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고장 이름: 고장
우리 외부의 존재가 실제한다는 인상을 이보다 더 강하게 주는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기 전과 안 후에, 사소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우리에 대한 그 사람의 위치가 바뀌는 것보다 더 말이다. 나는 늦은 오후 발베크로 가는 지방 소철도를 탔던 바로 그 사람이었고, 내 안에는 같은 영혼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영혼 속, 여섯 시까지만 해도 지배인과 호텔, 그 직원들을 상상할 수 없었던 자리에, 그리고 내가 도착할 시간에 대한 막연하고 두려운 기대가 있었던 자리에, 이제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지배인의 얼굴에 박힌 여드름 자국(실제로는 모나코인으로 귀화했지만, 그는 스스로 늘 세련되었다고 생각하는 표현을 쓰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줄은 몰랐기에 '루마니아적인 독창성'이라고 말하곤 했다)과 리프트를 부르기 위한 그의 손짓, 리프트 그 자체, 그랜드 호텔이라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 나온 인형극 속 인물들의 행렬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들은 부인할 수 없고 변치 않으며, 현실화된 모든 것들이 그렇듯 생기를 앗아가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관여하지 않은 이 변화는 내 외부에서 무언가 일어났음을―그 자체로는 아무런 흥미가 없더라도―증명해 주었고, 나는 여행을 시작할 때는 해를 앞에 두었지만, 해가 뒤에 있는 것을 보며 시간이 흘렀음을 깨닫는 여행자와 같았다. 나는 피로로 몸이 부서질 것 같았고 열이 났다. 자리에 눕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 필요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침대에 잠시라도 눕고 싶었지만, 어차피 우리 각자에게 물질적 신체가 아니라 의식적 신체인 감각의 집합에 휴식을 줄 수 없었을 테니 무슨 소용이겠는가. 또한 나를 둘러싼 낯선 사물들은 내 지각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수비 상태로 밀어 넣어, 내 시선과 청각, 모든 감각을 추기경 라 발뤼가 서 있지도 앉아 있지도 못했던 그 새장 속에 갇힌 것만큼이나 좁고 불편한 자세로(다리를 뻗는다 해도) 묶어두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 안에 사물을 배치하는 것은 우리의 주의력이고, 그것을 치워 우리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습관이다. 발베크의 내 방(이름만 내 방일 뿐이었다)에는 내가 있을 자리가 없었다. 방 안은 나를 알지 못하는 사물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은 내가 던진 경계심 어린 시선을 그대로 되돌려주었으며, 내 존재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내가 그들의 일상을 방해하고 있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집에서는 일주일에 고작 몇 초, 깊은 사색에서 깨어날 때나 들리던 시계가 그곳에서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알 수 없는 언어로 내게 불쾌하게 들릴 법한 말을 계속 재잘거렸다. 커다란 보랏빛 커튼은 대꾸도 없이 그 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마치 낯선 이의 모습에 짜증이 난 사람들이 어깨를 으쓱하며 보이는 태도와 비슷했다. 그 높은 방은 기즈 공작이 암살당하기라도 했을 법한, 나중에는 쿡 여행사의 가이드가 인솔하는 관광객들이 방문할 만한 거의 역사적인 분위기를 풍겼지만, 잠을 자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나는 벽을 따라 놓인 작은 유리 진열장들, 무엇보다 방을 가로질러 놓인 큰 이동식 거울 때문에 괴로웠는데, 그것이 치워지기 전까지는 마음 편히 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파리 방의 물건들은 그저 내 신체의 일부이자 나 자신이나 다름없어 내 눈동자만큼이나 내 시선을 방해하지 않았지만, 할머니께서 나를 위해 골라주신 호텔 꼭대기 이 전망대의 높은 천장을 향해 나는 자꾸만 시선을 올렸다. 시각이나 청각보다 더 내밀한 영역, 우리가 냄새의 질을 느끼는 그 영역에까지 베티베르 향은 내 최후의 보루를 공격해 들어왔고, 나는 피곤을 무릅쓰고 당황한 코를 킁킁거리며 부질없고 끊임없는 응전을 할 뿐이었다. 나를 둘러싼 적들에게 위협받고, 뼛속까지 열병에 잠식되어 세상도, 방도, 신체도 더는 내 것이 아니게 된 나는 혼자였고, 죽고만 싶었다. 그때 할머니께서 들어오셨다. 그러자 억눌려 있던 내 마음이 팽창하며 곧바로 무한한 공간이 펼쳐졌다.
할머니는 우리 중 누군가가 아플 때마다 집에서 입으시던 페르칼 재질의 가운을 걸치고 계셨다. 할머니는 항상 자신의 행동에 이기적인 동기를 부여하며, 자신이 편해서 그렇게 입는 것일 뿐이라고 말씀하시곤 했지만, 그 옷은 우리를 간호하고 밤새 지켜주실 때 할머니께서 입으시는 하녀이자 간호사의 작업복이었으며, 수녀의 수도복과도 같았다. 그런 이들의 간호와 그들이 베푸는 친절, 우리가 그들에게서 발견하는 가치와 우리가 그들에게 마땅히 보내야 할 감사는, 우리가 그들에게는 타인일 뿐이며 생각과 삶의 의지를 홀로 짊어진 채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와 함께 있을 때면, 내 마음속에 아무리 큰 슬픔이 있더라도 그것이 훨씬 더 거대한 연민 속으로 받아들여지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모든 것, 내 고민과 내 의지는 할머니 안에서 나 자신보다 훨씬 강력한 내 삶을 보존하고 성장시키려는 욕망에 기대어 지탱될 것이었고, 내 생각은 매질이나 대상을 바꾸지 않고 내 정신에서 할머니의 정신으로 이어지기에 어긋남 없이 뻗어나갈 수 있었다. 마치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려다가 자신이 보는 넥타이 끝이 손을 움직이는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처럼, 혹은 땅 위에서 곤충의 춤추는 그림자를 쫓는 개처럼, 우리는 영혼을 직접 지각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육체의 겉모습에 속아 넘어가고 만다. 나는 할머니 품으로 뛰어들어 할머니가 내게 열어주신 그 광활한 마음속으로 접근이라도 하려는 듯 할머니의 얼굴에 입술을 갖다 댔다. 그렇게 할머니의 뺨과 이마에 입을 맞대고 있을 때면, 나는 그곳에서 너무나 이롭고 영양가 있는 무언가를 빨아들였기에, 젖을 빠는 아이처럼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진지하고 평온한 욕구 속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이어 타오르는 듯하면서도 고요한 아름다운 구름처럼 조각된 할머니의 커다란 얼굴을 싫증도 나지 않은 채 바라보았다. 그 얼굴 너머로는 다정함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할머니의 감각을 아주 조금이라도, 아무리 미미하게나마 전해 받는 모든 것, 할머니께 전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즉시 영혼을 얻고 성스러워졌기에, 나는 손바닥으로 할머니의 아름다운 흰 머리카락을 마치 할머니의 선량함을 어루만지듯 존경과 조심스러움, 다정함을 담아 쓰다듬었다. 할머니는 내 수고를 덜어주는 일이라면 어떤 고생도 기꺼이 즐거움으로 여기셨고, 내 지친 사지가 잠시나마 정지 상태로 고요함을 누리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셨다. 그래서 할머니께서 나를 눕히고 신발을 벗겨주려 하시기에 내가 이를 말리며 직접 옷을 벗으려 하자, 할머니께서는 재킷과 부츠의 첫 단추에 닿으려는 내 손을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멈춰 세우셨다.
"오, 제발 부탁하마." 할머니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할머니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란다. 오늘 밤에 필요한 게 있으면 꼭 벽을 두드리렴. 내 침대가 네 침대와 등을 맞대고 있어서 벽이 아주 얇거든. 잠시 후 침대에 눕게 되면 한번 두드려 보렴. 우리가 신호가 잘 통하나 확인해보게."
그날 저녁, 나는 정말로 세 번 벽을 두드렸다. 일주일 후 몸이 아팠을 때, 할머니께서 일찍 우유를 주려 하셨기에 나는 며칠 동안 매일 아침 그 신호를 반복했다. 할머니가 깨어 계신 것 같을 때면―할머니께서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다시 잠드실 수 있도록―나는 조심스럽고 연약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세 번 두드려보곤 했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 알아 할머니의 잠을 깨울까 봐 두려웠지만, 할머니께서 처음엔 알아채지 못한 부름을 계속 신경 쓰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다시 두드릴 용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신호를 보내기가 무섭게 나는 다른 어조의, 차분한 권위가 깃든 세 번의 두드림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는 더 확실하게 두 번 반복되었으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안달하지 마렴, 다 들었단다. 곧 갈게." 그러고 나면 곧 할머니께서 오셨다. 나는 할머니께서 못 들으셨거나 이웃집 사람이 두드린 줄 아셨을까 봐 걱정했다고 말씀드렸고, 그러면 할머니께서는 웃으셨다.
“내 가엾은 아가, 네 두드리는 소리를 다른 소리와 혼동하다니, 할머니라면 천 번 중에서도 단번에 알아차릴 거란다! 세상에 너만큼 어리석고,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깨울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못 알아들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아이가 또 있을 것 같니? 설령 그저 긁는 소리뿐이라 해도 할머니는 너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단다. 하물며 너처럼 특별하고 가엾은 작은 생쥐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난 벌써 한참 전부터 네가 침대에서 뒤척이며 망설이고 온갖 재롱을 부리는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단다.”
할머니는 덧문을 살짝 열어주셨다. 호텔의 튀어나온 별관 지붕 위에는 벌써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는데, 마치 일찍 일을 시작해 잠든 도시를 깨우지 않으려 소리 없이 작업을 끝마치려는, 그래서 그 정적 덕분에 더욱 민첩해 보이는 아침 일꾼 같았다. 할머니는 내게 몇 시인지, 날씨는 어떨지, 창가까지 갈 필요 없다고, 바다에는 안개가 끼었다고, 빵집 문은 벌써 열었는지, 들리는 저 마차 소리는 무엇인지 일러주셨다. 이 모든 하찮은 아침의 막 열림,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이 사소한 하루의 도입부는 우리 둘만의 작은 삶의 조각이었다. 나는 낮 동안 프랑수아즈나 낯선 사람들 앞에서 아침 여섯 시에 있었던 짙은 안개 이야기를 하며, 습득한 지식이 아니라 오직 나만이 받은 애정의 표시로서 그 순간을 뽐내곤 했다. 교감과 기쁨으로 스며들어 조화롭고 비물질적이며 천사처럼 노래하는 벽이 내가 두드리는 세 번의 리듬에 맞춘 대화에 화답하여, 간절히 기다리던 두 번 반복되는 세 번의 두드림으로 응답하며 교향곡처럼 시작되는 그 달콤한 아침의 순간, 할머니는 그 안에 자신의 영혼과 올 것이라는 약속을 수태고지 같은 환희와 음악적인 신실함으로 담아 보낼 줄 아셨다. 하지만 도착 첫날 밤, 할머니께서 떠나시자 나는 파리에서 집을 떠날 때 겪었던 것처럼 다시 고통받기 시작했다. 내가 낯선 방에서 잠을 잘 때 느꼈던, 그리고 다른 수많은 이들도 겪는 그런 공포는, 아마도 현재 우리 삶의 가장 좋은 부분을 구성하는 것들이 우리 자신도 모르게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형식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항하여 보내는, 가장 낮고 모호하며 유기적이고 거의 무의식적인 거부의 한 형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거부는 부모님이 언젠가 돌아가실 것이라는 생각, 삶의 필연성 때문에 질베르트와 멀리 떨어져 살게 되거나 아니면 단순히 친구들을 영영 다시 볼 수 없는 곳에 정착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그토록 자주 사로잡혔던 공포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이 거부는 나의 죽음이나 베르고트가 그의 책 속에서 사람들에게 약속했던 사후 세계에 대해 생각하기 어려워했던 것의 근저에 깔린 것이기도 했다. 그런 사후 세계라면 나는 나의 기억과 결점, 그리고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생각에 승복하지 못하고 그저 허무도, 자신들이 존재하지 않는 영원도 원치 않는 나의 성격을 그곳으로 가져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유난히 아팠던 어느 날 파리에서 스완이 내게 이렇게 말했을 때, "오세아니아의 그 아름다운 섬들로 떠나보는 게 어떠니? 그러면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을 거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저는 따님을 다시는 볼 수 없을 테고, 따님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잖아요." 그런데도 나의 이성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겠니, 어차피 너는 슬퍼하지도 않을 텐데. 스완 씨가 네게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말한 건, 네가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는 뜻이고, 네가 원치 않는다면 그곳에서 네가 행복할 거라는 뜻이지." 왜냐하면 나의 이성은 습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낯선 숙소를 사랑하게 만들고, 거울의 위치나 커튼의 색조를 바꾸고, 시계를 멈추게 하는 일을 도맡아 할 바로 그 습관은, 처음엔 불쾌했던 동료들을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로 만들고, 얼굴의 형상을 다르게 바꾸고, 목소리 톤을 다정하게 만들고, 마음의 기운을 바꿔놓는 일도 능숙하게 해낸다. 물론 장소와 사람들에 대한 이런 새로운 우정은 과거의 것을 잊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내 이성은 내가 기억조차 하지 못할 존재들과 영원히 헤어지게 될 삶의 전망을 두려움 없이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성은 절망을 더 부추길 뿐인 망각의 약속을 내 마음에게 위안인 양 건넸던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마음이 이별이 완성된 뒤에 습관의 진통 효과를 겪지 않으리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까지 마음은 계속해서 고통받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날 가장 소중한 기쁨을 얻고 있는 그런 미래가 우리에게서 박탈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이 두려움은 사라지기는커녕, 그런 상실의 고통에 현재 우리에게 훨씬 더 잔인하게 보이는 것, 즉 그것을 고통으로 느끼지 않고 무관심하게 남는다는 사실이 더해지리라 생각할 때 더욱 커진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의 자아는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은 더 이상 부모님이나 연인, 친구들의 매력뿐만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우리의 애정일 터인데, 그것은 오늘날 우리 마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그곳에서 너무나 완벽하게 뜯겨나가, 우리는 오늘날 그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그들과 분리된 삶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것은 진정한 자아의 죽음일 것이다. 물론 부활이 뒤따르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예전 자아의 사라져야 할 부분들이 사랑에 도달할 수 없는 다른 자아로의 부활일 뿐이다. 죽음에 대한 저항, 우리 삶의 전 기간에 걸쳐 삽입되어 매 순간 우리 자아의 조각들을 떼어내고 그 죽음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세포들이 증식하는 분절적이고 연속적인 죽음에 대한 길고 절망적이며 일상적인 저항의 비밀스럽고 부분적이며 실체적이고 진실한 방식으로서 이해되어야 할 반란 속에서, 공포를 느끼며 거부하는 것들은 바로 이 조각들―방의 크기나 분위기에 대한 모호한 애착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것들조차도―이다. 그리고 내 것처럼 신경질적인 본성, 즉 신경이라는 매개체가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의식으로 가는 길목에서 막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사라져가는 자아의 가장 미천한 요소들이 내뱉는 하소연을 분명하고 지치게 하며 무수하고 고통스럽게 전달되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에게는, 낯설고 너무 높은 천장 아래에서 내가 느꼈던 불안한 공포는 익숙하고 낮은 천장에 대해 내 안에 살아남아 있던 우정의 항의에 지나지 않았다. 분명 이 우정은 사라지고 다른 무언가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그때 죽음이, 이어 새로운 삶이 '습관'이라는 이름 아래 그 이중의 과업을 완수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히 소멸하기까지, 이 우정은 매일 밤 고통받을 것이며, 특히 이 첫날밤에는 자신을 위한 자리가 더는 남아 있지 않은 이미 실현된 미래와 마주하게 되어 반항할 것이고, 시선을 다치게 하는 것에서 눈을 돌리지 못한 채 닿을 수 없는 천장에 시선을 두려 할 때마다 슬픈 탄식의 울음으로 나를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하인이 나를 깨우러 와서 따뜻한 물을 가져다준 뒤, 내가 세면을 하고 필요한 물건을 찾으려 헛수고를 하며 트렁크를 뒤질 때면―정작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들만 뒤죽박죽 꺼내고 있었지만―점심 식사와 산책의 즐거움을 미리 그리며 창문과 서재의 모든 유리창 안으로, 마치 선실의 둥근 창문으로 보듯, 그늘 하나 없으면서도 가늘고 움직이는 선으로 경계 지어진 절반의 너비에 그늘을 드리운 벌거벗은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그리고 도약대 위의 점프 선수들처럼 하나둘 솟구치는 파도를 눈으로 쫓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었던가. 호텔 이름이 적힌 빳빳하고 빳빳하게 풀 먹인 수건을 손에 들고 몸을 닦으려 헛수고를 할 때마다, 나는 창가로 돌아가 이 거대하고 눈부시며 산악 같은 원형 경기장과, 군데군데 매끄럽고 반투명한 에메랄드 원석 같은 파도의 눈 덮인 꼭대기를 다시 한번 바라보곤 했다. 그 파도들은 평온한 폭력성과 사자 같은 찌푸림으로, 태양이 얼굴 없는 미소를 더해주는 그 비탈면을 따라 물결이 흘러내리도록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 창가에 나는 그 후로 매일 아침, 마치 잠을 잤던 역마차의 창가에 앉듯 자리를 잡아야 했다. 밤사이 간절히 바랐던 산맥―여기서는 바다의 언덕들이었는데, 이들은 춤추며 우리 쪽으로 다시 오기 전까지는 너무 멀리 물러나 있곤 해서, 종종 나는 투명하고 자욱하며 푸르스름한 먼 곳에서, 마치 토스카나 초기 회화의 배경에 보이는 빙하처럼, 긴 모래사장 너머 아주 멀리서야 그 첫 물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때는 태양이 내 바로 가까이에서 그 파도들 위로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물결은 알프스의 초원이 간직한 것만큼이나 부드러운 녹색이었다. (태양이 마치 거인이 되어 비탈을 즐겁게, 불규칙한 도약으로 내려오듯 산 곳곳에 퍼져 있는 그 산속에서) 그것은 땅의 습기라기보다 빛의 액체 같은 유동성이었다. 그나저나 해변과 파도가 세상을 가로질러 뚫어놓은, 빛을 통과시키고 그 안에 쌓아두기 위한 이 틈새 속에서, 빛이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그리고 우리 눈이 어디를 따르는지에 따라 바다의 물결을 옮기고 위치시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그 빛이었다. 빛의 다양성은 장소의 방향을 바꾸고, 우리가 도달하고 싶은 새로운 목적지를 우리 앞에 세워놓는다는 점에서, 실제로 긴 여정을 여행하며 길을 떠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침에 호텔 뒤편에서 떠오른 태양이 바다의 첫 기슭까지 비추어 낼 때면, 태양은 마치 바다의 다른 면을 보여주며 자신의 빛이 회전하는 길을 따라 시간이라는 굴곡진 풍경 속 가장 아름다운 장소들을 통과하는 정적이면서도 다채로운 여행을 재촉하는 듯했다. 이 첫날 아침부터 태양은 미소 짓는 손가락으로 지도에는 이름조차 없는 바다의 푸른 봉우리들을 멀리 가리켰다. 그러다 그 파도들의 산마루와 눈사태가 이는 요란하고 혼돈스러운 표면 위에서 숭고한 산책을 즐기느라 어질해진 태양은 바람을 피해 내 방으로 들어와, 정리되지 않은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워 젖은 세면대와 열린 트렁크 위에 자신의 부를 흩뿌려놓았는데, 그 자체로 눈부시고 어울리지 않는 사치스러움 때문에 방 안의 어질러진 풍경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아아, 한 시간 뒤 커다란 식당에서―우리가 점심을 먹으며 가죽으로 된 레몬 즙 짜개에서 금빛 방울 몇 개를 두 마리의 가자미 위에 뿌리고 있었고, 곧이어 접시 위에는 깃털처럼 곱슬거리고 치터처럼 소리 내는 생선 뼈 무더기만이 남게 되었을 때―바닷바람의 활기찬 숨결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할머니께는 안타깝게 느껴졌다. 우리를 해변과 분리하면서도 그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던 투명하지만 닫힌 유리 창문 때문에, 하늘이 너무나 완벽하게 방 안으로 들어와 하늘의 푸른빛은 창문 색깔 같았고 흰 구름은 유리창의 흠집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내가 보들레르가 말한 '방파제에 앉아' 있거나 '부두아' 깊숙한 곳에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나는 그가 말한 '바다 위로 빛나는 태양'이―황금빛으로 떨리는 가는 선처럼 단순하고 피상적인 저녁의 빛과는 전혀 다른―지금 이 순간 바다를 토파즈처럼 불태우고, 발효시켜 맥주처럼 희뿌옇고 노랗게 만들며 우유처럼 거품 일게 하는 태양이 아닌지 자문했다. 그동안 바다 위로는 거대한 푸른 그림자들이 여기저기 떠다녔는데, 마치 어떤 신이 하늘에서 거울을 움직이며 그 그림자들을 옮기는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불행히도 그것은 외관만으로 '방'과 구별되는 것이 아니었다. 맞은편 집들을 마주 보던 콩브레의 '응접실'과는 달리, 수영장 물처럼 푸른 햇살로 가득 찬 발베크의 이 텅 빈 식당은 불과 몇 미터 거리에서 만조와 밝은 대낮이 마치 천상의 도시 앞에처럼 파괴할 수 없는 에메랄드빛과 금빛의 움직이는 성벽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콩브레에서는 모두가 우리를 알았기에 나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피서지에서의 삶이란 오직 이웃들만 알 뿐이다. 나는 타인의 환심을 사고 그들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버리기에는 아직 어렸고 너무 예민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들에게나 제방을 지나가는 젊은 남녀들에게 대해, 나는 세상 물정 밝은 사람이라면 가졌을 고결한 무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어울려 나들이를 갈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웠지만, 사교적인 형식 따위는 무시하고 오직 내 건강만을 생각하시는 할머니께서 내게 그들의 산책 동행이 되어달라는, 내게는 굴욕적인 부탁을 그들에게 하시는 것만큼은 아니었다. 그들이 알 수 없는 어떤 샬레로 돌아가든, 테니스 라켓을 들고 코트로 향하든, 혹은 말발굽 소리로 내 마음을 짓밟는 말 위에 올라타든, 나는 사회적 척도가 달라진 해변의 눈부신 조명 아래서 그들을 열정적인 호기심으로 바라보았고, 그토록 많은 빛을 통과시키는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그들의 모든 움직임을 쫓았다. 하지만 그 창문은 바람을 막고 있었고, 그것은 내게 한 시간의 공기 혜택을 놓치게 할 수 없다는 할머니의 생각에 결점이었다. 할머니께서는 몰래 유리창 하나를 여셨고, 그와 동시에 식사 중이던 모든 사람의 메뉴판과 신문, 베일과 모자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정작 당신께서는 천상의 숨결을 받으며 성 블랑딘처럼 차분하고 미소 띤 얼굴로, 나의 고립감과 슬픔을 더해주며 헝클어진 머리에 분노한 경멸적인 관광객들이 우리를 향해 퍼붓는 비난 속에서 태연히 자리를 지키셨다.
발베크의 이런 특급 호텔에 묵는 평범하게 부유하고 코스모폴리탄적인 손님들에게 꽤 두드러진 지역적 색채를 부여하는 일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은 프랑스 이 지역의 주요 부처에서 온 저명인사들, 즉 캉의 수석 판사, 셰르부르의 변호사 회장, 르망의 저명한 공증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휴가철이 되면 일 년 내내 산병처럼 흩어져 있거나 장기판의 졸처럼 배치되어 있던 각자의 거주지에서 떠나 이 호텔로 모여들곤 했다. 그들은 언제나 같은 방을 고수했고, 귀족적인 허영심을 가진 아내들과 함께 작은 집단을 이루었으며, 그 무리에는 파리의 저명한 변호사와 의사도 합류해 있었는데, 떠나는 날 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 맞다, 당신들은 우리랑 같은 기차를 안 타는군요. 특권층이시니 점심때면 도착하시겠어요."
"뭐라고요, 특권층이라니요? 수도인 파리, 그 대도시에 사시는 분들이, 저는 겨우 십만 명이 사는 가련한 도청 소재지에 사는데 말입니다. 물론 지난번 인구 조사에서는 십만 이천 명이었지만요. 그래도 이백오십만 명이 살고 파리의 아스팔트와 그 화려한 세상을 다시 누리러 가시는 당신들에 비하면 이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그들은 시골 특유의 혀를 굴리는 발음으로, 하지만 악의 없이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들은 파리로 올 수도 있었을―캉의 수석 판사에게는 여러 번 파기원 판사직이 제의되기도 했다―지방의 거물들이었지만, 도시를 사랑하거나, 무명이나 명예를 위해서, 혹은 반동주의적인 성향 때문이나 주변 성관들과의 친밀한 교류를 위해 그곳에 남기를 택한 이들이었다. 어쨌든 그들 중 다수는 곧장 자신의 도청 소재지로 돌아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발베크 만은 거대한 세계 한가운데 자리 잡은 작은 별개의 우주이자, 다양한 날들과 이어지는 달들이 원형으로 모여 있는 계절의 바구니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리브벨이 보여서 폭풍의 징조가 있는 날에도 발베크는 어두운데 저쪽 집들에는 햇살이 비치는 것을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발베크에 추위가 닥쳐올 때면 저 건너편 해안에서는 분명히 두세 달 정도 더 따뜻한 날씨를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랜드 호텔의 단골 중 휴가가 늦게 시작되거나 길게 이어지는 이들은 가을이 다가와 비와 안개가 몰려오면 짐을 나룻배에 싣고 건너가 리브벨이나 코스테도르에서 여름을 맞이하곤 했다. 발베크 호텔의 이 작은 무리는 새로 온 사람을 경계하는 눈길로 바라보았고,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모두가 자신들의 친구인 호텔 지배인에게 그 사람에 대해 묻곤 했다. 매년 피서철마다 돌아와 그들의 테이블을 맡아주던 지배인은 늘 같은 에메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내들은 에메의 아내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식사 후에 저마다 아기 옷을 만들면서도 우리 할머니와 나를 손거울로 훑어보곤 했다. 우리가 샐러드에 삶은 달걀을 넣어 먹었는데, 그게 알랑송의 상류 사회에서는 천박하게 여겨져 하지 않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제스티(폐하)'라 불리는 어느 프랑스인에 대해 경멸 어린 비꼬는 태도를 취했는데, 그는 실제로 오세아니아의 작은 섬에서 몇몇 원주민들을 거느리고 스스로를 왕이라고 선포한 인물이었다. 그는 예쁜 정부와 함께 호텔에 머물렀는데, 그녀가 해수욕을 하러 갈 때면 아이들이 "왕비 만세!"라고 외치곤 했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50상팀짜리 동전을 뿌려주었기 때문이다. 수석 판사와 변호사 회장은 그녀를 본 체도 하지 않으려 했고, 만약 친구들 중 누군가 그녀를 쳐다보면 그녀가 보잘것없는 여공 출신이라고 경고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스텐드에서는 왕실용 탈의실을 썼다고 들었는데요."
"당연하죠! 20프랑이면 빌릴 수 있거든요. 원하시면 당신도 쓰실 수 있어요. 그리고 제가 확실히 아는데, 그 사람이 왕에게 알현을 요청했더니 왕은 그런 인형극 같은 군주 따위는 알 바 없다고 전하라고 했다더군요."
"아, 정말 흥미롭군요! 세상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네요!……"
물론 그 모든 말이 사실이었겠지만, 공증인과 수석 판사, 변호사 회장이 '카니발'이라 불리는 이들이 지나갈 때 그토록 기분 나빠하며 큰 소리로 분개했던 데에는, 군중의 상당수에게 자신들이 그저 돈을 펑펑 쓰는 왕과 왕비도 모르는 평범한 부르주아일 뿐이라는 사실을 느끼는 데서 오는 지루함도 한몫했을 것이다. 호텔 지배인인 그들의 친구는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었는데, 그는 진품이라기보다 관대한 편인 그 군주들을 대할 때 좋은 낯을 해야 했음에도 주문을 받는 동안 틈틈이 멀리 있는 단골손님들에게 의미심장한 윙크를 보내곤 했다. 어쩌면 그들이 자신들을 '세련되지 않은' 사람들로 잘못 보았다는 생각, 그리고 자신들이 훨씬 더 세련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할 길 없는 답답함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대부호의 아들이자 폐병을 앓는 방탕아인 젊은 멋쟁이를 보며 '어여쁜 도련님!'이라 비꼬곤 했다. 매일 새 재킷을 입고 단추구멍에 난초를 꽂은 채 샴페인과 함께 점심을 먹고, 창백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냉소적인 미소를 띤 채 카지노 바카라 테이블에 엄청난 액수를 쏟아붓는 그 청년을 두고, 공증인은 정보통인 척하며 수석 판사에게 그가 '세기말적'인 인물이며 부모님을 슬픔으로 죽게 만든다고 말했고, 판사의 아내 또한 '확실한 소식통'이라며 맞장구쳤다.
한편, 변호사 회장과 그의 친구들은 어느 부유한 귀족 노부인이 가문의 시종들을 거느리고만 다닌다는 이유로 그녀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식사 시간마다 공증인의 아내와 수석 판사의 아내가 식당에서 그녀를 볼 때면, 마치 이름은 거창하지만 모양새가 의심스러운 요리를 마주했을 때처럼 오만하고 꼼꼼하게, 불신 어린 눈빛으로 손거울을 통해 그녀를 훑어보곤 했다. 그러고는 방법론적인 관찰 끝에 나온 부정적인 결과라는 듯, 거리를 두는 손짓과 역겨운 표정으로 그 음식을 멀리 치워버리라고 하듯 행동했다.
아마도 그녀들은 그런 행동을 통해 자신들이 무언가 부족한 것들―여기서는 그 노부인이 가진 특권들이나 그녀와 친분을 맺는 것들―이 있더라도, 그것은 자신들이 가질 수 없어서가 아니라 가지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을 뿐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녀들은 스스로 그런 생각을 진실이라 믿게 되었다. 모든 욕망의 억압, 알지 못하는 삶의 양식에 대한 호기심의 거세, 새로운 존재들에게 환심을 사고 싶다는 희망의 포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대신하여 자리 잡은 가식적인 경멸과 꾸며낸 즐거움이 이들 여성에게는 불행을 가져오는 두 가지 조건이었다. 즉, 불만족을 만족이라는 꼬리표 아래 숨기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되는 치명적인 단점을 초래한 것이다. 하지만 이 호텔의 모든 사람도 형식은 달랐을지언정 그녀들과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며, 자존심 때문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어떤 교육적 원칙이나 지적인 습관을 위해 낯선 삶과 섞이는 유쾌한 설렘을 희생했을 것이다. 물론 노부인이 스스로 고립되었던 그 소우주는 공증인의 아내와 수석 판사의 아내가 분노로 비웃음을 흘리던 집단처럼 지독한 쓴맛에 중독되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곳은 은은하고 고풍스러운 향기로 가득했지만, 그렇다고 가식적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근본적으로 노부인은 스스로를 새롭게 변화시킴으로써 낯선 존재들의 신비로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들과 유대를 맺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신의 세계에 속한 사람들만 만나며 '이 세계가 가장 좋은 세계이므로 다른 사람들의 잘 알지도 못하는 경멸 따위는 무시해도 좋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데서 오는 쾌락과는 차원이 다른 매력이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발베크의 그랜드 호텔에 아무도 모르는 사람으로 도착했더라면, 검은 양모 드레스와 유행 지난 모자를 쓴 자신의 모습이 흔들의자에 앉아 있던 어떤 난봉꾼을 미소 짓게 했을지도 모르며, 그가 '정말 촌스럽군!'이라고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특히 수석 판사처럼 희끗희끗한 구레나룻 사이로 그녀가 좋아하는 맑은 얼굴과 영민한 눈빛을 간직한 어떤 가치 있는 남자가, 부부의 손거울 렌즈를 통해 곧바로 이 기이한 현상의 등장을 지적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는―물속에 처음 머리를 담그는 것처럼―짧지만 결코 덜 두렵지는 않다는 걸 모두가 아는 그 첫 순간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 때문에, 미리 하인을 보내 호텔 측에 자신의 인품과 습관을 알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배인의 인사를 서둘러 끊고 오만함보다는 수줍음이 더 담긴 짧은 태도로 방으로 올라가면, 창문에 걸려 있던 커튼 대신 개인이 가져온 커튼을 달고, 파티션과 사진들을 배치하여 그녀 자신과 적응해야만 했을 외부 세계 사이에 습관이라는 칸막이를 훌륭히 쳐두었기에, 여행을 떠난 것은 그녀 자신이 아니라 그녀가 머물던 그 집 자체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그녀는 한편으로는 호텔 직원 및 거래처 사람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 사이에 자신의 하인들을 배치하여, 그들이 대신 이 새로운 인간들과의 접촉을 도맡아 주인 주변에 익숙한 분위기를 유지하게 했다. 또한 그녀는 자신과 피서객들 사이에 자신의 편견이라는 장벽을 세웠고, 자신의 친구들이라면 받아들이지 않았을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친구들과의 서신 왕래와 추억,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세련된 매너, 능숙한 예의범절에 대한 내밀한 자각을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 속에서 계속 살아갔다. 매일 그녀가 마차를 타고 산책하러 내려올 때면, 뒤에서 그녀의 소지품을 드는 하녀와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하인은 마치 그녀가 속한 나라의 국기가 게양된 대사관 문 앞에 서서 타국 땅 한가운데에서 그녀를 위해 치외법권적 특권을 보장하는 파수꾼들처럼 보였다. 우리가 도착한 날, 그녀는 오후 중반이 되기 전까지 방을 나서지 않았기에 우리는 식당에서 그녀를 보지 못했다. 우리가 새로 온 손님이었기에 지배인은 점심시간에 우리를 보호하듯 식당으로 안내했는데, 마치 신병들을 옷을 맞춰 입히려고 부대 보급병에게 데려가는 상급자와 같았다. 하지만 그 대신 우리는 그곳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시골 귀족과 그의 딸, 즉 브르타뉴의 이름 없는 고가(古家) 출신인 스테르마리아 씨와 그의 딸을 보게 되었는데, 그들이 저녁에나 돌아올 것이라 여긴 호텔 측의 실수로 그들이 앉던 테이블을 우리에게 내주었던 것이다. 주변 지역에서 알게 된 성주들을 만나러 발베크에 잠시 들른 그들은, 외부의 초대와 답례 방문 일정 사이에 틈을 내어 식당에 머무는 시간을 최대한 짧게 줄였다. 그들을 모든 인간적인 공감이나 주위에 앉은 낯선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보호한 것은 바로 그들의 거만함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스테르마리아 씨는 마치 처음 보는, 그리고 다시는 볼 일 없는 여행객들 틈에 낀 기차역 식당에서나 볼 법한 얼음처럼 차갑고, 바쁘고, 냉담하고, 거칠며, 까다롭고, 적의 어린 태도를 유지했는데, 그 상황에서 그들이 맺을 수 있는 관계란 오직 자신의 찬 치킨과 객차 안의 자리를 그들에게서 방어하는 것뿐이었다. 우리가 점심을 먹기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스테르마리아 씨의 명령으로 자리를 비워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제 막 도착한 스테르마리아 씨는 우리에게 조금도 사과하는 기색 없이, 지배인에게 큰 소리로 다시는 이런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이 불쾌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여배우(그녀는 오데옹 극장에서 몇 번의 연기를 한 것보다 우아함과 재치, 그리고 아름다운 독일 도자기 수집으로 더 유명하다)와 그녀가 자신을 위해 교양을 쌓게 한 매우 부유한 청년 애인, 그리고 귀족 사회의 저명한 두 남자가 인생에서 따로 무리를 지어 다니고, 여행도 늘 함께하며, 발베크에서 남들이 다 식사를 마친 아주 늦은 시간에 점심을 먹고, 하루 종일 살롱에서 카드놀이를 하며 지내게 만든 감정에는 어떤 악의도 없었다. 그것은 단지 지적인 대화 방식과 미식의 세련됨에 대한 그들의 취향이 요구하는 바였을 뿐이며, 그렇기에 그들은 오직 자신들끼리만 생활하고 식사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았고, 그런 취향을 공유하지 못한 사람들과 섞여 사는 삶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식탁 앞이든 카드 테이블 앞이든, 그들 각자는 앞에 앉은 동료나 파트너에게 어떤 지식이 깃들어 있음을 알 필요가 있었다. 그 지식이란 수많은 파리의 저택들이 '중세'나 '르네상스' 양식의 진품이라며 치장하는 저질 물건들을 알아보고, 모든 사물에 대해 선과 악을 구분하는 그들만의 공통된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때 그들의 특별한 생활 방식은 식사나 게임 도중 던지는 드물고 재미있는 감탄사나, 여배우가 점심 식사나 포커를 하기 위해 차려입은 매력적이고 새로운 드레스를 통해서만 나타날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그들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습관들로 그들을 감싸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주변 세계의 신비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에 충분했다. 긴 오후 내내, 바다는 그들 앞에 마치 부유한 독신남의 응접실에 걸린 기분 좋은 색조의 그림처럼 걸려 있을 뿐이었다. 카드 게임 중간중간, 할 일이 없는 한 선수가 바다를 향해 눈을 들어 날씨나 시간을 확인하고 다른 이들에게 간식 시간이 되었음을 일깨워줄 때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들은 저녁 식사를 호텔에서 하지 않았다. 호텔에서는 전기 광원이 큰 식당 안으로 빛을 쏟아내고 있었는데, 식당은 거대하고 경이로운 수족관이 되어 그 유리 벽 앞에는 발베크의 노동자들과 어부들, 그리고 어둠 속에 숨어 보이지 않는 소부르주아 가정들이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대고 황금빛 소용돌이 속에서 느릿하게 흔들리는 저들의 호화로운 삶을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기이한 물고기나 연체동물의 삶만큼이나 특별한 것이었다(과연 유리 벽이 저 경이로운 짐승들의 잔치를 언제까지 보호해 줄지, 그리고 밤중에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어둠 속의 사람들이 수족관 안으로 쳐들어와 그들을 잡아먹지는 않을지는 거대한 사회적 문제였다). 한편, 밤의 어둠 속에 멈춰 서서 섞여 있는 군중 속에는 혹시 인간 어류학을 즐기는 어느 작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늙은 여성 괴물들의 턱이 삼켜버린 음식 조각 위로 닫히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을 인종과 타고난 기질, 그리고 후천적 특징에 따라 분류하는 것을 즐겼을 것이다. 그 특징 덕분에 입 모양은 거대한 바닷물고기를 닮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생제르맹가의 담수에서 살아온 어느 세르비아 노부인이 라로슈푸코 부인처럼 우아하게 샐러드를 먹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 시간이면 우리는 턱시도 차림으로 늦게 오는 여인을 기다리는 세 남자를 볼 수 있었는데, 잠시 후 거의 매번 새로운 드레스에 애인의 독특한 취향에 맞춰 고른 스카프를 두른 그 여인이 자기 층에서 승강기를 호출하고는 마치 장난감 상자에서 나오듯 승강기에서 걸어 나오곤 했다. 발베크에 들어선 국제적인 '팰리스' 호텔 현상이 좋은 요리보다는 호사스러움만을 꽃피웠다고 생각했던 그 네 사람은 차에 몸을 싣고는 반 리그 떨어진 유명한 작은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곤 했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주방장과 메뉴 구성과 요리 준비에 관해 끝없는 회의를 하곤 했다. 발베크에서 시작되는 사과나무 가로수 길을 달리는 동안, 그들에게 이 길은 그저 지나쳐야 할 거리에 불과했다. 어두운 밤길 속에서 그 길이 파리의 자택과 '카페 앙글레'나 '투르 다르장' 사이를 가르는 거리와 별반 다를 것 없게 느껴진 것은, 그들이 도착하게 될 우아한 작은 식당에 이르기 전까지의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부유한 청년의 친구들은 옷을 잘 입는 애인을 둔 그를 부러워했고, 여인의 스카프는 그 작은 모임 앞에 향기롭고 부드러운 베일처럼 드리워져 그들을 세상과 단절시켰다.
불행히도 내 평온함과는 달리, 나는 저 모든 사람들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나는 그들 중 많은 이들을 신경 썼고, 이마는 꺼져 있고 편견과 교육이라는 굴레 사이로 시선을 회피하는, 이 지방의 대지주이자 르그랑댕의 매부이기도 한 그 남자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가끔 발베크에 방문하곤 했는데, 일요일마다 그와 그의 아내가 여는 주간 가든파티 때문에 호텔에 묵는 사람들 중 일부는 그 파티에 초대받아 떠나고, 나머지는 초대받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그날을 골라 멀리 소풍을 떠나는 바람에 호텔이 텅 비곤 했다. 게다가 그는 첫날 호텔에서 꽤 박한 대접을 받았는데, 코트다쥐르에서 갓 온 직원들은 그가 누구인지 아직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흰색 플라넬 복장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식 옛 방식과 팰리스 호텔의 생활 방식을 몰랐던 탓에 여자들이 있는 홀에 들어서며 문에서부터 모자를 벗었고, 그 때문에 지배인은 그를 아주 미천한 신분의 사람, 이른바 '상식을 벗어난' 사람으로 여겨 모자를 만지지도 않은 채 답례했다. 오직 공증인의 아내만이 젠체하는 상류층 특유의 저속함을 풍기는 이 신참에게 매력을 느꼈고, 르망의 상류 사회에 비밀이 없는 사람 특유의 오류 없는 통찰력과 반박할 수 없는 권위로, 그가 매우 품위 있고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며 발베크에서 만나는 다른 누구와도 확연히 달라 자신이 그를 사귀기 전까지는 만나고 싶지 않았던 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단언했다. 그녀가 르그랑댕의 매부에 대해 내린 이 호의적인 평가는 아마도 위압적인 구석이 전혀 없는 그의 따분한 인상 때문이었을 것이며, 어쩌면 성당지기 같은 차림새를 한 이 신사 농장주에게서 그녀 자신의 성직자 주의적인 비밀스러운 신호를 읽어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호텔 앞에서 매일 말을 타는 젊은이들이 실은 사기꾼 잡화점 주인의 아들들이며 내 아버지가 결코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인물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피서지에서의 삶'은 그들을 내 눈앞에 반신반인의 기마상처럼 우뚝 세워놓았다. 내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호텔 식당을 나와 모래사장에 앉아 있을 뿐인 가련한 소년인 나를 그들이 쳐다봐 주기라도 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오세아니아의 무인도에서 왕이었던 모험가에게조차, 심지어는 거만한 겉모습 아래 겁 많고 부드러운 영혼을 숨기고 있을 거라 짐작하며 나만을 위해 애정의 보물을 쏟아부어 주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길 좋아했던 그 폐병 환자 청년에게조차 동정을 얻고 싶었다. 게다가 (여행지에서의 관계에 대해 흔히 하는 말과는 정반대로) 어떤 사람들과 함께 보이는 것이 때때로 다시 찾게 되는 해변에서는 실제 상류 사회 생활에서는 비길 데 없는 가치를 더해줄 수 있기 때문에, 파리 생활에서는 그토록 멀리하려 하면서도 피서지에서의 우정만큼은 이토록 정성껏 가꾸는 것은 없다. 나는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들의 심리 상태를 재구성하려는 내 기질 때문에 파리에서는 아주 낮았을 실제 등급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생각했을 등급―사실 발베크에서는 공통된 척도가 없었기에 그들에게 상대적인 우월함과 독특한 흥미를 부여해주던 등급―에 위치시키게 된, 이런 일시적이거나 지역적인 명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이 쓰였다. 아아, 그들 중 누구의 경멸도 노르푸아 씨의 경멸만큼 내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가 들어오자마자 그녀의 딸을 눈여겨보았다. 그녀의 예쁘고 창백하며 거의 푸르스름한 얼굴, 키 큰 몸의 태도와 걸음걸이에서 풍기는 특별한 분위기는 그녀의 혈통과 귀족적인 교육을 내게 정당하게 떠올리게 했는데,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기에 그것은 훨씬 더 분명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마치 천재적인 음악가가 작곡한 표현력이 풍부한 선율이 불꽃의 반짝임과 강의 속삭임, 시골의 평화를 훌륭하게 묘사하는 것과 같아서, 미리 해설서를 읽어 상상력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 청중들에게는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았다. '혈통'이라는 개념은 스테르마리아 양의 매력에 그 원인에 대한 생각을 더해줌으로써 그것을 더 이해하기 쉽고 완벽하게 만들어주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마음에 들어 했던 물건에 높은 가격표가 붙으면 가치가 더해지듯, 그 매력을 쉽게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여 더욱 갈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유전적인 가계는 엄선된 즙으로 이루어진 듯한 그녀의 피부에 이국적인 과일이나 유명한 빈티지 와인 같은 풍미를 더해주었다.
그런데 뜻밖의 우연이 우리 할머니와 나에게 호텔의 모든 손님들 사이에서 단번에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을 가져다주었다. 실제로 첫날부터 그 노부인이 방에서 내려올 때였다. 앞서 걷는 하인과 뒤에서 책과 담요를 챙겨 뛰어오는 하녀 덕분에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모두의 호기심과 존경심을 자극하고 있었는데, 스테르마리아 씨도 그 감정에서 누구보다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그때 지배인이 할머니에게 몸을 굽히고는 호의를 베풀듯(마치 페르시아의 샤나 라나발로 여왕을 그 강력한 군주와는 아무런 관계도 맺을 수 없지만 몇 걸음 앞에서 본 것만으로도 흥미로워할 평범한 관객에게 보여주듯이) 귓속말로 '빌파리지 후작 부인입니다'라고 말했는데, 바로 그 순간 그 부인은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기쁜 놀라움이 담긴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스테르마리아 양에게 다가갈 방법이라곤 전무했던 나에게, 가장 강력한 요정이 갑자기 노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들 이보다 더 큰 기쁨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아는 사람'이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미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간 유형의 수는 너무나 제한적이어서, 어디를 가든 스완이 옛 거장들의 그림 속에서 사람들을 찾아내듯 애쓰지 않아도 지인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는 일은 아주 흔하다. 발베크에 머문 첫날부터 나는 르그랑댕, 스완의 관리인, 그리고 스완 부인 그 자체를 만났는데, 첫 번째 인물은 카페 웨이터로, 두 번째 인물은 다시 보지 못한 어느 뜨내기 여행자로, 마지막 인물은 해수욕장 관리인으로 변해 있었다. 자연이 한 사람을 새로운 육체에 집어넣을 때 그 본연의 모습을 크게 훼손하지 않기에, 어떤 용모와 정신적 특징들은 자석에 이끌리듯 서로 떨어지지 않고 계속 따라다닌다. 카페 웨이터로 변한 르그랑댕은 여전히 그의 체격과 코의 옆모습, 턱의 일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남성이자 해수욕장 관리인이라는 신분이 된 스완 부인 또한 그녀 특유의 얼굴뿐만 아니라 말투까지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다만, 빨간 띠를 두르고 아주 작은 파도에도 입수를 금지하는 깃발을 올리는 그녀는―해수욕장 관리인들은 수영을 거의 할 줄 모르기에 신중한 법이다―스완이 예전에 그녀를 이드로의 딸로 알아봤던 『모세의 생애』 프레스코화 속에서처럼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반면 빌파리지 후작 부인은 진짜였다. 그녀는 자신의 힘을 앗아가는 마법에 걸린 희생양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자신의 힘을 내게 빌려주어 백배로 키워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마치 신비로운 새의 날개에 올라탄 것처럼, 적어도 발베크 안에서만큼은 스테르마리아 양과 나 사이를 가로막던 끝없는 사회적 거리를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게 될 터였다.
불행히도 누구보다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았던 사람이 있다면, 바로 우리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존재조차 알아채지 못했고 발베크를 떠날 때까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그런 사람들의 평판을 내가 중요하게 여기고 그들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걸 알았다면, 나를 경멸하기는커녕 아예 이해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께 그 사람들이 할머니와 빌파리지 후작 부인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내가 얼마나 기뻤을지 감히 말씀드릴 수 없었다. 후작 부인이 호텔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었고, 그녀와의 친분이 스테르마리아 씨의 눈에 우리를 돋보이게 해 줄 것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할머니의 친구분이라고 해서 나에게 귀족적인 인물을 조금이라도 떠올리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집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그 이름은 내 정신이 미처 의미를 파악하기도 전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고, 그 작위는 흔치 않은 이름처럼 그저 이상한 특징 하나를 더할 뿐이었다. 거리 이름에서 로드 바이런 거리나 아주 대중적이고 저속한 로슈슈아르 거리, 혹은 그라몽 거리라고 해서 레옹스 레노 거리나 이폴리트 르바 거리보다 더 고귀해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빌파리지 후작 부인을 보며 특별한 세계의 인물을 떠올릴 수는 없었는데, 이는 그녀의 사촌인 마크마옹을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를 역시 공화국 대통령이었던 카르노 씨나 프랑수아즈가 비오 9세의 사진과 함께 샀던 라스파유의 사진과 전혀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아야 하며, 사람들을 만나려고 바닷가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은 파리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 할머니의 지론이었다. 사람들은 예의를 차리거나 상투적인 대화를 나누느라 야외에서 파도를 마주하며 온전히 보내야 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할머니는 이 견해를 모두가 공유하고 있으며, 같은 호텔에서 우연히 마주친 오랜 친구들 사이에서는 서로 모르는 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가정하는 편이 더 편리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지배인이 이름을 알려주었을 때 할머니는 그저 고개를 돌려버렸고, 할머니가 아는 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빌파리지 후작 부인 역시 허공을 응시하며 못 본 척했다. 그녀는 멀어졌고, 나는 마치 다가오는 듯 보였던 배가 멈추지 않고 사라져 버린 난파선 생존자처럼 다시 고립된 채 남겨졌다.
그녀 또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지만, 반대편 끝자리였다. 그녀는 호텔에 묵거나 방문하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는데, 심지어 캉브르메르 씨조차 마찬가지였다. 사실 캉브르메르 씨가 변호사 회장의 점심 초대를 아내와 함께 받아들였던 어느 날, 그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날 변호사 회장은 귀족을 자신의 테이블에 모셨다는 영광에 취해 평소 친구들을 멀리했고, 이 역사적인 사건을 멀리서 의미심장한 눈짓으로 암시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물론 그 눈짓은 다가오라는 초대처럼 해석되지 않도록 충분히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아니, 식사는 잘하시는지요. 정말 멋진 분이시네요." 저녁에 수석 판사의 아내가 그에게 말했다.
"멋지다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변호사 회장은 과장된 놀라움으로 기쁨을 감추며 물었다. "제 손님들 때문에요?" 그는 더 이상 짐짓 모른 척할 수 없다는 걸 느끼며 말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점심 먹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요? 다들 어디선가 점심은 먹어야 하잖아요!"
"아니요, 정말 멋진 일이에요! 캉브르메르 부부였죠, 안 그런가요? 확실히 알아봤답니다. 후작 부인이잖아요. 그것도 진짜고요. 아내 쪽으로 얻은 작위가 아니죠."
"오! 정말 소탈하고 매력적인 분이에요. 격식 같은 건 전혀 따지지 않더군요. 오실 줄 알았는데, 손짓을 했거든요……. 소개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요!" 그는 에스테르에게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주랴!"라고 말했던 아하수에로 왕처럼, 이 제안의 엄청난 무게를 가벼운 냉소로 덜어내며 말했다.
"아니요, 아니에요. 우리는 겸손한 제비꽃처럼 숨어 있을래요."
"그래도 잘못하신 거예요, 다시 말하지만요." 이제 위험이 사라지자 용기를 얻은 변호사 회장이 대답했다. "그들이 잡아먹기라도 했을까 봐요. 우리 베지그 게임이나 할까요?"
"좋아요, 이제 후작 부인들을 대접하시느라 바쁘신데 우리가 감히 제안할 엄두가 안 났거든요!"
"아, 거 참, 별거 아니에요. 봐요, 내일 저녁에 그들과 식사하기로 했는데, 제 대신 가시겠어요? 진심입니다. 솔직히 저는 여기서 머무는 게 더 좋거든요."
"안 돼요, 안 돼!…… 제가 반동분자로 파면당할걸요." 회장은 자신의 농담에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그런데 당신도 페테른에 초대받지 않았나요?" 그는 공증인 쪽으로 몸을 돌리며 덧붙였다.
"아! 저는 일요일에 가긴 하는데, 문으로 들어가서 반대편 문으로 바로 나오곤 하죠. 그래도 그들이 변호사 회장님 댁처럼 우리 집에서 점심을 먹지는 않는답니다."
그날 스테르마리아 씨는 발베크에 없었고, 변호사 회장은 그 점을 몹시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는 은근슬쩍 호텔 지배인에게 말했다.
"에메, 스테르마리아 씨에게 이 식당에 귀족이 그분 한 명뿐인 건 아니라고 전해 주게. 오늘 아침 나랑 같이 점심 먹은 그 신사 봤지? 응? 작은 콧수염에 군인 같은 인상의 사람 말이야. 글쎄, 그분이 캉브르메르 후작이라네."
"아, 정말입니까? 놀랍지도 않군요!"
"그럼 자기가 유일한 귀족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겠지. 어디 당해봐라! 저런 귀족 녀석들의 기를 좀 꺾어놓는 것도 나쁘지 않거든. 에메, 자네 원치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내가 이런 말 하는 건 나 때문이 아니니까. 어차피 그 사람도 캉브르메르 씨를 잘 아니까 말이야."
다음 날, 변호사 회장이 자신의 친구를 위해 변호를 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스테르마리아 씨가 직접 그를 찾아가 인사를 건넸다.
"우리들의 공통 친구인 캉브르메르 부부가 마침 우리 자리를 마련하려 했는데, 날짜가 안 맞아서…… 하여간 잘 모르겠군요." 변호사 회장이 말했다. 그는 많은 거짓말쟁이들이 그렇듯, 사소한 세부 사항은 아무도 밝혀내려 하지 않을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런 사소한 부분도 (운 좋게 그 말과 모순되는 초라한 진실을 접하게 되면) 그 사람의 인격을 폭로하고 영원히 불신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데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하지만 아버지가 변호사 회장과 대화하느라 자리를 비운 덕분에 조금 더 편하게 나는 스테르마리아 양을 바라보았다. 두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리고 두 전완부 위로 잔을 들어 올릴 때처럼 그녀의 대담하고 늘 아름다운 자세의 독특함만큼이나, 금세 사그라드는 시선의 건조함과 그녀의 개인적인 말투 밑에서 어설프게 가려져 있지만 목소리 밑바닥에서 느껴지던 타고난, 가문 대대로 내려온 냉혹함은 할머니를 충격받게 했다. 그것은 그녀가 어떤 눈빛이나 억양으로 자신의 생각을 다 표현하고 나면 어김없이 되돌아가는 일종의 유전적인 제동 장치와도 같았다. 이 모든 것은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의 생각을 그녀에게 인간적 공감의 부족, 감수성의 결함, 그리고 매 순간 드러나는 그릇의 협소함을 물려준 혈통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 밑바닥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어떤 시선들, 즉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지배적인 취향이 가장 도도한 이에게조차 부여하는, 거의 겸손에 가까운 그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시선들 속에서―그 도도한 이는 곧 자신에게 쾌락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설령 배우나 곡예사라 할지라도, 남편을 버리고 그를 유일한 위엄으로 인정하게 될 터였다―나는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가 브르타뉴에서 보내던 그 시적인 삶의 향기를 내게서 찾도록 기꺼이 허락할 것임을 말이다. 그녀는 너무 익숙해서인지, 혹은 타고난 고귀함 때문인지, 아니면 집안의 가난이나 인색함에 대한 혐오 때문인지, 그 삶에 별다른 가치를 두지 않는 듯 보였지만, 그럼에도 그 삶을 자신의 몸 안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물려진 빈약한 의지력은 그녀의 표정에 무언가 나약한 느낌을 주었고, 아마도 그녀는 저항할 여력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약간 유행에 뒤떨어지고 거창한 깃털 장식이 달린, 그녀가 매 끼니 어김없이 쓰고 나오던 회색 펠트 모자는 내게 그녀를 더 다정하게 느끼게 했는데, 그것이 그녀의 은빛이나 분홍빛 안색과 어울려서가 아니라, 그녀를 가난한 사람이라 짐작하게 함으로써 그녀를 내게 더 가깝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관습적인 태도를 취해야 했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데 있어서는 이미 아버지와는 다른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쩌면 그녀는 내게서 보잘것없는 신분이 아니라 성별과 나이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어느 날 스테르마리아 씨가 그녀 없이 외출을 나갔더라면, 특히 빌파리지 후작 부인이 우리 테이블에 와서 앉으며 그녀에게 우리에 대한 좋은 평가를 들려주어 내가 그녀에게 다가갈 용기를 얻었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몇 마디 말을 나누고 약속을 잡으며 더 가까워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가 부모 없이 낭만적인 성에 혼자 머물게 되는 어느 한 달 동안, 어쩌면 우리는 저녁 무렵 어둑해진 물가 위로 헤더의 분홍 꽃들이 더욱 부드럽게 빛나고 파도 소리가 찰싹거리는 떡갈나무 아래를 단둘이 거닐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스테르마리아 양의 일상적인 삶을 품고 있었고 그녀의 눈 속 기억에 잠들어 있었기에 내게 그토록 매혹적으로 다가왔던 그 섬을 함께 누볐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를 감싸고 있던 수많은 추억―내 욕망이 걷어내고 싶었던 장막이자, 자연이 여성과 몇몇 존재 사이에 놓아둔 장막―속을 통과할 때, 즉 자연이 모든 존재에게 번식 행위와 가장 강렬한 쾌락 사이에 그 행위를 배치하고, 곤충에게는 꿀 앞에 가져가야 할 꽃가루를 놓아두는 것과 같은 의도로 그렇게 설정하여, 온전히 소유한다는 착각에 빠진 이들이 먼저 그녀가 살아가는 풍경을 차지하게끔 강제하는 그곳에서야 비로소 그녀를 진정으로 소유했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록 그 풍경이 감각적 쾌락보다는 상상력에 더 유용할지라도, 쾌락 없이는 결코 그들을 이끌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스테르마리아 양에게서 시선을 돌려야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중요한 인물과 안면을 트는 일이 그 자체로 흥미롭고 짧은 행위이며, 그 안에 담긴 모든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즉각적인 대화나 향후의 관계 발전 없이도 그저 악수 한 번과 꿰뚫어 보는 듯한 눈길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여겼던 게 분명했다. 벌써 변호사 회장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와, 귀중한 수확이라도 거둔 사람처럼 손을 비비며 딸 맞은편 자리에 앉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호사 회장은 이번 만남의 첫 감격이 지나가자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가끔씩 호텔 지배인을 불러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왕이 아니라네, 에메. 그러니 왕에게나 가게…… 이봐, 수석 판사님, 저 송어들 아주 맛있어 보이는데 에메한테 좀 달라고 할까. 에메, 저기 있는 저 작은 물고기 아주 괜찮아 보이더군. 그걸 가져와 주게, 에메, 마음껏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