 버린 변동 이후로는 완전히 무력한 처지가 되었다. 외척들도 찬란한 미래의 희망을 잃은 것에 모두 비관하여 저마다 여러 형태로 이 세상을 등져버렸기에,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의지할 곳 없는 고립된 궁이 되었다. 부인 또한 옛 대신의 딸이었으나, 마음 졸이는 역경 속에 놓여 결혼 초기에 부모들이 그렸던 꿈을 떠올려 보면 현실과 너무나 큰 거리에 슬퍼질 때도 있었지만, 유일한 아내로서 사랑받고 있음에 위안을 얻으며 서로 신뢰하는 상애의 부부였다. 세월이 흘러도 자식이 없었던 탓에 외롭고 지루함을 달래줄 아름다운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친왕은 때때로 말씀하시곤 했는데, 뜻밖에도 아름다운 여왕이 태어났다. 이를 지극히 사랑하며 키우던 중, 이어 부인이 임신했을 때 이번에는 아들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셨으나 또다시 공주가 태어났다. 순산이었으나 산후병을 앓고 부인은 죽었다. 이 슬픈 사실 앞에서 친왕은 탄식에 잠기셨다. 세상에 머물수록 냉대받고 견디기 힘든 일이 많아도, 버릴 수 없는 다정한 아내가 자신의 마음을 은둔의 길로 이끌지 못하게 하는 굴레가 되어 오늘까지 승려가 되지 않으셨던 것이다. 홀로 살아남아 홀아비가 된 것이 견디기 힘든 일은 아니었으나, 어린아이들을 사내의 손으로 키우는 것도 친왕의 체면상 좋지 않은 일이라 이참에 입도(入道)하려 마음먹으셨다. 하지만 보호자 없는 두 어린 공주를 버리는 것을 슬퍼하여 실행을 미루는 사이 세월이 흘러, 저마다 성장해가는 여왕들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는 것을 매일의 위안으로 삼아 살아가셨다. 뒤에 태어난 여왕을 시녀들도,
"이 아이를 낳다가 부인께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이런 말을 하며 열심히 돌보려 하지 않았으나, 친왕은 임종의 자리에서 부인이 의식도 몽롱한 상태이면서도 갓 태어난 공주를 걱정하며,
"저는 이제 살 수 없으니, 이 아이만큼은 제 유품이라 생각하시고 사랑해주셔요."
라며 한마디 남기신 것을 떠올리며, 부인이 숨을 거둘 때 이 세상에 나온 아이에 대해 그 숙명이 원망스럽게 느껴질 법도 하건만, 부처님의 뜻으로 이렇게 된 것이리라 여기셨다. 임종의 순간까지 이 아이를 가엽게 여기고 자신에게 부탁하고 가셨기에, 이 여왕을 유달리 아끼셨다. 단아한 용모로 범상치 않은 아름다움을 지닌 공주였다. 언니는 정숙한 귀족다운 면모가 엿보이고, 용모나 몸가짐에도 뛰어난 품격이 있는 여왕이었다. 친왕이 이 공주를 소중히 여기시는 마음에는 각별한 것이 있어 둘 다 부족함 없이 보살피셨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아 세월이 흐를수록 궁가의 재정은 궁핍해져 갔다. 뇨보들도 불안함을 느끼고는 참지 못한 채 하나둘씩 저택에서 떠나갔다. 부인이 죽었을 때 동생의 유모 등을 고를 여유조차 없었기에 신분이 낮은 유모에게는 낮은 절조밖에 없어, 아직 공주가 어릴 때 저택을 나가버렸다. 그 후로는 친왕이 손수 어린 여왕을 돌보셨다.
저택은 과연 넓고 훌륭했으나, 연못이나 산의 형태에만 예전의 흔적을 남긴 채 황폐해진 정원을 적적한 나날을 보내시는 친왕은 자주 바라보셨다. 가사(家司)들 중에도 눈치 있는 자가 없어 수선을 조금씩 가할 방법도 찾지 않았기에 잡초는 높게 자라고, 처마의 비비추가 기세 좋게 푸르름을 펼치고 있었다. 계절마다 피는 초목도 같은 취향을 가진 부인과 함께 보며 예전에는 마음의 위안이 되었으나, 고독한 지금의 친왕 눈에는 그러한 자연의 색조차 그저 쓸쓸하고 정들 수 없는 것으로 보여, 지불(持佛)의 장식만을 유달리 훌륭하게 꾸미시고 매일 불공만 드리며 지내셨다. 자식이라는 굴레에 얽매여 출가하지 못하는 것조차 불행한 운명이라 탄식하시는 친왕이셨으니, 하물며 보통 사람들이 하는 재혼 등을 새삼 하려 할 리 없다는 생각이 세월과 함께 더해갔다. 그만큼 세상으로부터 멀어져 가시는 친왕이셨기에 마음만은 승려와 다를 바 없이 되어, 부인 사후에는 이성을 구하려는 마음은 장난으로도 품으신 적이 없었다.
"그렇게 언제까지나 부인 생각만 하고 계시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아내와 사별한 직후에는 이보다 슬픈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른 만큼 심경의 변화가 있어야지요.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러하듯이 후처를 맞이하여 결혼하신다면 궁가의 초라한 재정도 나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이런 뒷공론을 말하며 걸맞은 후처를 맺어주려 하는 이들도 꽤 많았으나, 친왕은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다.
염불을 하시는 틈틈이 공주들의 말동무가 되어, 제법 자란 두 여왕에게 거문고를 가르치거나 바둑을 두게 하고, 시의 한자 변을 맞춰보는 유희를 즐기게 하곤 하셨다. 첫째 여왕은 품위 있고 그윽한 용모를 갖추었고, 둘째 공주는 대범하면서도 가련한 자태를 지녔으며, 수줍어하는 모습 또한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봄날 화창한 햇살 아래 연못의 물새들이 날개를 나란히 하고 헤엄치며 저마다 지저귀는 소리 등은 평소 무관심하게 보고 듣던 마음이었으나, 문득 짝을 이루어 떠나지 않는 모습에 부러움을 느끼게 하는 정원을 바라보며 친왕은 여왕들에게 거문고를 가르치고 계셨다. 작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저마다의 악기를 열심을 다해 연주하는 소리 또한 흥미롭게 들려, 친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버리고 짝을 떠나간 물새여, 잠시 머무는 이 세상에 나만 뒤처졌구나."
슬픈 운명을 짊어지고 있구나."
라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닦으셨다. 용모가 아름다운 친왕이셨다. 긴 수행 생활로 수척해지셨으나 그 때문에 더욱 우아한 모습으로 보였다. 공주들과 함께 계실 때는 예의를 잃지 않으셨고, 낡은 직의를 위에 걸치고 계신 모습 또한 귀인다우셨다. 큰 공주가 벼루를 조용히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서예 연습을 하듯 벼루 위에 글자를 쓰고 있는 것을 친왕께서 보시고,
"여기에 쓰거라. 벼루에 글자를 쓰는 것이 아니란다."
라고 하며 종이를 건네자, 여왕은 부끄러운 듯 글을 적는다.
"어찌 이리 서둘러 둥지를 떠났는가 생각하니, 외로운 물새의 인연을 알겠구나."
좋은 노래는 아니었으나 그 순간에는 가슴에 사무치게 느껴졌다. 장래가 기대되는 좋은 글씨체이기는 하나 아직 유려하게 이어서 쓰지는 못하고 있었다.
"너도 써보렴."
라고 말씀하시니, 이는 조금 더 어린 글씨로, 한참 걸려 썼다.
"울며 날개 깃을 덮어줄 님 없으니, 내 홀로 둥지 지키는 새가 되었구나."
낡은 옷을 입고 이 자리에 시녀조차 시중들지 않는, 가련하고 아름다운 자매를 쓸쓸한 집 안에서 바라보는 아버지 친왕께서 마음 아프지 않을 리가 없었다. 경전을 한 손에 들고 보시며 친왕은 거문고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셨다.
큰 공주에게는 비파를, 둘째 공주에게는 십삼현 거문고를 가르치시며 틈날 때마다 함께 연주하신 덕분에 두 아이는 능숙하게 연주하게 되었다. 아버지 제와 어머니 뇨고와 일찍 사별하고 믿음직한 보호자를 두지 못했던 탓에, 친왕은 학문을 깊이 할 여유가 없었다. 하물며 처세술 따위를 알 리 없는 귀인이셨으나, 놀라울 정도로 고상하고 대범하며 여성처럼 나약한 천성을 지니고 계셨다. 아버지 제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나 외할아버지인 대신의 유산 등, 영원히 줄어들지 않으리라 여겨졌던 많은 재산이 어디로 누구에게 털렸는지 알 수 없게 사라져 버리고, 다만 실내 도구들만이 화려하게 남아 있었다. 모시는 이도 없고 힘이 되어주려는 이도 없었다. 적적한 나날을 보내시느라 아악료의 음악 전문가 중 뛰어난 이들을 불러와 예술만을 열심히 익혀 어른이 되셨기에 음악에는 조예가 깊으셨다. 히카루 겐지의 아우로 여덟 번째 궁이라 불렸던 분으로, 레이제이인이 도구였던 시대에 스자쿠인의 왕대비가 황태자 폐위를 계획하며 이 여덟 번째 궁을 그 자리에 대신 세우려 했고, 그 일파에게 이용당한 적이 있었기에 히카루 겐지 일파로부터 냉대를 받으셨다. 그 후 세상은 히카루 겐지 일파만이 번성하는 시대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기에, 여덟 번째 궁은 세상과 절연한 듯 지내게 되셨고, 겹친 불행으로 승려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며 현세의 꿈을 모두 버리게 되셨던 것이다.
그사이 여덟 번째 궁의 저택은 화재로 전소하고 말았다. 이 재난으로 교토 안에는 더 머물 만한 곳도, 적당한 저택도 없었기에 우지에 마련해두었던 좋은 산장으로 가서 살게 되셨다. 세상에 집착은 없으셨지만 정녕 교토를 떠나게 되는 것은 친왕의 마음에 슬픈 일이었다. 아지로 어업을 하는 곳과 가까운 강가라, 조용한 산골 마을의 거처를 찾기에는 부적합한 점도 있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도심은 아니었으나 산과 물의 경치는 훌륭한 마을이었기에, 그것들을 바라보며 쓸쓸한 상념에 잠기실 때가 많았다. 이처럼 도읍에서 먼 시골로 이사를 와서도 아내가 있었더라면 하는 탄식을 멈추는 법이 없었다.
"함께했던 사람도 머물던 집도 연기가 되어 사라졌거늘, 어찌하여 이 몸만이 덧없이 남아 있는 것인가."
이렇게까지 살아야 할 이유가 없으리라 여겨질 정도로 고인을 그리워하셨다. 교토에 사실 때조차 찾는 이가 없었으니, 산 너머까지 멀리 찾아올 사람 따위 있을 리 없었다. 아침에 핀 안개가 종일 산을 감싸고 있는 날처럼 어두운 마음으로 친왕은 나날을 보내셨으나, 이 우지에는 성승으로 존경받을 아자리가 한 분 계셨다. 불교 학문이 깊음을 세상에서도 인정받았으나, 궁중의 부름 등에도 가급적 나서는 것을 피해 우지의 자방에만 은거하고 계셨다. 여덟 번째 궁이 우지의 산장으로 옮겨와 고독한 생활을 시작하며 불도를 연구하고자 종교 서적을 읽고 계심을 알고, 감사한 마음으로 종종 방문하러 오시곤 했다. 지금까지 독학으로 읽어오던 서적의 깊은 의미와 이해 방식을 가르쳐 줄 수 있는 분이 아자리였다. 이 세상은 다만 덧없는 것이며 허무한 곳임을 이 스승으로부터 더욱 깊이 가르침을 받아,
"이제 마음만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저에게는 아시다시피 어린 자식들이 있어 이 세상과의 인연을 끊지 못해 승려가 될 수도 없군요."
라며, 친왕은 숨김없이 아자리에게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곤 하셨다. 이 아자리는 레이제이인에도 드나들며 인에게 경전 등을 가르쳐 드리는 분이었다. 어느 날 교토에 나왔던 우지의 아자리가 인의 어소에 들렀는데, 인은 평소처럼 불서를 꺼내어 질문을 던지셨다. 그날 아자리가,
"여덟 번째 궁께서는 총명하시고 종교 학문에 매우 깊은 조예를 가지고 계십니다. 부처님께 무슨 뜻이 있어 이 세상에 내보내신 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모든 것을 깨달으신 듯한 그 심경은 훌륭한 고승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올렸다.
"아직 출가는 하지 않은 것인가. '속세의 성자'라고 젊은이들이 부르던데,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이군."
라고 인(院)은 말씀하셨다. 가오루 중장도 이때 어전(御前)에 있었는데, 스스로도 인생을 덧없게 여기면서도 아직 불도 수행도 제대로 하지 않고 태만히 하는 자신이 유감스럽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세속에 있으면서도 고승의 정신으로 살아가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인지, 하치노미야에 대한 소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출가에 대한 뜻은 충분히 가지고 계십니다만, 처음에는 부인에 대한 생각으로 주저하셨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가여운 공주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점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겠다고 스스로 말씀하십니다."
아자리는 이렇게 인(院)께 아뢰고 있었다. 우아한 풍채는 아니나 음악만큼은 좋아하는 아자리가,
"하치노미야 공주님들이 합주하시는 거문고와 비파 소리가 제 절로 우지가와 강물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데, 무척이나 훌륭하여 극락의 유희가 연상됩니다."
이런 옛스러운 칭찬을 하자, 인의 제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그런 성인의 집에서 자랐으니 예술적 취미는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군요. 친왕께서 걱정하시는 분들을, 순서로 보아 내가 잠시나마 더 오래 이 세상에 머물 수 있다면, 나에게 맡겨주지 않으시겠소?"
라고 말씀하셨다. 인의 제는 열 번째 궁이었다. 스자쿠인이 만년에 로쿠조인에게 부탁했던 공주님의 예를 떠올리며, 그 공주들을 얻어 적적함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신 것이다. 젊은 가오루 중장은 오히려 공주들에 대한 이야기에는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고, 모든 것을 깨달으신 여덟 번째 궁의 심경만을 동경하여 직접 뵙고 싶다고 간절히 생각했다.
아자리가 돌아갈 때에도,
"반드시 우지로 찾아뵙고 친왕의 가르침을 받고 싶으니, 스님께서 먼저 은밀히 친왕의 뜻을 여쭈어 주십시오."
라고 가오루는 부탁했다. 인(院)의 제(帝)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적적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전해 들었습니다."
라고 친왕께 전하게 하셨다. 또한,
세상을 싫어하는 마음은 산으로 통하건만 겹겹이 쌓인 구름이 그대를 가로막는구려
라는 노래도 함께 부탁하셨다.
아자리는 여덟 번째 궁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이 임무에 자부심을 느끼며 산장으로 향했다. 평범한 사람이 드나들기 어려운 산골짜기에 인의 편지를 가지고 아자리가 찾아왔으니, 친왕은 무척 기뻐하시며 산촌다운 술과 안주를 내어 노고를 치하하셨다. 답신으로,
세상 인연 끊고 마음이 맑아졌다는 건 아니지만 세상 피해 우지산에 잠시 머물고 있다오
종교에 관해서는 겸손하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고독한 인간으로서의 근황을 알리셨기에 인은 친왕이 아직 이 세상에 대한 불평을 품고 계신 것으로 여겨 동정하셨다.
아자리는 가오루 중장이 종교적인 인물이라는 점 등을 이야기하며,
"불도 학문을 깊이 하고 싶다는 소망을 소년 시절부터 품어왔습니다만, 그 공부에 전념하는 것은 저처럼 머리가 좋지 못한 자가 마치 우월한 존재라도 된 양 세상을 내려다보는 잘못된 태도처럼 여겨져서, 그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겠지만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눈에 띄지 않게 하려다 보니 게을러지기도 하고 다른 일에 휘말리기도 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 훌륭한 경지에 이르신 친왕님의 소식을 듣고 꼭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하셨습니다라며 정중한 전언을 전해 들었습니다."
등등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