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안경 좀 벗어도 될까?"
"안 돼, 주위에 사람들이 있잖아."
귀 먹은 사내는 얼굴을 찡그리며 바나나를 먹기 시작했다.그는 껍질을 세 갈래로 벗겨 등 뒤 벤치 옆의 화단으로 던졌다.그는 입안 가득 바나나를 채워 넣어 입술 주변의 회색 수염 사이로 침이 흐를 정도로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에밀리오는 그 모습을 역겨운 듯 바라보며, 형보다 더 빠르고 크게 한입씩 베어 물며 조심스럽게 먹었다.
귀 먹은 사내가 철학적인 말을 시작했다.
"에밀리오, 이런 삶이 얼마나 멋진지 말해 봐.솔직해져 보라고.걱정도, 정해진 시간도, 소리 지르는 상사도 없잖아.완벽한 자유지.구걸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야.저번에 우리가 지나갔던 들판 기억하지?있잖아, 거기 양철 오두막을 짓고 햇볕 쬐며 신선놀음이나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돈키호테』 한 권이랑 낚싯대 하나만 들고 가서 말이야.뭐 하러 힘들게 일하고 머리 깨지게 고민하겠어?"
"넌 건달이야.여자들은 누가 도와, 교황이라도?.우리 엄마는 어떡하고?네가 나쁜 아들이자 나쁜 형제라는 후안의 말이 맞아.너처럼 살면 몸에 이가 들끓을 거야."
귀 먹은 사내는 입을 다문 채 자신의 방랑 이상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강변의 오두막, 푸른 들판, 그리고 치과 대기실에서 아픈 치아를 뽑을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처럼 그저 삶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것.
광장 관리인이 곤봉을 휘두르며 권위를 잔뜩 내세운 채, 날카로운 시선으로 두 남자를 향해 다가온다.
그가 화단을 가리키며 물었다. "당신들이 저기에 바나나 껍질을 버렸나?"
귀 먹은 사내가 열아홉 번째 바나나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있었기에, 그들은 이를 부인할 수 없었다.
"어서 저 껍질들 치우고 사라져.여기가 무슨 빈터인 줄 아나?"
키가 큰 에밀리오는 순교자 같은 체념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그는 화단으로 올라가 귀 먹은 사내가 아무렇게나 등 뒤로 던져버린 껍질들을 허리 숙여 주워 모았다.에우스타키오는 에밀리오가 투덜거릴 것을 짐작하고는 냉소적으로 웃으며 스무 번째 바나나를 깠다.에밀리오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고는 내가 구걸한 돈을 좀 챙기면 불평이나 해대지... 저 인간 하나가 애들 한 부대보다 더 손이 많이 간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