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은 성의가 인정받지 못한 것에 실망하여 돌아가 버렸다. 그 뒤,
"인정을 모르는 분이네. 항상 소심하기만 하고. 저 정도의 미모를 지니고 계시면서 말이야."
등등 히메기미를 비난하며 모두 한곳에서 잠들고 말았다.
한밤중이라 생각될 무렵 큰 니키미는 심한 기침을 계속하다가 일어났다. 등불에 비친 머리카락은 하얗고 그 위에 검은 천을 쓰고 있었는데, 히메기미가 온 것을 의아하게 여겨 족제비가 그런 행동을 하듯 이마에 한 손을 얹고는,
"수상하군, 이 사람은 누구인가?"
라고 끈질긴 목소리로 말하며 히메기미 쪽을 쏘아볼 때, 우키후네는 이제 자신이 잡아먹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령이 자신을 데려갔을 때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기에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때보다 지금이 더 무섭게 느껴진 히메기미는 긴 병치레 끝에 소생하여 여러 가지 과거의 기억으로 고통받았고, 지금 또 무섭다고밖엔 말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죽었다면 이보다 더 무서운 형상들 속에 놓여 있었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되었다. 잠들지 못한 채 옛날 일들이 연달아 떠오르는 우키후네는 자신의 생애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얼굴조차 뵐 수 없었다. 머나먼 동쪽 나라를 어머니를 따라 여기저기 떠돌아다녔고, 가끔씩이나마 만날 수 있어 기쁘고 든든했던 언니에게서 예기치 못한 장애를 겪어 곧 헤어지게 되었으며, 결혼을 하고 그 사람을 신뢰함으로써 겨우 과거의 불행을 위로받으려 할 때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음을 깨닫자, 미야를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품었던 것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분 때문에 자신은 이런 떠돌이 신세가 되었는데, 타치바나의 코지마 빛깔에 빗대어 변치 않는 사랑을 고백받았을 때 어째서 기뻐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었다. 애정도 연정도 모두 식어버린 기분이다. 처음부터 옅지만 변치 않는 사랑을 주었던 그 사람에 관해서는, 그때와 그 시절의 여러 경우들이 떠올라 미야에 대한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애정을 느끼는 우키후네 히메기미였다. 이렇듯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그 사람에게 들켰을 때의 부끄러움에 비할 바는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러면서도 결국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그 사람을 먼발치에서나마 볼 날이 있을까 싶어 슬퍼지기도 했다. 자신은 아직 좋지 못한 집착을 가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은 하지 말자고 마음을 돌리려 하기도 했다.
겨우 닭 우는소리가 들려왔다. 우키후네는 무척 기뻤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더욱 기쁠 텐데, 히메기미는 이런 생각을 하며 밤을 지새우느라 기분도 좋지 않았다. 저쪽으로 돌아갈 때 동행해 줄 사람도 일찍 오지 않기에 그대로 누워 있는데, 지난밤 코를 골던 니 시녀는 일찍 일어나 죽 같은 형편없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히메기미도 어서 드세요."
등등 말하며 곁에 와서 참견하는 것도 기분이 나빴다. 이런 아침이 익숙하지 않아,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요."
라고 온화하게 거절했건만, 굳이 권하며 먹이려 하는 것도 성가셨다.
저잣거리의 승려들이 이 집에 여럿 찾아와,
"소즈님께서 오늘 산에서 내려오신다네."
등등 마당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어찌하여 갑자기 그렇게 되었습니까?"
"잇폰노미야님께서 모노노케로 앓고 계셔서 본산의 좌주님께서 수법을 행하고 계시지만, 아무래도 소즈님께서 직접 나오시지 않으면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되어 어제만 해도 두 번이나 부름을 받으셨지요. 좌대신 가문의 사위 쇼쇼가 어젯밤 늦게 다시 찾아와 주구님의 서신 등을 전했기 때문에 산을 내려오기로 결심하신 것이오."
등등 뽐내듯 말하고 있다. 이곳에 소즈가 들렀을 때 부끄럽더라도 만나 뵙고 니(尼)가 되게 해달라고 빌어야겠다, 평소 사사건건 참견할 것 같은 니 부인도 부재중이고 다른 이들도 적어 형편이 좋겠다고 마음먹은 우키후네는 일어나서,
"소즈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출가하고 싶사오니, 부인께서도 그렇게 말씀드려 주십시오."
하고 니키미에게 말하자, 그분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머물던 방으로 돌아온 우키후네는, 그동안 니키미가 자신의 머리를 남에게 빗게 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시녀에게 손을 대게 하는 것이 싫었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그저 조금 풀어내리면서, 어머니께 예전의 내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드리지도 못한 채 끝나는 것인가 싶어 슬펐다. 심한 병으로 머리숱도 조금 줄어든 기분이 들었지만, 딱히 많이 쇠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척이나 숱이 많아 육 척은 넘는 머리카락 끝부분의 아름다움은 오히려 더욱 가늘고 아름다워진 듯 보였다. '어머니는 이런 나를 보라고 (칠흑 같은 내 검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던가)' 우키후네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녁 무렵 소즈가 절에서 왔다. 남쪽 방이 청소되고 장식되어 그곳을 둥근 머리들이 여럿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히메기미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앞섰다. 소즈는 어머니인 니키미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 이후로 건강은 좀 어떠셨습니까?"
라고 안부를 물었다.
"동쪽 부인께서는 참배하러 나가셨다더군요. 저쪽에 있던 사람은 아직 여기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어젯밤에는 제 거처에 와서 묵었지요. 몸이 좋지 않으니 당신께 니의 계를 받게 해달라고 청하더군요."
하고 대니키미는 말했다. 그 자리를 떠나 소즈는 히메기미의 방으로 왔다.
"여기에 계시는구려."
라고 말하며 기초 앞에 앉았다.
"그때 우연히 당신을 구하게 된 것도 전생의 인연이라 생각하여 기도를 올리며 애썼습니다만, 승려가 용건 없이 여성에게 편지를 올릴 수 없어 안부를 여쭙지 못했습니다. 이런 세상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자의 집에 어찌 지금까지 머물고 계시는지요."
하고 소즈님은 말했다.
"저는 이제 살 수 없으리라 여겼던 몸인데, 신기한 구원을 받아 오늘까지 살아있는 것이 슬프게 느껴집니다. 한편으로는 여러모로 친절하게 돌봐주신 은혜를 저 같은 어리석은 사람도 깊이 가슴에 새겨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이대로 두어서는 더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제 마음을 구해주셔서 니로 만들어 주십시오. 부디 그렇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살아가더라도 도저히 평범한 몸으로는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저이기에 그렇습니다."
라고 히메기미는 말한다.
"아직 젊은 당신이 어찌 그런 생각을 깊이 하는 것이오. 오히려 죄가 되는 일이라오. 결심할 때는 굳은 신념이 있는 듯해도, 세월이 흐르다 보면 여인의 몸으로는 죄에 빠지기 쉬운 법이지요."
라며 소즈님은 말했으나,
"저는 어린 시절부터 근심을 안고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었기에, 어머니 등도 니로 만들어 돌보고 싶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답니다. 하물며 조금 자라 인생을 조금씩 알게 된 뒤로는, 평범한 사람이 되지 않고 이 세상에서 불도를 잘 닦을 수 있는 처지를 택하여, 적어도 내세에서나마 안락을 얻고 싶다는 희망이 점점 커졌습니다만, 부처님께서 그 허락을 내려주실 날이 가까워져서인지 병들고 말았습니다. 부디 이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우키후네 히메기미는 이렇게 울면서 간청하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다. 남보다 뛰어난 용모를 지닌 사람이 어찌하여 세상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그러나 언젠가 나타났던 모노노케도 이 사람은 사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했었다. 이유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사람은 그대로 두었더라면 지금까지 살아있을 사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나쁜 모노노케에게 홀리기 시작한 사람이기에 앞으로도 위험이 없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소즈는 생각하여,
"어쨌든 마음을 먹고 원하는 것은 부처님께서도 가장 칭찬하실만한 선행입니다. 나 또한 승려이니 반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니의 계를 주는 것은 간단한 일이나, 궁궐의 급한 용무로 산에서 내려와 오늘 밤 안으로 궁중에 들어가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수법을 시작하면 칠 일 후에나 나오게 되겠지요. 그때 합시다."
소즈는 이렇게 말했다. 니 부인이 이 집에 있을 때라면 분명히 말릴 것이라 생각하니, 출가가 불가능해지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 우키후네는,
"단순히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가한 것처럼 된다면 그 효력이 적을 듯합니다. 저는 몸 상태가 몹시 좋지 않으니, 중태에 빠진 뒤에야 출가한다면 그저 형식적인 일이 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무리한 부탁인 줄은 아오나, 부디 오늘 수계를 받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며 히메기미는 몹시 울었다. 단순한 승려의 마음에도 이것이 차마 가엾게 느껴져서,
"밤이 많이 깊었군요. 예전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여겼는데, 나이가 들수록 피로가 심해지니 잠시 쉬었다가 궁궐로 가려 했소만, 그렇게 서두르기를 원하신다면 당장 계를 내리도록 하리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우키후네는 기뻤다. 가위와 빗상자 뚜껑을 소즈님 앞으로 내밀자,
"어디들 있느냐, 스님들. 이쪽으로 오너라."
소즈는 제자를 불렀다. 처음에 우지에서 이 사람을 발견했던 밤의 아자리 두 사람이 모두 와 있었기에 그들을 방 안으로 들여,
"머리카락을 깎아라."
라고 말했다. 당연한 일이다. 보기 드문 미모의 사람이니 속세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있어서는 번거로운 일이 많을 것이 틀림없다고 아자리들도 생각했다. 그렇다 해도 기초(几帳)의 드리운 비단 틈으로 손을 뻗어 밖으로 끄집어낸 머리카락의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에 잠시 가위질을 할 수 없었다.
좌식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쇼쇼의 니키미는 스승을 모시고 함께 내려온 오라비인 아자리와 이야기하느라 자기 방에 가 있었다. 사에몬 또한 일행 중에 아는 사람이 있어 그 승려를 대접하느라 마음을 쓰고 있었다. 이런 집에서는 각자 친분이 있는 상대가 생겨 대접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코모키만이 히메기미의 방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쪽으로 달려와 쇼쇼의 니키미에게 좌식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했다. 쇼쇼가 허둥대며 달려가 보니, 소즈님은 히메기미에게 자신의 법의와 가사를 임시로 입히고는,
"어머님께서 계신 쪽을 향해 절하십시오."
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 어디인지도 가늠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참지 못하고 우키후네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입니까. 경솔한 일을 하십니다. 부인께서 돌아오시면 이를 어찌 말씀드려야 한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