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나는 알베르틴과 계속 대화를 나누고, 그녀를 취조하고, 용서하고, 그녀가 살아있을 때 항상 말해주고 싶었던 것들을 잊고 지냈던 것을 보충하곤 했다. 그러다 갑자기 나는 기억이 불러낸 존재, 이 모든 이야기를 건네는 그 존재에게 더 이상 어떤 현실도 대응하지 않으며, 오늘날 소멸해 버린 삶의 의지가 끊임없이 밀어붙여 한 사람으로서의 통일성을 부여했던 얼굴의 여러 부분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에 겁이 났다. 또 어떤 때는 꿈을 꾸지 않았음에도 눈을 뜨자마자 내 안에서 바람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과거의 밑바닥에서 불어오는 다른 방향의 차갑고 지속적인 바람이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먼 시간의 종소리와 떠날 때의 기적 소리를 내게 가져다주었다. 어느 날 나는 내가 특히 좋아했던 베르고트의 소설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소설 속 호감이 가는 등장인물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책의 매력에 금세 사로잡힌 나는 악녀가 벌받기를 개인적인 기쁨처럼 바라기 시작했다. 약혼자들의 행복이 보장되었을 때 내 눈가는 젖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절망하며 외쳤다. "내가 알베르틴이 무엇을 했을지에 대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것만으로 그녀의 인격이 사라질 수 없는 실제 무언가라거나, 나중에 하늘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겠지. 만약 내가 베르고트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고,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으며, 내 마음대로 얼굴을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누군가의 성공을 그토록 많은 염원을 담아 갈구하고, 그토록 초조하게 기다리며, 그토록 많은 눈물을 흘리며 반긴다면 말이야!" 게다가 그 소설에는 매력적인 소녀들과 연애편지, 만남이 이루어지는 인적 없는 오솔길이 등장했고, 그것은 내게 남 몰래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마치 알베르틴이 아직도 그 인적 없는 오솔길을 산책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내 질투를 깨웠다. 또한 거기에는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여인을 50년 만에 다시 만났지만 알아보지 못하고 그녀 곁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것은 내게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켰고, 마치 내가 알베르틴과 헤어져 늙은 날에 그녀를 무관심하게 다시 만날 운명인 것처럼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프랑스 지도를 볼 때면 내 눈은 질투하지 않으려고 투렌 지방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불행해지지 않으려고 적어도 발베크와 동시에르가 표시된 노르망디 지방은 피하려 했다. 우리는 그 사이의 모든 길을 수없이 함께 누비고 다녔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다른 도시나 마을 이름들이 단지 눈으로 보이거나 귀로 들리는 것들이라면, 투르라는 이름은 예컨대 더 다르게 구성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더 이상 비물질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내 심장에 즉각적으로 작용하여 심장 박동을 가속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유독 물질들로 이루어진 듯했다. 그 힘이 특정 이름들에까지 뻗어나가 그것들을 다른 이름들과 그토록 다르게 만들어버렸다면, 내 곁에 더 머무르며 알베르틴 자신에게 국한되었을 때, 아마도 다른 모든 여자와 다를 바 없었을 한 소녀로부터 뿜어져 나와 내게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하고, 다른 어떤 여자라도 대신할 수 있었을 그 힘이 꿈과 욕망, 습관, 다정함이 얽히고 접촉하며 번갈아 나타나는 고통과 쾌락의 간섭으로 인해 생겨난 결과라는 것에 어찌 놀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녀가 죽은 뒤에도 그것은 계속되었으니, 기억은 정신적인 것인 실제 삶을 유지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기차에서 내려 생 마르탱 르 베튀에 가고 싶다고 말하던 알베르틴을 떠올렸고, 그 전의 볼 위로 내려온 폴로 셔츠를 입은 그녀의 모습도 다시 보았다. 나는 행복의 가능성들을 다시 발견하고는 스스로에게 "우리는 앵카르빌이나 동시에르까지 함께 갈 수도 있었을 텐데"라고 말하며 그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발베크 근처에는 그녀를 다시 보지 않는 정거장이 없었기에, 이 땅은 마치 보존된 신화 속 나라처럼 내 사랑의 그 모든 이어졌던 기억들에 의해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매력적이었던, 이제는 지워져 버린 전설들을 생생하고 잔혹하게 되살려냈다. 아! 만약 내가 발베크의 그 침대에 다시 누워야만 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 침대 구리 프레임 주위로, 마치 변치 않는 회전축이나 고정된 막대 주위로 내 삶은 이동하고 진화해 왔으며, 그것에 기대어 할머니와의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고, 할머니 죽음의 공포, 알베르틴의 다정한 애무, 그녀 악덕의 발견이 차례로 거쳐 갔고, 이제는 바다가 비치는 유리 장식장을 보며 알베르틴이 다시는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는 새로운 삶이 펼쳐졌으니 말이다! 발베크의 이 호텔은 마치 지방 극장에서 수년간 가장 다양한 작품들을 공연하며 희극, 제1비극, 제2비극, 그리고 순수 시극을 위해 사용되었던 유일한 주택 세트와 같지 않은가? 벌써 내 과거의 꽤 먼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호텔 말이다. 내 삶의 새로운 시대가 흐르는 동안에도 벽과 서재, 거울을 그대로 간직한 이 유일한 부분이 늘 한결같다는 사실은, 전체적으로 볼 때 바뀐 것은 나머지 부분들,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더욱 잘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아이들이 낙관적인 생각으로 자신들은 참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삶과 사랑, 죽음이라는 신비가 따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수년이 흐르면서 당신 자신의 삶과 한 몸이 되었음을 고통스러운 자부심으로 깨닫게 되는 그런 인상을 내게 주었다.
나는 가끔 신문을 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신문을 읽는 것은 내게 혐오스러웠고, 더욱이 그것은 무해하지도 않았다. 사실 우리 안에서는 숲속의 갈림길처럼 각 관념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다른 길들이 뻗어 나가기에, 가장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나는 새로운 추억 앞에 서게 되곤 했다. 포레의 가곡 제목인 「비밀」은 브로이 공작의 「왕의 비밀」로 나를 이끌었고, 브로이라는 이름은 쇼몽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성금요일」이라는 단어는 골고다를 떠올리게 했고, 골고다는 칼부스 몬스, 즉 쇼몽과 동의어로 보이는 이 단어의 어원으로 나를 인도했다. 그러나 어떤 길을 통해 쇼몽에 도달했든 그 순간 나는 너무나 잔혹한 충격을 받아 그때부터는 오직 고통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충격이 있고 몇 순간 뒤, 천둥소리처럼 빨리 이동하지 못하는 지성이 내게 그 이유를 가져다주었다. 쇼몽은 봉탕 부인이 내게 앙드레가 알베르틴과 자주 가곤 했다고 말했던 뷔트 쇼몽을 떠올리게 했고, 반면 알베르틴은 내게 뷔트 쇼몽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었다. 어느 나이가 지나면 우리의 추억들은 서로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우리가 읽는 책은 거의 아무런 중요성을 갖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도처에 우리 자신을 심어 놓았기에 모든 것은 풍요롭고, 모든 것은 위험하며, 비누 광고에서도 파스칼의 『팡세』에서처럼 귀중한 발견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뷔트 쇼몽 사건과 같은 일은 당시에는 내게 사소해 보였지만, 그 자체로 알베르틴에 대해서는 샤워장 직원이나 세탁부 이야기보다 훨씬 덜 심각하고 결정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연히 우리에게 찾아오는 추억은 우리가 스스로의 정신을 의도적으로 적용하여 추억을 재창조할 때 일부 소모해 버린 상상력, 즉 이 경우에는 고통받는 능력을 내 안에서 온전히 찾아낸다. 하지만 이 후자들(샤워장 직원과 세탁부에 관한 추억들)은 비록 내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을지라도 항상 존재했기에, 마치 갤러리의 어스름한 곳에 놓여 있어 뚜렷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부딪치지 않으려 조심하는 가구들처럼, 나는 그것들에 익숙해져 있었다. 반대로 뷔트 쇼몽이나, 예컨대 발베크 카지노 거울에 비친 알베르틴의 눈길, 혹은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파티가 끝난 뒤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저녁 알베르틴이 설명 없이 늦었던 일 등, 내 마음 밖으로 남아 있어서 내 마음 속으로 동화되고 합병되어 내 안의 진짜 알베르틴이 형성한 그 달콤한 추억들과 합쳐지기를 바랐던 그녀 삶의 모든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본 지는 오래였다. 습관이라는 무거운 베일(평생 거의 온 우주를 우리에게서 숨기고, 깊은 밤 변치 않는 상표 아래 삶의 가장 위험하거나 매혹적인 독약들을 즐거움을 주지 않는 무해한 것으로 대체해 버리는 그 바보 같은 습관)의 한쪽 귀퉁이를 들추자, 그런 추억은 첫날처럼 생생하게 되돌아왔다. 그것은 다시 찾아온 계절의 신선하고 날카로운 새로움과 우리 시간의 일상적인 흐름 속에서 일어난 변화와 함께 돌아왔는데, 즐거움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봄의 첫 화창한 날에 차를 타거나 해 뜰 녘에 집을 나설 때 우리가 평소 사소하게 지나치던 행동들을 명쾌한 고양감으로 주목하게 하여 그 강렬한 순간이 이전의 모든 날들을 압도하게 만드는 것과 같았다. 나는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파티가 끝난 후 알베르틴의 도착을 기다리던 그때의 나로 되돌아갔다. 지나간 날들은 자신보다 앞선 날들을 조금씩 덮어버리고, 자신들 또한 뒤따르는 날들 아래 묻히고 만다. 하지만 각각의 옛날은 마치 더 오래된 책들이 가득한 거대한 도서관에서 아마도 아무도 찾지 않을 책 한 권이 남아 있듯이 우리 내면에 간직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 옛날이 이어지는 시대들의 투명함을 뚫고 표면으로 떠올라 우리 안에서 확장되어 우리를 온통 뒤덮을 때면, 잠시 동안 이름들은 예전의 의미를 되찾고 사람들은 예전의 얼굴을 되찾으며 우리 또한 그 당시의 영혼을 되찾는다. 그러고는 막연하지만 견딜 만해졌고 곧 사라질 고통과 함께, 오래전부터 풀리지 않은 채 당시 우리를 그토록 괴롭혔던 문제들을 느낀다. 우리의 '나'는 우리가 거쳐 온 상태들이 겹쳐진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런 중첩은 산의 지층처럼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지각 변동이 옛 지층들을 표면으로 밀어 올린다. 나는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파티가 끝난 후 알베르틴의 도착을 기다리던 그때의 나로 되돌아갔다. 그날 밤 그녀는 무엇을 했을까? 나를 속였을까? 누구와? 에메의 폭로를 내가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이 예기치 못한 질문이 주는 불안하고 애달픈 관심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마치 알베르틴이라는 다른 인물, 새로운 추억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질투의 문제를 던져주어 다른 해법으로는 풀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그날 밤 누구와 시간을 보냈는지뿐만 아니라, 그것이 그녀에게 어떤 특별한 쾌락이었는지, 그 순간 그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싶었다. 언젠가 발베크에서 프랑수아즈가 그녀를 찾으러 갔다가, 그녀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불안하고 탐색하는 표정으로 창가에 기대어 있는 것을 보았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만약 내가 그 기다렸던 소녀가 앙드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알베르틴이 그녀를 기다리던 마음 상태는 어떠했을까, 그 불안하고 탐색하는 눈빛 뒤에 숨겨진 마음 상태는? 그런 취향이 알베르틴에게 얼마나 중요했을까? 그녀의 고민 속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했을까? 아, 내가 좋아했던 소녀를 알아차릴 때마다, 때로는 보지도 못한 채 소문으로 들었을 때조차 느꼈던 나 자신의 동요, 멋져 보이고 싶고 돋보이고 싶었던 마음, 식은땀을 흘렸던 기억을 떠올리면, 알베르틴에게서도 그런 똑같은 관능적 동요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고문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문이었다. 스탕달이나 빅토르 위고에 대해 나와 진지하게 나눴던 대화들이 그녀에게는 아주 보잘것없었을 것임을, 그녀의 마음이 내 마음에서 떠나 다른 존재들에게 끌리고 어딘가 다른 곳에 깃들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욕망이 그녀에게 지녔을 법한 중요성과 그 주변에 형성된 비밀스러움은, 그것이 질적으로 어떤 것인지, 더 나아가 그녀가 스스로에게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조차 내게 드러내 주지 못했다. 육체적 고통에 있어서는 적어도 우리가 스스로 고통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질병이 고통을 결정하고 우리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투에 있어서는 우리에게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고통에 도달하기 전에 온갖 종류와 규모의 고통을 어쨌든 시험해 봐야만 한다. 그리고 사랑했던 이가 우리와는 다른 존재들과 쾌락을 나누며, 우리가 줄 수 없는 감각을 느끼게 하거나, 최소한 그들의 체격이나 외모, 행동거지가 그녀에게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때 느끼는 그런 고통에 비하면 얼마나 더 큰 어려움이 있겠는가. 아! 알베르틴이 왜 생 루를 사랑하지 않았던가! 그랬더라면 내가 얼마나 덜 고통받았을까! 물론 우리는 각 존재의 고유한 감수성을 알지 못하지만, 보통은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데, 왜냐하면 타인의 감수성은 우리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알베르틴에 관한 한, 나의 불행이나 행복은 바로 그 감수성이 어떠했느냐에 달려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내게 미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이 내게 미지라는 사실 자체가 이미 고통이었다. 알베르틴이 느꼈던 알 수 없는 욕망과 쾌락들을, 나는 알베르틴이 죽고 얼마 후 앙드레가 내게 찾아왔을 때 한 번 환영으로나마 보았던 것 같다.
그녀가 처음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나는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과 그늘진 눈가, 어두운 눈동자가 아마도 알베르틴이 그토록 사랑했던 모습일 것이며, 그녀가 사랑의 몽상 속에 품고 있었던 것, 그리고 발베크에서 그토록 급하게 돌아오고 싶어 했던 그날, 욕망의 앞선 시선으로 보았던 것이 내 앞에서 실현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존재의 깊은 곳에서 무덤 너머로 가져온 낯설고 어두운 꽃처럼,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유물을 뜻밖의 발굴로 되찾은 것만 같았다. 내게 앙드레가 바로 알베르틴의 체현된 욕망처럼 보였고, 마치 베누스가 유피테르의 욕망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앙드레는 알베르틴을 그리워했지만, 그녀가 알베르틴을 절실히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즉시 느꼈다. 죽음으로 친구와 강제로 헤어지게 된 그녀는 그 영원한 이별을 쉽게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알베르틴이 살아 있을 때라면 앙드레의 동의를 얻지 못할까 봐 감히 요구조차 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그 포기를 아무런 어려움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정작 내게는 더 이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앙드레는 나를 위해 알베르틴을 포기했지만, 그녀는 이미 죽어 있었고, 알베르틴을 다른 이들로 대체할 수 있었던 앙드레에게 그녀가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유일한 존재가 아니었음을 보게 되었기에, 내게 있어 그녀는 삶뿐만 아니라 회고적으로나마 현실성조차 일부 잃어버리고 말았다.
알베르틴이 살아 있을 때, 나는 앙드레에게 그들 사이의 우정이나 뱅퇴유 양의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묻는 속내를 감히 밝히지 못했다. 혹여나 앙드레가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을 알베르틴에게 전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마지막까지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질문이 설령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위험할 것은 없었다. 나는 앙드레에게 취조하는 말투가 아니라, 아마 알베르틴에게 들었기에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앙드레 본인의 여성에 대한 취향과 뱅퇴유 양과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미소 띠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고백했다. 그 고백에서 나는 잔혹한 결론들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우선 발베크에서 많은 청년에게 그토록 애교 있고 다정했던 앙드레가 전혀 부정하지 않는 습관을 가졌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터였으므로, 유추해보건대 이 새로운 앙드레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나는 알베르틴 또한 자신이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를 제외한 다른 누구에게나 그토록 쉽게 고백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앙드레는 알베르틴의 가장 친한 친구였으며, 알베르틴이 발베크에서 굳이 돌아왔던 이유도 바로 그녀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컸기에, 이제 앙드레가 그런 취향을 가졌다는 사실은 내 머릿속에 알베르틴과 앙드레가 늘 관계를 맺어왔으리라는 결론을 강제로 심어주었다. 물론 낯선 손님이 준 선물을 그 자리에선 감히 열어보지 못하고 그이가 떠난 뒤에야 풀어보듯, 앙드레가 머무르는 동안 나는 그녀가 가져다준 고통을 내 안에서 차마 들여다보지 못했다. 신경과 심장이라는 내 육체적 하인들이 벌써 큰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 느껴졌지만, 예의를 지키느라 나는 모르는 척 가장하며 오히려 손님인 그녀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게 대화를 나누었고, 내면의 사건들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특히 앙드레가 알베르틴에 대해 "아! 맞아요, 그녀는 셰브뢰즈 골짜기를 산책하러 가는 걸 정말 좋아했죠."라고 말했을 때 나는 무척 괴로웠다. 알베르틴과 앙드레가 산책하던 그 막연하고 실체 없는 세계에, 앙드레가 사후의 악마적인 창조를 통해 저주받은 골짜기 하나를 덧붙여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앙드레가 알베르틴과 했던 모든 일을 내게 말하려 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예의와 요령, 자존심, 어쩌면 고마운 마음 때문에 점점 더 다정하게 대하려 애썼지만, 알베르틴의 결백에 여전히 부여할 수 있었던 공간이 점점 더 좁아지는 동안,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매혹하는 새가 서서히 조여오는 원을 그리며 빙빙 도는 가운데 꼼짝 못 하게 된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새는 원하는 때면 언제든 다시는 도망칠 수 없는 희생양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서두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고, 누군가 빤히 쳐다보는 것에 최면 걸리지 않는 척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유쾌함과 자연스러움, 그리고 자신감으로 앙드레에게 넌지시 이런 말을 건넸다. "당신이 화낼까 봐 그동안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우리에게 감미로운 일이 되었으니, 당신이 알베르틴과 그런 관계였다는 걸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말해두죠. 어차피 당신도 이미 알겠지만, 이건 당신도 기분 좋은 일일 거예요. 알베르틴은 당신을 숭배했으니까요." 나는 앙드레에게, 내 앞에서 너무 거북하지 않을 정도의 애무만이라도 허락해 준다면, 알베르틴의 친구들 중 그런 취향을 가진 이들과 그런 짓을 하는 걸 보여주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알아보기 위해 로즈몽드와 베르트 등 알베르틴의 모든 친구 이름을 들먹였다. "세상에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이 말하는 그런 짓을 당신 앞에서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내가 말하는 사람들 중엔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앙드레가 내게 대답했다. 나를 유혹하는 괴물에게 나도 모르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나는 대답했다. "뭐라고요! 당신들 무리 전체 중에서 그런 짓을 한 사람이 알베르틴밖에 없었다고 나를 믿게 하려는 건 아니겠죠!" "하지만 전 알베르틴이랑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어요." "이봐요, 나의 작은 앙드레, 왜 적어도 3년 전부터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부정하는 거죠? 난 전혀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반대죠. 딱 마침, 다음 날 당신들과 베르뒤랭 부인 댁에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그날 저녁에 대해서 말인데, 당신은 아마 기억할지도 모르겠군요……."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앙드레의 눈이 보석 세공사들이 다루기 까다로워하는 원석들처럼 뾰족해지는 것을 보았는데, 연극이 시작되기 전 커튼 한 귀퉁이를 살짝 들추고 들키지 않으려 재빨리 숨어버리는 특권층의 머리들처럼 앙드레의 눈에 근심 어린 시선이 스쳐 지나갔다. 불안해 보이던 그 시선은 곧 사라졌고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했으나, 나는 이제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인위적으로 꾸며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는데, 나와 앙드레 사이에 어떤 닮은 점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만약 내가 면도를 오랫동안 멈추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콧수염이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었더라면 그 닮은 점은 거의 완벽했을 것이다. 어쩌면 발베크에서 막 자라나기 시작한 내 콧수염을 보며 알베르틴이 갑자기 파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참을 수 없고 격렬한 욕망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그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사실이 아닌 걸 말할 수는 없잖아요. 알베르틴과는 아무것도 한 적이 없다고 맹세해요. 그녀는 그런 것들을 혐오했다고 확신하고요. 당신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아마도 사심을 품고 당신에게 거짓말을 한 걸 거예요." 그녀는 의심스럽고 탐색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뭐, 좋아요. 당신이 말해주고 싶지 않다면 어쩔 수 없죠." 나는 대답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증거를 굳이 내놓지 않으려는 척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엉겁결에 뷔트 쇼몽이라는 이름을 희미하게 내뱉었다. "알베르틴과 뷔트 쇼몽에 갔을 수도 있지만, 거기가 특별히 나쁜 곳인가요?" 나는 알베르틴과 한때 친밀한 사이였던 지젤에게 그 이야기를 해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앙드레는 지젤이 최근에 저지른 파렴치한 짓 때문에 그녀에게 부탁하는 것만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거절하겠다고 단언했다. "만약 지젤을 보게 되더라도, 내가 당신에게 지젤에 대해 말한 것은 전하지 말아 주세요. 굳이 그녀를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녀도 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지만, 나는 차라리 화해밖에 가져오지 못하는 격렬한 다툼을 피하는 편이 항상 좋았거든요. 게다가 그녀는 위험해요. 하지만 당신도 이해하겠지만, 일주일 전 내 눈앞에서 읽었던 그녀가 그토록 교활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은 편지를 보고 나면,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운 행동으로도 그 기억을 지울 수는 없답니다."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요컨대, 앙드레가 그런 취향을 전혀 숨기지 않을 정도로 가졌고, 알베르틴이 그녀에게 매우 큰 애정을 품고 있었음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앙드레가 알베르틴과 육체적 관계를 맺은 적이 없으며 알베르틴이 그런 취향을 가졌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면, 알베르틴은 그런 취향이 없었으며 그 누구와도 앙드레와 가졌을 법한 그런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앙드레가 떠났을 때, 나는 그녀의 그 분명한 단언이 내게 평온을 가져다주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알베르틴이 살아생전 앙드레에게 부인해 달라고 부탁했을지도 모르는 일을 앙드레가 죽은 자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차마 믿게 두지 않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가들은 흔히 서문에서 어느 나라를 여행하다가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고는 그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 이야기를 맡기는데, 그가 들려주는 서사가 곧 그들의 소설인 셈이다. 파브리스 델 동고의 삶이 파도바의 한 참사관에 의해 스탕달에게 이야기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사랑할 때, 즉 다른 사람의 존재가 신비롭게 느껴질 때, 우리도 얼마나 그런 정통한 화자를 찾고 싶어 하는가! 그리고 분명 그런 이는 존재한다. 우리 자신도 때로는 어떤 여인의 연애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친구나 낯선 사람에게 그녀의 삶에 대해 아무런 열정도 없이 이야기하곤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가? 블로크에게 게르망트 공작부인이나 스완 부인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때의 나, 알베르틴에 대해 내게 말해줄 수 있었던 그 존재는 분명히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를 만나지 못한다. 내가 만약 그녀를 알았던 여인들을 찾을 수만 있었다면,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외부인들에게는 그 누구도 나만큼 그녀의 삶을 잘 알 수는 없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심지어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인 앙드레를 내가 알고 있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흔히 장관의 친구라면 어떤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다거나 재판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곤 한다. 하지만 정작 친구는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친구가 장관에게 정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장관은 일반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기껏해야 신문에 나온 내용 정도만을 말해주고, 혹여 무슨 곤경에 처해 장관을 찾아가 수차례 부탁을 해보아도 매번 '내 권한 밖의 일이다'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 그 친구로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저런 증인들을 알 수만 있었더라면!' 하지만 그들을 알고 있었다 한들, 스스로 간직한 비밀을 결코 내놓으려 하지 않았던 앙드레에게서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는 없었을 터였다. 더 이상 질투하지 않게 되자 오데트가 포르슈빌과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잃었던 스완과 달리, 나의 질투가 지나간 후에도 알베르틴의 세탁부나 그녀가 살던 동네 사람들을 알아보고 그곳에서 그녀의 삶과 연애 사건들을 재구성해보는 것, 오직 그것만이 내게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욕망은 언제나 사전의 위광에서 비롯되기에, 질베르트나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경우처럼, 알베르틴이 한때 살았던 그 동네들에서 내가 찾았던 것은 그녀와 같은 환경의 여인들이었고 오직 그들의 존재만을 갈망할 수 있었다. 설령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그들은 내가 끌림을 느낀 유일한 여인들이었다. 알베르틴이 알고 지냈거나 알았을 법한 여인들, 그녀가 속했던 환경이나 그녀가 좋아했던 환경의 여인들, 한마디로 내게는 그녀와 닮았다는 위광을 지녔거나 그녀가 좋아했을 만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알베르틴 자신 혹은 그녀가 틀림없이 선호했을 유형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그 여인들은 내 안에 잔혹한 질투나 회한의 감정을 일깨웠고, 나중에 슬픔이 가라앉았을 때 그것은 매력이 없는 것도 아닌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서민층의 처녀들은 내가 알고 있던 삶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들만의 삶 때문에 더욱 그랬다. 물론 우리가 사물을 소유하는 것은 오직 생각으로써일 뿐이고, 그림을 이해할 줄 모른다면 그것이 식당에 걸려 있다고 해서 소유한 것이 아니며, 나라에 살면서도 바라보지 않는다면 소유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파리에서 알베르틴이 나를 보러 와서 내가 그녀를 품에 안았을 때, 나는 발베크를 다시 손에 넣었다는 환상을 가지곤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공과 입을 맞출 때, 나는 비록 매우 좁고 은밀한 방식일지라도 알베르틴의 삶, 작업장의 분위기, 술집의 대화, 빈민가의 영혼과 접촉을 시도했다. 앙드레와 다른 여인들, 그 모든 것은 알베르틴에 비추어 볼 때―알베르틴 자신이 발베크에 비추어 그러했듯이―우리가 더 이상 도달할 수 없는 것, 즉 발베크 여행이나 알베르틴에 대한 사랑을 대신할 수 있게 해주는, 연속적인 저하 속에서 서로를 대체하는 쾌락의 대용품들이었다. (마치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한때 그곳에 있었던 티치아노의 그림을 보는 것이 베네치아에 가지 못하는 것을 위로해 주는 것과 같이 말이다.) 식별할 수 없는 미묘한 차이로 서로 분리된 이런 쾌락들은 우리 삶을,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짓고 그와 융합되지 않는 것은 제거하며 주된 색조를 퍼뜨린 최초의 욕망을 중심으로 동심원적이고 인접하며 조화롭고 점진적으로 쇠퇴하는 일련의 구역들처럼 만들어 버린다(예컨대 게르망트 공작부인이나 질베르트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앙드레나 다른 여인들은, 더 이상 채워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곁에 알베르틴을 두고 싶어 했던 내 욕망에 비추어 볼 때―알베르틴을 그저 스쳐 지나가며 알기 전 어느 날 저녁, 포도 송이를 비추던 굽이치고 서늘한 햇살이 내게 그러했듯이―하나의 대용품과도 같았다.
이제 내 사랑의 기억과 결부된 알베르틴의 신체적, 사회적 특징들은, 내가 그녀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내 욕망을 과거에는 가장 자연스럽게 선택하지 않았을 법한 대상, 즉 소부르주아 출신의 갈색 머리 여인들에게로 향하게 했다. 물론 내 안에서 부분적으로 다시 태어나기 시작한 것은 알베르틴에 대한 내 사랑이 채워줄 수 없었던 그 거대한 욕망, 발베크의 길 위에서, 파리의 거리에서 과거에 느꼈던 그 삶을 알고자 하는 거대한 욕망이었다. 알베르틴의 마음속에도 그 욕망이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내가 그녀를 나와 다른 이들과 함께 만족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부터 격리하려 했기에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바로 그 욕망이었다. 이제는 그녀의 욕망이라는 관념을 견딜 수 있게 되었고, 내 욕망에 의해 그 관념이 곧바로 깨어나면서 이 두 거대한 식욕이 일치했기에, 나는 우리가 함께 그것에 몸을 내맡길 수 있었기를 바랐다. 나는 '이 소녀는 그녀 마음에 들었겠군' 하고 스스로 말하곤 했는데, 그렇게 갑작스럽게 그녀와 그녀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면, 나는 너무 슬퍼져 더 이상 내 욕망을 쫓을 수 없었다. 과거에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이 시골에 대한 내 취향의 기초를 세워주어 낡은 교회나 수레국화, 미나리아재비가 없는 땅에서는 깊은 매력을 느낄 수 없게 만들었듯이, 알베르틴에 대한 내 사랑도 그녀를 내 안의 매력적인 과거와 결부시킴으로써 특정한 유형의 여인들만을 배타적으로 찾게 만들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기 전처럼, 서서히 덜 배타적이 된 내 기억과 서로 교체할 수 있는 그녀의 배음들이 다시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금발의 오만한 공작부인 곁에서는 즐거울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알베르틴으로부터, 그녀에 대한 내 욕망으로부터, 그녀의 사랑에 대해 가졌던 내 질투로부터, 내 고통으로부터, 그리고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된 그 어떤 감정도 내 안에서 일깨우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각이 강렬해지려면 감각 그 자체와는 다른 무언가, 즉 쾌락 속에서는 만족을 찾을 수 없지만 욕망에 덧붙여져 욕망을 부풀리고 쾌락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만드는 그런 감정을 우리 안에서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알베르틴이 어떤 여인들에 대해 느꼈던 사랑이 더 이상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게 됨에 따라, 그 사랑은 그 여인들을 내 과거와 결부시켰고, 마치 콩브레의 추억이 새로운 꽃들보다 미나리아재비나 산사나무에 더 많은 현실성을 부여했듯이 그들에게 더 현실적인 무언가를 부여했다. 이제 나는 앙드레에 대해서조차 격분하며 '알베르틴이 그녀를 사랑했어'라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나의 욕망을 스스로에게 설명하기 위해, 연민 어린 표정으로 '알베르틴은 그녀를 꽤 좋아했지'라고 말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아내의 자매와 재혼함으로써 오히려 위로받을 수 없음을 증명하는, 주변에서는 위로받았다고 생각하는 홀아비들의 심정을 이해했다. 이처럼 내 사랑이 끝나가는 것은 새로운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듯했고, 알베르틴은 오랜 기간 그 자체로 사랑받았으나 나중에 연인의 취향이 약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중매쟁이 역할에 만족하며 자신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여인들처럼, 루이 15세에게 퐁파두르 부인이 그러했듯 내게 새로운 소녀들을 연결해주었다. 예전에도 내 시간은 이런저런 여인을 갈망하던 시기로 나뉘어 있었다. 한 여인이 주는 강렬한 쾌락이 가라앉으면 나는 거의 순수한 다정함을 주는 여인을 원했고, 그러다가 더 노련한 애무가 필요해지면 다시 첫 번째 여인에 대한 욕망이 고개를 들곤 했다. 이제 그런 교차는 끝났거나, 최소한 한 시기가 무한정 길어졌다. 내가 원했던 것은 새로 온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와 살면서 저녁에 떠나기 전 내게 자매 같은 가족적인 키스를 해주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다른 이의 참을 수 없는 존재를 경험해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특정 입술보다 키스를, 사랑보다 쾌락을, 사람보다 습관을 더 그리워한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새로 온 이들이 알베르틴처럼 나를 위해 뱅퇴유의 곡을 연주해주거나 엘스티르에 관해 대화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의 사랑은 그녀의 사랑만큼 가치 있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박물관 관람이나 음악회 저녁 같은 에피소드가 덧붙여진 사랑, 즉 서신 교환이나 대화, 관계에 앞선 플러팅, 그 후의 진지한 우정까지 허용하는 복잡한 삶이 피아노보다 오케스트라가 더 풍부한 자원을 가지듯 몸을 내주는 법밖에 모르는 여인에 대한 사랑보다 더 많은 자원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더 깊은 차원에서, 알베르틴이 내게 주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다정함, 즉 자매이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 교양 있는 소녀의 다정함에 대한 내 욕구는, 알베르틴과 같은 환경의 여인들에 대한 욕구처럼 단지 알베르틴에 대한 기억, 그녀를 사랑했던 기억의 재연일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또다시 깨달았다. 추억은 창의적이지 않으며, 우리가 소유했던 것보다 다른 것, 심지어 더 나은 것조차 갈망할 힘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추억은 정신적인 것이기에 현실은 추억이 찾는 상태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추억이 죽은 사람에게 적용될 때 그것이 구현하는 부활은, 추억이 믿게 만드는 사랑의 욕구가 아니라 부재하는 이에 대한 갈망의 재연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여인에게서 알베르틴과의 닮은 점을 발견하고, 설령 그녀의 다정함마저 알베르틴과 닮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내가 알지 못한 채 찾았던 것, 즉 내 행복이 되살아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인 알베르틴 그 자신과 우리가 함께 살았던 시간, 내가 무의식중에 찾고 있던 과거의 부재를 더 뼈저리게 느끼게 할 뿐이었다. 분명 화창한 날이면 파리는 알베르틴의 욕망과 알려지지 않은 저녁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던,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소녀들로 꽃피어 있는 듯 보였다. 그 소녀들은 알베르틴이 나를 경계하지 않았던 초기에 내게 말해주었던, "저 아이 정말 사랑스럽네, 머릿결 좀 봐!"라고 했던 바로 그런 아이들이었다. 내가 그녀를 그저 스쳐 지나가며 알던 시절 그녀의 삶에 대해 가졌던 모든 호기심과, 한편으로 삶에 대한 내 모든 욕망은 이 단 하나의 호기심으로 귀결되었다. 바로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있는 알베르틴을 보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들이 떠나고 나면 내가 그녀와 단둘이 남은, 마지막이자 유일한 주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누군가와 저녁을 보낼 가치가 있을지 고민하는 그녀의 망설임과 불확실성, 상대가 떠났을 때의 포만감, 혹은 실망을 지켜보았다면 나는 알베르틴이 내게 불러일으킨 질투를 명확히 밝히고 적절한 수준으로 되돌려 놓았을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그들을 시험하는 것을 보며 나는 그녀의 쾌락의 척도를 재고 한계를 발견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녀가 자신의 취향을 부정하는 그 완고한 고집으로 우리에게서 얼마나 많은 쾌락과 얼마나 달콤한 삶을 앗아갔는지 나는 생각했다. 그 고집의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다시 한번 고민하던 찰나, 알베르틴이 내게 연필을 주었던 날 발베크에서 내가 그녀에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그녀에게 입맞춤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나무랐을 때, 나는 여자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은 비열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만큼이나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그녀에게 말했었다. 아, 어쩌면 알베르틴은 그때의 그 경솔했던 말을 줄곧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처녀들을 집으로 데려왔고, 그들의 머리를 성모처럼 단정하게 빗겨주었으며, 잘 빚어놓은 듯한 작은 코와 스페인 사람 같은 창백한 안색을 찬미했다. 분명 과거에는 발베크의 길 위에서나 파리의 거리에서 언뜻 스쳐 지나가는 여인을 볼 때조차 나는 내 욕망이 얼마나 개별적인지를 느꼈고, 다른 대상으로 그것을 채우려 하는 것은 그 욕망을 왜곡하는 일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삶은 우리 욕구가 영속적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하며, 한 존재가 없으면 다른 존재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내가 알베르틴에게서 구했던 것을 또 다른 존재인 스테르마리아 양에게서도 구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알베르틴이었다. 나의 다정한 욕구 충족과 그녀 신체의 특이성 사이에는 너무나 뒤얽힌 추억의 그물이 형성되어, 나는 다정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알베르틴의 육체에 관한 그 모든 추억의 자수를 더 이상 떼어낼 수 없었다. 오직 그녀만이 내게 그 행복을 줄 수 있었다. 그녀의 유일성에 대한 관념은 예전 스쳐 지나가는 여인들에게 그랬듯 알베르틴의 개별성에서 끌어온 형이상학적 선험 관념이 아니라, 나의 추억들이 우연하고도 분리할 수 없게 맞물려 만들어낸 후험적 관념이었다. 나는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거나 그녀의 부재로 고통받지 않고서는 더 이상 어떤 다정함도 갈망할 수 없었다. 따라서 내가 선택한 여인이나 내가 구했던 다정함이 내가 알던 행복과 닮았을수록, 그 행복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무엇이 부족한지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될 뿐이었다. 알베르틴이 떠난 이후로 내 방에서 느끼던 그 허무함을 나는 여인들을 품에 안음으로써 채울 수 있다고 믿었지만, 정작 그 여인들에게서도 똑같은 허무함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녀들은 내게 뱅퇴유의 음악이나 생시몽의 회고록에 대해 말해준 적이 없었고, 나를 보러 오면서 너무 진한 향수를 뿌리고 오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속눈썹을 내 속눈썹과 섞는 장난을 치지도 않았다. 이런 것들은 성행위 그 자체를 둘러싼 꿈을 꾸게 하고 사랑의 환상을 갖게 해주는 듯하기에 중요한 것들이었으나,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그것들이 알베르틴에 대한 추억의 일부였고 내가 찾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이 여인들에게서 보이는 알베르틴의 모습은, 그녀들에게 결여된 알베르틴의 부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알베르틴은 이미 죽었기에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그 전부가 무엇인지를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했다. 이처럼 알베르틴을 향한 내 사랑은 나를 그런 여인들에게 이끌었으면서도 정작 그녀들을 내게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알베르틴에 대한 내 후회와 내 질투의 지속성은 이미 가장 비관적이었던 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길었기에, 만약 그것이 내 삶의 다른 부분들과 격리되어 오직 내 추억의 유희에만, 고정된 상태에 적용되는 심리학의 작용과 반작용에만 종속되어 있었더라면, 그리고 영혼이 공간 속의 물체처럼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더 거대한 체계로 끌려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결코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공간에 기하학이 존재하듯 시간 속에도 심리학이 존재한다. 평면 심리학의 계산은 시간과 그 시간의 한 형태인 망각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정확하지 않게 된다. 나는 그 망각의 힘을 느끼기 시작했다. 망각은 현실과 끊임없이 모순을 일으키는 생존해 있는 과거를 우리 안에서 조금씩 파괴하기 때문에 현실에 적응하는 데 그토록 강력한 도구가 된다. 나는 언젠가 알베르틴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진작에 알아챌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인격과 행동이 내게 갖는 의미와 타인들에게 갖는 의미 사이의 차이를 통해 내 사랑이 그녀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 내 안의 사랑이라는 것을 이해했을 때, 나는 내 사랑의 이런 주관적 성격으로부터 여러 결론을 유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사랑은 정신적 상태이기에 당사자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지만, 당사자와 아무런 진정한 연결 고리가 없고 외부의 지지 기반도 없으므로 모든 정신적 상태가 그렇듯, 아무리 지속적인 것이라 해도 언젠가는 쓸모없어져 '대체'될 것이며, 그날이 오면 알베르틴의 추억에 그토록 감미롭고도 분리할 수 없게 묶여 있는 듯했던 모든 것이 내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존재들이 우리 생각 속에서 아주 쉽게 닳아버리는 수집품의 도판에 불과하다는 것은 그들의 불행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바탕으로 생각의 열기를 띤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생각은 피로해지고 추억은 파괴된다. 길베르트의 마노 구슬이나 다른 선물들을 아무런 슬픔 없이 알베르틴에게 주었듯, 언젠가 나는 알베르틴의 방을 아무 주저 없이 처음 만나는 누군가에게 기꺼이 내어줄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