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의 장막
밤 열 시.에르도사인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이마 피부 아래의 신경들은 고통스러운 사고의 연속이다. 어떤 순간에는 폭풍에 흔들리는 물과 기름처럼 뒤섞이고, 또 어떤 순간에는 마치 원심분리기 드럼을 통과한 것처럼 빽빽한 층으로 분리된다.이제 그는 지옥 같은 꿈의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뭉치고 굳어진, 서로 다른 사고의 뭉치들이 자신의 내면에서 요동치고 있음을 깨닫는다.과거는 수직의 날카로운 칼날로 그의 망막 가장자리를 건드리는 환각처럼 느껴진다.그 스파이는 차마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그는 마치 탯줄로 이어진 것처럼 과거에 묶여 있다.그는 '어쩌면 내일 내 삶이 바뀔지도 몰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지만, 이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꿈이 결국 사라진다 해도 그 내면에는 언제나 창백한 앙금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살당한 바르수트, 알몸인 남자의 품에서 몸부림치는 엘사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갑자기 그는 몸을 떤다. 바르수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창백한 앙금으로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이 확신은 그의 생각을 잇는 매듭을 풀어주거나 가볍게 해주지 않고, 오히려 가슴 속에 고통스러운 공허를 가져온다.이 공허는 꼭짓점은 목에 닿고 밑변은 배에 있는 삼각형 같아서, 차가운 빗변을 통해 불안이라는 둥근 공허를 뇌로 흘려보낸다.에르도사인은 혼잣말한다. '내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근육 분포나 동맥 계통의 지도는 이미 그려졌지. 우리 가여운 몸으로 퍼져 나가는 고통의 지도는 대체 언제쯤 그려질까?'에르도사인은 인간의 언어로는 그토록 많은 재앙의 매듭이 그리는 곡선을 표현하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게다가 하나의 수수께끼가 그의 내장에서 뜨거운 괄호를 열고 있는데, 그 수수께끼란 바로 살아가는 이유다.두개골에 못이 박혔다 한들, 삶의 이유를 알고자 하는 그의 욕구보다 더 집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끔찍한 점은 그의 생각이 아주 짧은 순간을 제외하고는 질서를 유지하지 못해, 이성적인 사고를 방해한다는 사실이다.나머지 시간 동안 생각은 마치 풍차 날개처럼 넓은 띠를 그리며 돌아간다.심지어 그는 수많은 바람에 시달리는 평원 한가운데서 두 발이 박힌 채 서 있는 자신의 몸을 보게 된다.그는 머리를 잃었지만, 여전히 피를 흘리는 목에는 톱니바퀴 하나가 박혀 있다.이 톱니바퀴는 맷돌을 지탱하고, 그 피스톤이 그의 심장 심실을 채우고 비운다.
에르도사인은 침대에서 참을성 없이 몸을 뒤척인다.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고통을 울부짖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금속판 같은 느낌이 그의 손목을 조여 온다.그는 초조하게 맥박이 뛰는 곳을 문지른다. 마치 쇠사슬 고리가 방금 자신의 손을 옭아맨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그는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뒤척이고 베개 위치를 바꾸며, 깍지를 낀 손으로 뒷덜미를 잡는다.맷돌은 그의 심장 심실로 가차 없이 끔찍한 질문을 펌프질해 보내는데, 그 질문은 가슴 속 빈 삼각형 안에서 종추처럼 흔들리며 뇌 속에서 독가스로 증발해 버린다.
침대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답답하다.그는 일어나 주먹으로 눈을 비빈다. 공허함이 그를 잠식했지만, 차라리 공허함보다는 고통을 택하고 싶다.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려 하거나, 이폴리타의 실종에 괴로워하거나, 엘사의 운명을 걱정하거나, 바르수트의 죽음을 후회하거나, 에스필라 가족을 염려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무의미하다.진정한 공허가 갑옷처럼 그의 삶을 둘러싸고 있다.그는 의자 옆에 멈춰 서서 등받이를 잡고 다리로 바닥을 두드려 소리를 내 보지만, 이 소음은 회색으로 물든 공허를 씻어내기엔 역부족이다.그는 일부러 지난 풍경과 추억, 사건들을 눈앞에 떠올려 보지만, 그의 갈망은 그곳에 달라붙지 못하고 마치 거센 물살에 지친 남자의 손가락이 돌덩이 표면에서 미끄러지듯 헛돌 뿐이다.두 팔이 몸 옆으로 툭 떨어지고 턱이 헐거워진다.후회나 평안을 느끼기 위해 그가 무엇을 하든 소용이 없다.우리 속에 갇힌 맹수처럼, 그는 자신의 부조리라는 파괴 불가능한 창살 앞을 서성인다.그는 행동해야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다.그는 불행한 남자들로 이루어진 무리의 한복판이나 초원, 혹은 산의 어두운 비탈에 있을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면 그들에게 자신의 비극을 털어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바람이 불어 가시나무를 흔들겠지만, 그는 검게 물든 하늘에 별이 하나둘 떠오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갈 것이다.그 방랑자들의 무리는 자신의 불행을 이해해 줄 것이라 확신하지만, 도시 한복판, 완벽하게 입방체로 된 방에서 시 조례에 따라 살아가는 지금 고해성사를 생각하는 건 어불성설이다.사제를 만나 그에게 털어놓으면 어떨까?하지만 사제복을 입고 면도를 말끔히 한 채, 뼛속까지 지루함에 찌든 신사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그는 길을 잃었다. 이것이 진실이며, 자기 자신조차 잃어버린 것이다.
진실의 희미한 빛이 그 속에서 고개를 내민다.죄를 지었든 아니든, 그는 지금과 똑같이 괴로울 것이다.그는 멈춰 서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마찬가지일 거야."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는 창틀 표면의 흐릿한 나뭇결을 관찰하며 되뇐다. '분명히, 나는 같은 상태에 있겠지.'실은 그의 내면 깊숙이 더 심각한 사건이 숨겨져 있다.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흉측한 태아로 변할 저열한 배아처럼 느껴진다.'사건'이라지만, 이 알 수 없고 검은 사건에서는 너무나 엄청난 냉기가 뿜어져 나와 그는 문득 스스로에게 말했다.
"총 쏘는 법을 배워야 해.무언가 일어날 것이다."
그는 권총을 점검하고 보이지 않는 적을 겨누는 것처럼 어둠 속으로 팔을 뻗는다.그러고는 권총을 베개 밑에 숨기고는 훌쩍 뛰어올라 탁자 가장자리에 걸터앉는다.그는 다리를 흔들며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자기 자신이 레모 아우구스토 에르도사인이라는 사실도, 아내가 있었다는 사실도, 뺨을 맞았다는 사실도 잊고, 그저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싶어 하며 낙담한 듯 고개를 떨군다.
가로세로 10센티미터 크기의 목판화 한 점이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그것은 그가 학교에 다닐 적 교과서에 실려 있던 삽화의 기억이다. 까마득한 옛날,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센강이라는 강을 곁에 두고 납 기와를 얹던 장인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었다.그 기억과 더불어 선생님이 던졌던 "너는 대체 왜 이렇게 멍청하냐?"라는 질문이 학교가 그에게 남긴 전부다.
에르도사인이 탁자에서 뛰어내린다.끔찍한 분노가 그의 온몸을 뒤흔들고, 입술을 떨리게 하며, 눈을 번뜩이게 한다.그 모욕이 지금 막 되풀이된 것만 같아 그는 외친다.
"아, 이 악당들, 악당들! 내 인생을 망쳐놓은 악당들!……"
어째서 밤에는 지구로부터 영원히 멀어질 수 있는 열린 길이 없는 것일까…….
"내 인생을, 이 악당들아, 망쳐놓았어!……"
누군가 그의 불행을 가엾게 여겨 그 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끔찍한 연민이 그의 영혼에서 육신으로 밀려든다.때때로 그는 자신의 팔을 만지고, 다리를 더듬어 보고, 이마를 쓸어내리는데, 마치 기관차 두 대가 충돌하는 사고에서 갓 빠져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이 더러운 문명이 그를 멍들게 하고 내부로부터 부수어 놓았으며, 콧구멍에서는 증오가 뿜어져 나온다.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정신이 맑아지며, 눈썹이 움찔거린다. 자신이 유일한 책임자인 머나먼 도살장을 내다보는 기분이다.그는 다시 현실의 자아를 되찾고 있다.턱을 손에 괸 채 그는 멍하니 구석을 바라본다.이제 그의 삶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 사실은 그가 이해하기에도 명확하지만, 태양을 맞이하며 작은 비명을 지르는 수많은 생명들이 있고, 그는 바로 이런 작은 생명들을 구해야 한다고 되뇐다.이제 그의 생각은 밤바다에 난파된 재난 현장이 서치라이트의 푸르스름한 빛줄기에 드러나듯 환하게 밝아지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점성가를 도와야 해.하지만 우리의 운동은 붉은색이어야 한다.구해야 할 것은 인간만이 아니야.아이들은 또 어쩌고?'
문제는 그의 내면에서 열병처럼 번져 나간다.뺨은 화끈거리고 귀에서는 윙윙 소리가 난다.에르도사인은 자신의 힘을 앗아가는 것이 혼자라는, 자신의 절박한 구조 신호를 받아줄 영혼이 곁에 없다는 끔찍한 무력감임을 깨닫는다.
그는 눈썹 위에 손을 얹어 차양을 만든다.보이지 않는 태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모양이다.그는 마음속의 흉포함을 더욱 깊게 만드는 거리감을 어렴풋이 느낀다.저 멀리, 아득한 곳에 그의 군중이 걷고 있다.그의 시적인 군중이.자비의 하늘을 부르짖는 잔혹하고 위대한 사람들.그러고는 에르도사인이 되뇐다. '우리에게 하늘이 주어져야 해.영원히 허락되어야 해.그 끔찍한 하늘을 붙잡아야 해.'
보이지 않는 태양이 어둠 속 그의 눈앞에서 빛의 폭포를 쏟아낸다.에르도사인은 격노가 자신의 살점을 움켜쥐고 집게처럼 파고들어 치아를 잇몸에서 뒤트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누군가를 미워해야 한다.누군가를 열렬히 미워해야 한다. 하지만 그 대상이 삶일 수는 없다.그는 마치 자기 것이 아닌 양 관자놀이를 쓰다듬는다.언젠가 기차에서 입 맞췄던 아이의 작은 얼굴, 그 기억의 잔상은 그가 간직한 다정함을 흔들어 놓는다.사랑의 형상이 그의 신경을 곤두세우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생각해보자.'
인간이란 무엇인가?이 질문은 끔찍한 S. O. S.(영혼을 구하소서)처럼 솟아오른다.그것이 곧 그에 상응하는 의미다.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자문할 때, 보이지 않는 우주를 향해 또 다른 비명이 그 안에서 울려 퍼진다. '우리의 영혼을 구하소서.'내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이다.그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는 지구 저편에 있어.자위로 더럽혀진 육신과 눈곱 낀 눈, 뺨을 얻어맞은 이 나라는 존재.나, 나, 언제나 나뿐이야.'
그는 베개에 머리를 파묻는다.수류탄이 빗발칠 때 병사들이 모래주머니 아래 몸을 숨기던 것과 같다.그는 자신의 정신에 빛의 파도를 쏟아붓는 저 보이지 않는 태양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싶다.하늘, 땅.그가 무엇을 알겠는가?그는 길을 잃었다.그것이 진실이다.대격변으로 뒤흔들리는 정글 속 개미처럼,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그리고 그는 나지막이 스스로에게 말한다. '내가 이 정글을 짊어져야 해.거대한 숲과 산, 신과 인간까지도 짊어져야 해.내가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해.'
그 아이의 얼굴이 그의 마음속에 떠오른다.그는 이런 기적을 행하고 싶지 않다. 가슴에 손을 넣어 마치 상자 속에서 꺼내듯 심장을 꺼내는 일, 사랑의 흔적이 새겨진 창백한 핏막으로 덮인 심장을 꺼내는 일 말이다.에르도사인은 비좁은 방 안에서 짐승처럼 몸을 뒤척인다.무언가를 해야 한다.문명의 한복판에 강철 탑과 같은 사건을 박아 넣어야 한다.군중과 인류가 그 주변으로 모여들 것이다.무엇으로 인간을 벌해야 할까?증오인가, 아니면 사랑인가?그는 자신에게 용광로와 머플 가마, 구리 제련에 관해 이야기하던 소녀를 떠올린다.그는 재빨리 혈육을 가진 인형들을 눈앞에 일렬로 세워본다.그러고는 혼잣말을 한다. '이건 점성가도 하는 짓이야.황금 탐색자도 똑같이 해.우울한 악당도 마찬가지지.'
그렇다면 그들을 모두 비틀어버릴 악마, 위대한 악마는 과연 누구일까?누가 위대한 진리를 가져올까? 남자와 여자를 고귀하게 만들고, 굽은 등을 펴게 하며, 모두가 기쁨으로 피 흘리게 할 그 진리를 말이다.이런 삶은 지속될 수 없다.수 톤 무게의 강철 덩어리처럼, 지하 요새의 돔처럼, 그 말은 그를 짓누른다. '이런 삶은 지속될 수 없어.바꿔야만 해.비록 모두를 산 채로 불태워야 할지라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앙상하게 드러난 팔로 시선을 돌렸고, 불룩 튀어나온 핏줄이 살갗의 털을 곤두세우게 했다.그는 투석기에 실려 우주로 날아가 버리거나, 벽에 머리를 부딪쳐 가루가 됨으로써 생각을 멈추고 싶다.삶은 예리한 칼날처럼, 진리가 요구하는 힘을 그 안에서 찾아내었다.신경처럼 적나라한 힘, 피 흘리는 힘, 그가 말로 감쌀 수 없는 힘이다.그는 산에 올라가 기도할 수 없다.그건 불가능한 일이다.그는 행동해야 한다.그러니 혁명 아카데미를 창설해야 한다. 지상에 일시적인 지옥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할 자들에게 하늘을 향한 이 갈망을 주입하여, 미쳐버린 인간들이 하나님을 부르짖고 땅바닥에 엎드려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강림을 애원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 에르도사인은 차갑게 미소 짓는다.그는 사람 사는 집의 내부를 본다.집집마다.침실과 거실, 식당, 그리고 '화장실'이 있는 집들을.모퉁이들, 즉 남자와 여자가 서성이는 이 사각형의 구석들은 황금빛 모서리, 경련의 모서리, 거즈의 모서리, 그리고 배설물의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그것이 인간의 보금자리이자 돼지우리다.2밀리미터 두께의 아연 도금 강판으로 된 지붕 위로, 미래의 창조라는 씨앗을 품은 공간들이 움직이지만, 귀먹은 귀와 눈먼 눈은 그중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가끔 들려오는 음악뿐.가끔 보이는 작은 얼굴 하나뿐.더할 나위 없이 감미로운, 첫 번째이자 마지막인 그 모습.그 씁쓸한 맛을 본 사람은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왜 접선을 타고 별들을 향해 달아나려 하는가?에르도사인은 지하 요새의 돔 무게만큼이나 자신의 영혼을 짓누르는 그 생각을 되풀이한다.
"삶을 바꿔야만 해.과거를 파괴하고.인간의 영혼을 악취로 물들인 모든 책을 불태워야 해.하지만 이 시간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지?"그가 외쳤다.
수천 가지 사건이 그의 마음속에서 서로 부딪치고, 구석구석에서 환각의 빛이 아른거렸다. 한 방향으로 치우친 그의 영혼은 일 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긴 생애를 살았기에, 그 머나먼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여전히 출발했던 그 시간 속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공포에 떨게 했다."내 하루는 하루가 아니었어." 그가 나중에 말했다."나는 수년과 맞먹는 시간들을 살았지. 사건들로 너무나 길게 이어져서, 떠날 때는 젊었지만 시계의 일 분이 한 세기 같았던 그 시간 속에서 겪은 경험들로 인해 늙어버린 채 돌아왔으니까."
"내 생각만으로도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긴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거야." 그가 다시 말했다."그보다 더 길게도."
"내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겠어." 그는 수첩에 적었다."해가 지지 않는 절망의 바닥에 잠겨 산다는 것, 그리고 마치 거대한 대양이 내리누르는 돔 아래에 갇혀 있는 것 같다는 건 알지."
때때로 에르도사인은 도주를 생각한다.떠나는 것.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을 먹여 살리는 늪의 부패 위를 떠다니는 불꽃처럼, 에르도사인의 고통은 질문을 던진다.
"떠난다고…… 그런데 어디로?"
"더 멀리."
에르도사인의 육신을 향해 거대한 연민이 솟구친다.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이 육체에 이 땅과 하늘 그 어디에도 '더 먼 곳'은 없다고 설득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더 멀리."라고 느릿하게 외치는 것은 바로 그의 육체니까.어디로?그는 눈을 감고 되뇐다. "너를 어디로 데려갈 수 있을까?네가 어디를 가든 절망도 너와 함께 갈 텐데.너는 지금처럼 고통스러워하며 '더 멀리'라고 말하겠지만, 이 땅에 더 먼 곳이란 없어.더 먼 곳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애초에 있지도 않았지.네가 어디를 가든 슬픔만 보게 될 거야."
에르도사인의 손이 사타구니 위로 툭 떨어진다.얼굴이 뻣뻣하게 굳고 등은 팽팽해진다. 그는 마치 고뇌에 돌처럼 굳어버린 듯 눈꺼풀을 무겁게 내리뜨고 그대로 멈춰 있다.사악한 '자아'가 그에게 속삭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이 네 주위에서 춤을 추고, 모든 남자가 네 발치에 무릎을 꿇으며, 광대와 아첨꾼들이 네 앞에서 재주를 넘는다 해도, 너는 지금처럼 슬플 것이다, 불쌍한 육체여.네가 황제가 된다고 해도 말이지.황제 에르도사인이 된다 해도."
"너에겐 마차와 자동차, 네 신호 한 번에 네가 앉는 변기를 핥을 완벽한 하인들이 생기겠지. 빨강, 초록, 파랑, 카키, 검정, 황금색 군복을 입은 남자들의 군대도 가질 것이고.여자든 남자든 네게 아내나 딸을 팔아넘기기만 한다면 기꺼이 네 손에 입을 맞출 거야.그 모든 걸 다 가진 황제 에르도사인이 된다 한들, 악마 같고 사탄 같은 너의 육체는 지금처럼 여전히 외롭고 슬플 뿐일 거야."
에르도사인은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짐을 느낀다.얼굴 근육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그의 내면에서 증오가 용수철처럼 풀려나온다.이 증오가 터지는 순간, '내 머리는 별들 사이로 날아가 버릴 거야'라고 에르도사인은 생각한다.
"네 발치에 무릎을 꿇고 있을 거야, 황제 에르도사인.늙은 시종장들은 네 변기를 든다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자기들의 혼인할 딸들을 데려오겠지만, 너는 여전히 한없이 슬플 거야.다른 나라 왕들이 너를 찾아올 것이고, 한쪽 어깨에 흰 모피 외투를 걸치고 녹색과 노란색 깃털이 달린 검은색 털 모자를 쓴 남자들로 이루어진 비행 편대에 둘러싸여 네 궁궐까지 당도하겠지.그러면 너는 멍한 눈길을 내리깔 것이고, 외교관들은 네가 슬쩍 쳐다보기만 해도 미소를 터뜨리려고 얼굴 근육을 잔뜩 굳힌 채 네 왕좌 주변을 서성일 거야.하지만 너는 여전히 슬플 거야, 이 거대한 악당아.너는 네 방으로 들어가 어느 구석에 앉아 짜증 섞인 신음으로 이를 갈 것이고, 실업자 동네의 마지막 집 꼭대기 다락방에 사는 것보다 더 고아처럼, 더 외롭게 느껴질 거야.알겠어, 황제 에르도사인?"
에르도사인은 자신의 증오라는 나선형 용수철이 유연함과 힘을 축적하고 있음을 느낀다.이 증오는 팽팽한 용수철과도 같다.고정 장치가 풀리는 순간, '내 머리는 별들 사이로 날아가 버릴 거야.몸만 남은 채 목구멍에서는 마치 수도관처럼 피가 솟구치겠지.'
"뭐라고 말하는 거야, 황제 에르도사인?너는 황제야.너는 네가 그토록 원하던 자리에 올랐어.그런데?당장이라도 장군이 들어와 '폐하, 백성들이 빵을 요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고, 너는 '기관총으로 쏴 죽여라'라고 대답할 수 있지.그걸로 뭘 해결했지?X 강대국의 장관이 들어와 '폐하, 폐하와 우리 주군이 이 세상을 나누어 가집시다'라고 할 수도 있지.그걸로 뭘 해결한 거야?너는 얼간이처럼 턱을 축 늘어뜨리고 있어, 황제 에르도사인.너는 슬퍼, 이 거대한 악당아.네 육체조차 구원받지 못할 만큼 말이야."
에르도사인이 이를 악문다.
"너는 언제나 고통 속에 있을 거야.이웃을 죽이거나 아이를 토막 내거나, 스스로 비굴해지고 하인이 되어 뺨을 얻어맞거나, 제 집에 정부를 끌어들이는 여자를 찾을 수도 있겠지.그 여자들이 나체로 누워 애무를 받는 동안 그들이 성기를 씻을 대야와 물을 가져다주고, 겸손하게 몸을 닦을 수건을 찾아다 바치는 극한의 굴욕을 견딘다 해도, 악마여, 너는 그 어떤 비참함 속에서도 위안을 찾지 못할 것이다.너는 파멸했어.네 눈은 언제나 그 어떤 얼룩도 없이 깨끗하고 슬플 거야.남들이 네 얼굴에 침을 뱉으면 너는 손등으로 천천히 닦아내겠지. 아니면 남자들과 네 아내가 주위에 둘러서서 너를 조롱하며, 하인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자의 발에 입을 맞추기 위해 손으로 기어 다니게 하더라도, 그런 모욕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는 결코 행복을 찾지 못할 것이다.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으며 가슴을 갈라 피 흘리는 심장을 손바닥에 얹은 채 먼지투성이 길을 걸으며, 단검 끝이나 날카로운 손톱으로 네 얼굴을 긁어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더라도 너는 여전히 슬플 것이다."
에르도사인은 심장이 부풀어 올라 갈비뼈를 뜨겁게 달구는 것을 느낀다.그는 숨을 헐떡인다.그는 무릎을 꿇고 싶어 한다.그의 공포는 마치 고환을 얻어맞았을 때 밀려오는 팽창하는 통증처럼 무르고 나약하다.'제발.' 그가 신음한다.식은땀이 그의 이마를 적신다.'미쳐버릴 것 같아. 제발 닥쳐.'
"어디를 가든, 어디에 있든, 소용없어……."
"제발 닥쳐…… 그래……."
목소리가 잦아든다.에르도사인은 마치 범죄를 저지르다 들킨 사람처럼 창백해졌다.그의 고통은 불규칙한 다면체로 터져 나오고, 고통의 정점들은 그의 골수와 뒷목 옆, 무릎 관절, 흉막의 일부를 찌른다.그는 이를 악물고 공기를 깊게 들이마신다.그의 눈빛은 흐릿하다.그는 눈을 감고 조심스럽게 침대 끝으로 몸을 던진다.그는 베개로 머리를 덮는다.마치 질산은으로 긁어낸 듯 눈동자가 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