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강도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아버지와 어머니의 보호 아래 누렸던 안락함, 자식으로서의 사랑, 그리고 부드럽고 다정하며 밝은 환경 속에서 족한 줄 알고 즐겁게 놀며 보냈던 나날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아름답고 섬세하며 사랑스러운 것들이 참 많을 것이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이야기했다. 나에게 흥미로운 것은 오직 내가 나 자신에게 이르기 위해 삶 속에서 걸었던 발자취들뿐이다. 나 역시 그 마법을 잘 알고 있었던 아름다운 휴식처나 행복의 섬, 낙원 같은 것들은 먼 곳의 빛 속에 남겨두기로 했으며,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래서 소년 시절을 다루는 동안만큼은 내게 새로이 다가왔던 것, 나를 앞으로 밀어붙이고 뿌리째 흔들어 놓았던 것들에 대해서만 말하려 한다.
이런 자극들은 늘 '저편의 세계'에서 왔고, 늘 불안과 강박과 가책을 동반했으며, 늘 혁명적이었기에 내가 머물고 싶어 했던 평화를 위협했다.
내 안에는 허용되고 밝은 세계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어야만 하는 원초적 본능이 살아 있다는 것을 다시금 발견해야 했던 시절이 다가왔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서서히 깨어나는 성적 본능을 적이자 파괴자로, 금지된 것이자 유혹이자 죄악으로 받아들였다. 나의 호기심이 갈구하고 나에게 꿈과 쾌락과 공포를 만들어 주었던, 사춘기라는 거대한 비밀은 내가 보호받던 어린 시절의 평화로운 행복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남들처럼 행동했다. 나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면서도 아이인 척하는 이중생활을 했다. 나의 의식은 가정적이고 허용된 세계 속에 살았고, 서서히 밝아오는 새로운 세계를 부정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나는 지하의 본능과 소망이 가득한 꿈속에서 살았으며, 내 안의 아이들의 세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기에 그 의식적인 삶은 그 위에 점점 더 불안한 다리를 놓아야 했다. 거의 모든 부모가 그렇듯 나의 부모님 또한 결코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않았던, 내 안에서 깨어나는 삶의 본능들을 돕지 못했다. 그저 지칠 줄 모르는 정성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점점 더 비현실적이고 기만적으로 변해가는 어린아이의 세계에 계속 머물려고 하는 나의 절망적인 시도만을 도울 뿐이었다. 부모가 이런 문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부모님을 탓하지 않는다. 스스로 감당하고 내 길을 찾아내는 것은 나 자신의 몫이었고, 대부분의 잘 교육받은 아이들이 그렇듯 나 역시 그 일을 형편없이 해냈을 뿐이다.
모든 인간은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곳은 삶의 요구가 환경과 가장 격렬하게 충돌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가장 고통스럽게 개척되어야 하는 인생의 분기점이다. 많은 이들이 우리의 운명인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인생에서 단 한 번, 어린 시절이 썩어 문드러지고 서서히 무너져 내릴 때 경험하는데, 그때는 사랑했던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려 하고 우리는 갑자기 우주 공간의 고독과 치명적인 한기를 주변에서 느낀다. 그리고 아주 많은 이들이 영원히 이 절벽에 매달린 채, 회복할 수 없이 지나가 버린 과거에, 그리고 모든 꿈 중 가장 최악이자 살인적인 꿈인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평생을 고통스럽게 집착하며 살아간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어린 시절의 끝을 예고했던 감정과 꿈의 이미지들은 구태여 이야기할 만큼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어두운 세계', 즉 '다른 세계'가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한때 프란츠 크로머였던 것이 이제 내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하여 밖으로부터도 '다른 세계'가 다시 나에 대한 지배력을 얻게 되었다.
크로머와 관련된 사건 이후로 몇 년이 흘렀다. 내 인생의 그 극적이고 죄책감 가득했던 시절은 당시 내게 아주 멀게 느껴졌고, 짧은 악몽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듯했다. 프란츠 크로머는 내 삶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기에, 가끔 마주치더라도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내 비극의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이었던 막스 데미안은 내 주변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저 멀리 가장자리에 서서, 눈에는 보이지만 별다른 영향은 미치지 않았다. 그러다 서서히 다시 가까워지며 힘과 영향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내가 데미안에 대해 알고 있던 것들을 떠올려 보려 한다. 그와 1년 넘게 단 한 번도 대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피했고, 그는 결코 억지로 다가오지 않았다. 가끔 길에서 마주치면 그는 다정하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의 친절 속에 조롱이나 냉소적인 비난이 미묘하게 섞여 있는 것 같다고 느끼곤 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내 상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 겪었던 사건들과 당시 그가 내게 끼쳤던 기묘한 영향력은 그에게서도, 내게서도 잊힌 듯했다.
나는 그의 모습을 찾으려 애썼고, 지금 그를 떠올려 보니 그가 분명 그곳에 있었으며 나에게도 눈에 띄었다는 사실을 알겠다. 그가 혼자 또는 다른 상급생들 사이에 섞여 학교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그들 사이를 마치 별처럼 낯설고 외롭고 조용하게 거닐고 있었는데, 자신만의 공기에 둘러싸여 자신만의 법칙 아래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와 친하지 않았는데, 오직 그의 어머니뿐이었으며 그 어머니와도 아이처럼이 아니라 마치 어른처럼 대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들은 그를 가급적 내버려 두었다. 그는 모범생이었지만 누구에게도 잘 보이려 하지 않았고, 간혹 우리는 그가 선생님에게 했다고 전해지는 어떤 말이나 촌평, 혹은 말대꾸에 대해 소문으로 듣곤 했는데, 그것은 거친 도전이나 냉소 면에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디였더라? 아, 이제 다시 생각이 난다. 우리 집 앞 골목이었다. 어느 날 그가 손에 공책을 들고 서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우리 집 대문 위에 있는 새가 그려진 옛 문장을 베껴 그리고 있었다. 나는 커튼 뒤에 숨어 창가에 서서 그를 지켜보았는데, 깊은 경외심을 느끼며 문장을 향해 있는 그의 주의 깊고 차분하며 밝은 얼굴을 보았다. 그것은 흡사 한 남자, 혹은 연구가나 예술가의 얼굴이었는데, 우월하고 의지로 가득 차 있었으며, 기묘하게 밝고 냉철하면서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다시 그가 보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길에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우리는 넘어진 말 주변에 몰려 있었다. 말은 아직 수레채에 묶인 채 농부의 수레 앞에 쓰러져 있었는데,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애처롭고 갈급하게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와 말 옆의 하얀 길바닥 먼지를 천천히 검게 적시고 있었다. 구역질이 나서 그 광경으로부터 눈을 돌렸을 때, 나는 데미안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앞자리를 다투지 않았고, 그답게 편안하고 꽤 우아한 모습으로 맨 뒤에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말의 머리를 향해 있었는데, 다시금 깊고 고요하며 거의 광신적이라고 할 만큼 감정 없는 주의력을 띠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아야만 했고, 그때 아직 의식 저편에서 아주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데미안의 얼굴을 보았다. 그저 소년의 얼굴이 아니라 남자의 얼굴이라는 것뿐만이 아니라, 나는 더 많은 것을 보았다. 그 얼굴은 남자의 얼굴이 아니라 또 다른 어떤 것이라는 점을 보았거나, 혹은 그렇게 느꼈던 것이다. 마치 그 안에 여성적인 면도 깃들어 있는 듯했다. 그 얼굴은 순간적으로 남성적이거나 아이 같지도, 늙거나 젊지도 않은, 어쩐지 천 년은 묵은 것 같았고, 시대가 우리와는 다른 시간의 흐름을 겪은 듯 시대를 초월한 것으로 보였다. 동물들이나 나무, 혹은 별들이 그렇게 보일 수 있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지금 어른이 되어 말하는 것처럼 정확히 느낀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무언가를 느꼈다. 그가 아름다웠는지, 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오히려 그가 거북했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보았다. 그는 우리와 달랐다. 그는 동물 같기도, 유령 같기도, 혹은 그림 같기도 했다. 그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분명 달랐다. 우리 모두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달랐다.
기억은 더 이상 나에게 말해주지 않으며, 어쩌면 이마저도 일부는 후의 인상들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몇 년 더 나이를 먹고 나서야 비로소 그와 다시 가까워질 기회가 생겼다. 관례대로라면 데미안은 동갑내기 친구들과 함께 교회에서 견진성사를 받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고, 그 사실을 두고 곧바로 이런저런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그가 사실 유대인이라거나, 혹은 이교도라거나 하는 소문이 돌았고, 다른 이들은 그가 어머니와 함께 아무런 종교도 믿지 않거나 터무니없고 사악한 종파에 속해 있다고들 했다. 그와 관련해 그가 자기 어머니와 연인처럼 지낸다는 의혹까지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그가 지금까지 아무런 종교 없이 자라왔는데, 그것이 앞으로의 장래에 어떤 불편함을 초래할까 봐 우려했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의 어머니는 지금이라도, 또래보다 2년 늦게 그를 견진성사에 참여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몇 달 동안 견진성사 교육 과정에서 내 동료가 되었다.
한동안 나는 그와 거리를 두었다.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는데, 그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소문과 비밀에 싸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것은 크로머 사건 이후 내 안에 남아 있던 빚진 마음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나는 나 자신의 비밀들만으로도 벅찼다. 나에게 견진성사 수업은 성적인 문제들에 대해 결정적인 깨달음을 얻던 시기와 겹쳤고, 그런 탓에 선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경건한 가르침에 대한 나의 관심은 크게 저해되었다.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것들은 내게서 멀리 떨어진 고요하고 신성한 비현실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들은 아마 꽤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이었겠지만, 결코 내게 당면하거나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다. 반면 다른 쪽의 일들은 내게 그 무엇보다도 생생하고 자극적인 것이었다.
이 상태가 수업에 대한 나의 무관심을 키울수록, 반대로 나는 막스 데미안에게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언가 우리를 연결해주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이 실마리를 최대한 정확히 쫓아가야만 한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그 시작은 아침 일찍 학교 교실에 아직 불이 켜져 있던 수업 시간이었다. 종교 담당 선생님이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졸음이 쏟아져 거의 듣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목사님이 목소리를 높여 카인의 표적에 대해 간절하게 설교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어떤 접촉이나 경고 같은 것을 느꼈고, 고개를 들어 앞줄을 보았다가 나를 돌아보고 있는 데미안의 얼굴과 마주쳤다. 그의 밝고 말하는 듯한 눈빛에는 조롱과 진지함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았을 뿐이었지만, 갑자기 나는 목사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목사님이 카인과 그 표적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들으며, 가르치는 내용이 전부가 아니며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고 비판적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을 내면 깊은 곳에서 깨달았다.
그 순간부터 데미안과 나 사이에는 다시 유대감이 생겼다. 이상한 일이었다. 영혼 속에 어떤 동질감이 생겨나자마자 그것이 마치 마법처럼 공간적인 변화로까지 이어졌으니 말이다. 나는 그가 스스로 그렇게 자리를 바꿀 수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시에는 아직 우연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을 때였으니 말이다. 며칠 뒤 데미안은 갑자기 종교 수업 때 자리를 옮겨 내 바로 앞에 앉았다. (나는 붐비는 교실의 퀴퀴한 공기 속에서도 아침마다 그의 뒷덜미에서 풍기던 은은하고 상쾌한 비누 향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직도 기억한다!) 그러고는 며칠 뒤 다시 자리를 옮겨 이제는 내 옆에 앉게 되었고, 그는 그 겨울과 봄 내내 그 자리를 지켰다.
아침 수업 시간은 완전히 달라졌다. 더 이상 졸리고 지루하지 않았다. 나는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때때로 우리는 둘 다 목사님의 말씀을 아주 주의 깊게 들었는데, 옆자리인 그의 눈짓 한 번이면 충분히 어떤 신기한 이야기나 이상한 구절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보내는 또 다른 특별한 눈짓 한 번이면 나에게 경각심을 주고 비판과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아주 자주 우리는 수업 내용을 전혀 듣지 않는 불량한 학생이었다. 데미안은 선생님과 급우들에게 항상 예의 발랐고, 나는 그가 학생다운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며, 그가 크게 웃거나 떠드는 소리를 들은 적도,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주 조용히, 속삭임보다는 눈짓과 신호로 내가 자신의 놀이에 동참하게 만들곤 했다. 그 놀이들은 때로는 기묘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그는 어떤 학생들이 자신에게 흥미로운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그들을 관찰하는지 말해주곤 했다. 어떤 아이들은 그가 아주 상세히 알고 있었다. 수업 시작 전, 그가 내게 말했다. "내가 엄지로 신호를 주면, 저 아이가 우리 쪽을 돌아보거나 목덜미를 긁는 따위의 행동을 할 거야." 수업 도중 내가 까맣게 잊고 있을 때면 막스는 갑자기 눈에 띄게 내 쪽으로 엄지손가락을 돌렸고, 나는 서둘러 지목된 아이를 살펴보았는데, 그때마다 그 아이는 마치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약속된 동작을 하곤 했다. 나는 막스에게 선생님께도 한번 해보라고 졸랐지만, 그는 그러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은 내가 수업에 들어와 그에게 오늘 숙제를 못 했으니 목사님이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길 바란다고 말하자, 그가 나를 도와주었다. 목사님은 교리 문답을 시킬 학생을 찾고 있었고, 두리번거리던 눈길이 죄책감에 젖은 내 얼굴에 머물렀다. 천천히 다가온 목사님은 나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고 이미 내 이름을 부르려던 찰나, 갑자기 정신이 산만해졌는지 안절부절못하며 깃을 만지작거렸다. 목사님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데미안에게 다가가 무언가 물으려는 듯했지만, 갑자기 방향을 돌려 헛기침을 하더니 다른 학생을 지목했다.
이런 장난들이 매우 재미있기는 했지만, 점차 나는 내 친구가 종종 나를 상대로 똑같은 게임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등굣길에 갑자기 데미안이 뒤에서 따라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는데, 뒤돌아보면 정말로 그가 그곳에 있었다.
"너는 남이 네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게끔 만들 수도 있어?"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어른스러운 태도로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기꺼이 대답해주었다.
"아니," 그가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 설령 목사님이 그렇게 주장한다 해도, 인간에게 자유 의지란 없거든. 상대가 자기가 원하는 걸 생각할 수도 없고, 내가 원하는 걸 상대가 생각하게 만들 수도 없어. 하지만 누군가를 면밀히 관찰하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꽤 정확히 알아낼 수 있고, 그러면 대개 그가 다음 순간에 무엇을 할지 예견할 수 있지. 아주 간단한 일이야, 단지 사람들이 모를 뿐이지. 물론 연습이 필요해."
예를 들어 나비 중에는 암컷이 수컷보다 훨씬 귀한 나방 종류가 있어. 나방은 다른 모든 동물처럼 번식하는데, 수컷이 암컷을 수정시키고 암컷이 알을 낳지. 그런데 이 나방 암컷 한 마리를 붙잡아두면―자연학자들이 자주 실험해 본 건데―밤사이에 수컷 나방들이 그 암컷을 찾아 날아와. 그것도 몇 시간 거리에서 말이야! 몇 시간 거리라니, 상상해 봐!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그 많은 수컷이 근방에 있는 단 한 마리의 암컷을 감지하는 거야. 사람들은 그걸 설명하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아. 일종의 후각 같은 것이겠지. 훌륭한 사냥개가 눈에 보이지 않는 흔적을 찾아 따라가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야. 알겠어? 자연에는 이런 일이 가득한데 아무도 설명하지 못해. 그런데 내 말은 이거야. 만약 이런 나방들 중에 암컷이 수컷만큼 흔했다면, 그런 예민한 코는 없었을 거라는 사실이지! 그들이 그런 능력을 갖게 된 건 단지 그렇게 하도록 길들여졌기 때문이야. 동물이나 사람이 자신의 온 주의력과 의지를 특정 대상에 집중하면 결국 그것을 이뤄내고 말지. 그게 전부야. 네가 말한 것도 정확히 그런 이치지. 누군가를 충분히 자세히 관찰하면, 그 사람 자신보다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거야."
나는 '독심술'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어, 까마득히 먼 옛날 크로머와 있었던 그 사건을 상기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기묘한 규칙 같은 것이 있었다. 그가 몇 년 전 내 삶에 그토록 깊이 개입했다는 사실에 대해, 나와 그는 단 한 번도 조금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우리 사이에 아무런 과거가 없었던 것처럼, 혹은 상대방도 이미 잊었을 것이라고 서로 굳게 믿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두 번은 길을 걷다 프란츠 크로머와 마주친 적도 있었지만, 우리는 눈길조차 교환하지 않았고 그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럼 의지라는 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나는 물었다. "너는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없다고 했잖아.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의지를 어떤 대상에 굳게 집중하기만 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도 했어. 그건 앞뒤가 안 맞잖아! 내 의지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리저리 의지를 발휘할 수도 없는 거 아니겠어?"
그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내가 그를 기쁘게 했을 때면 언제나 하던 행동이었다.
"좋은 질문이야!" 그가 웃으며 말했다. "항상 묻고 끊임없이 의심해야 해. 하지만 이치는 아주 간단해. 예를 들어 나방 같은 녀석이 별이나 다른 어딘가에 의지를 집중하고 싶어 한다 해도, 그건 불가능해. 단지 녀석은 애초에 그런 시도를 하지 않을 뿐이야. 오직 자신에게 의미와 가치가 있고, 필요하며,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것만을 찾지. 바로 거기서 녀석은 놀라운 일을 해내는 거야. 다른 어떤 동물도 갖지 못한 마법 같은 육감을 발휘하는 거지! 우리 같은 사람에겐 물론 동물보다 더 넓은 활동 범위와 많은 관심사가 있지. 하지만 우리 역시 상대적으로 꽤 좁은 테두리 안에 묶여 있어서 그 밖으로 나갈 수는 없어. 내가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북극에 꼭 가고 싶다고 마음먹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실행하고 충분히 강력하게 원할 수 있는 건 오직 그 소망이 내 내면에 온전히 존재할 때, 정말로 내 존재가 그것으로 완전히 채워졌을 때뿐이야. 바로 그런 상태가 되었을 때, 네 안에서 명령받은 일을 시도할 때면 모든 것이 가능해지지. 그때는 잘 길들여진 말처럼 너의 의지를 부릴 수 있게 되는 거야.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우리 목사님이 앞으로 안경을 쓰지 않게 만들겠다고 마음먹는다 해도 그건 안 돼. 그건 그저 장난일 뿐이니까. 하지만 지난가을, 저 앞줄 내 자리에서 옮겨야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졌을 때, 그때는 아주 잘 풀렸어. 갑자기 알파벳 순서가 내 앞인 녀석이 나타났는데, 그간 아팠던 녀석이 복귀하면서 누군가 자리를 비켜줘야 했고, 마침 내 의지가 그 기회를 낚아챌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당연히 내가 그 일을 하게 된 거지."
"그래," 내가 말했다. "그때 내게도 참 기묘한 기분이 들었어. 우리가 서로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한 순간부터 너는 점점 내 곁으로 다가왔잖아. 그런데 그건 어떻게 된 거야? 처음부터 내 옆에 앉은 건 아니었지, 몇 번은 내 앞줄에 앉지 않았나? 그건 어떻게 가능했던 거야?"
"그건 이런 거야. 내가 첫 번째 자리에서 떠나고 싶어 했을 때, 나 스스로도 어디로 가고 싶은지 잘 몰랐어. 그저 더 뒤쪽에 앉고 싶다는 것만 알았지. 너에게 다가가고 싶었던 건 내 의지였지만, 나조차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거야. 동시에 너의 의지가 함께 작용해서 나를 도운 거지. 그러다 너의 앞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내 소망이 절반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어. 사실 내가 바랐던 건 다른 게 아니라 바로 네 옆에 앉는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거지."
"하지만 그때 새로 들어온 학생은 없었잖아."
"그래, 하지만 그때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서 너의 옆자리로 옮겨 앉았어. 내가 자리를 바꾼 아이는 그저 어리둥절해하다가 나를 내버려 뒀지. 목사님은 한번 자리가 바뀐 걸 눈치채긴 했어. 사실 목사님은 나랑 관련이 있을 때마다 뭔가 은밀하게 괴로워해. 내 이름이 데미안인데, 내 이름의 D로는 맨 뒤 S 밑에 앉아 있는 게 맞지 않다는 걸 알고 있거든! 하지만 내 의지가 거부하고 있고 내가 계속 방해하고 있어서 그게 목사님의 의식 속까지는 파고들지 못해. 목사님은 계속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채고 나를 쳐다보며 연구를 시작하지, 좋은 분이지만 말이야. 하지만 나에겐 간단한 수단이 있어. 나는 매번 목사님의 눈을 아주, 아주 뚫어지게 쳐다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잘 견디지 못해. 다들 안절부절못하게 되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얻어내고 싶을 때, 예상치 못하게 그 사람의 눈을 아주 뚫어지게 쳐다봤는데 그 사람이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면, 포기해! 그에게선 절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하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지. 사실 나한테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딱 한 명밖에 몰라."
"그게 누군데?" 나는 서둘러 물었다.
그는 생각에 잠길 때면 눈이 다소 작아지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대답하지 않았는데, 나는 강한 호기심에도 불구하고 그 질문을 다시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말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어머니와 매우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듯했으나, 결코 내게 어머니에 대해 말하거나 나를 집으로 데려간 적이 없었다. 나는 그의 어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거의 알지 못했다.
* * * * *
당시 나는 때때로 그를 흉내 내어 나의 의지를 어떤 대상에 집중해 그것을 성취해보려 애쓰곤 했다. 나름대로 꽤 절박하다고 생각하는 소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성과도 없었다. 데미안에게 그에 대해 털어놓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것을 그에게 고백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도 결코 묻지 않았다.
종교 문제에 대한 나의 믿음은 그사이 여러 군데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하지만 데미안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나의 사고방식은 완전히 불신을 표방하는 급우들과는 아주 달랐다. 그런 아이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들은 종종 신을 믿는 것은 우스꽝스럽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짓이며, 삼위일체나 예수의 처녀 잉태 같은 이야기는 그냥 웃음거리일 뿐이고, 오늘날까지 이런 헛소리를 늘어놓고 다닌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식의 말을 내뱉곤 했다.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의심이 드는 순간에도 나는 우리 부모님이 보여주신 경건한 삶의 실체를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었고, 그것이 결코 저급하거나 위선적인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종교적인 것에 대해 여전히 깊은 경외심을 품고 있었다. 다만 데미안은 나에게 이야기와 교리들을 더 자유롭고, 개인적이며, 유희적이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바라보고 해석하도록 습관을 들여주었을 뿐이다. 적어도 나는 그가 제시하는 해석들을 언제나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였다. 물론 너무 과격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는데, 카인에 관한 이야기가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견진성사 수업 도중,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대담한 견해로 나를 놀라게 했다. 선생님은 골고다 언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구세주의 수난과 죽음에 관한 성경 기록은 아주 어릴 적부터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린 시절 성금요일에 아버지가 수난사를 읽어주실 때면, 나는 그 고통스럽고도 아름답고, 창백하며 유령 같으면서도 엄청나게 생생한 세계, 즉 겟세마네와 골고다 언덕의 세계 속에서 진심으로 감동하며 살곤 했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들을 때면 이 신비로운 세계의 어둡고 강렬한 수난의 광채가 온갖 신비로운 전율과 함께 나를 덮치곤 했다. 나는 오늘날에도 그 음악과 「악투스 트라기쿠스(actus tragicus)」 속에서 모든 시와 예술적 표현의 정수를 발견한다.
그 수업이 끝날 무렵, 데미안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내게 말했다. "싱클레어, 내 마음에 안 드는 게 하나 있어. 그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뭔가 싱거운 맛이 나. 바로 두 강도에 관한 이야기 말이야. 언덕 위에 세 개의 십자가가 나란히 서 있는 광경은 정말 장엄하지! 하지만 저 고결한 강도에 관한 그 감상적인 설교집 같은 이야기는 뭐야! 처음엔 온갖 악행을 저지른 범죄자였던 녀석이 갑자기 녹아내리며 참회와 개심의 눈물겨운 잔치를 벌이다니! 무덤을 두 걸음 앞두고 하는 그런 참회가 무슨 의미가 있어? 또다시 전형적인 성직자들의 이야기일 뿐이야. 감상적인 눈물과 아주 교훈적인 뒷배경으로 범벅된, 달콤하고 정직하지 못한 이야기지. 만약 오늘 너더러 두 강도 중 한 명을 친구로 선택하거나 누구를 더 신뢰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고 한다면, 이 눈물 흘리는 개종자는 절대 아니야. 아니, 다른 한 명이지. 그가 진짜 사나이이고 인격자야. 그는 자기 처지에서 그저 예쁜 말장난에 불과할 개종 따위는 집어치우고, 자기 길을 끝까지 걸어가며 마지막 순간에 비겁하게 자신을 지금까지 도와준 악마를 배신하지 않아. 그는 인격자인데, 성경 이야기 속에서는 인격자들이 늘 대접을 못 받거든. 어쩌면 그도 카인의 후예일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무척 당황했다. 나는 이곳, 십자가 처형 이야기에 아주 익숙하다고 믿어왔는데, 이제야 내가 얼마나 개인적인 감정 없이, 상상력과 창의력도 없이 그 이야기를 듣고 읽어왔는지 깨달았다. 그럼에도 데미안의 새로운 생각은 내게 치명적으로 들렸고,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믿어왔던 관념들을 뒤흔들어 놓을 것만 같았다. 아니, 그렇다고 모든 것과 모든 이들을, 심지어 가장 신성한 것까지 그렇게 다뤄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는 늘 그렇듯 내가 아무 말도 하기 전에 즉시 나의 저항을 알아차렸다.
"나도 알아." 그가 체념한 듯 말했다. "늘 하던 그 이야기지. 진지해지지 말라는 거! 하지만 한 가지만 말해둘게. 지금 이 지점이 바로 우리 종교의 결함을 아주 명확하게 볼 수 있는 대목이야. 구약과 신약의 신은 아주 훌륭한 인물이긴 하지만, 사실 그가 본래 나타내야 할 모습은 아니야. 그는 선하고, 고귀하고, 아버지 같고, 아름답고, 숭고하고, 감상적이지. 맞아! 하지만 세상은 그것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아. 나머지는 전부 악마의 탓으로 돌리고, 세상의 나머지 반쪽은 아예 무시하고 쉬쉬하잖아. 마치 신을 모든 생명의 아버지로 칭송하면서, 정작 삶의 근간인 성적인 삶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악마의 것이나 죄악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처럼 말이야! 나는 사람들이 여호와라는 신을 숭배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없어, 조금도 없지. 하지만 내 생각엔 우리는 인위적으로 분리된 공식적인 반쪽만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것을 숭배하고 신성하게 여겨야 해. 그러니 예배와 더불어 악마에 대한 예배도 있어야겠지. 나는 그게 옳다고 봐. 아니면 악마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세상의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 일어날 때도 눈을 감을 필요가 없는 그런 신을 만들어내야 할 거야."
그는 평소답지 않게 거의 격앙된 태도를 보였으나, 이내 다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더는 파고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은 내 어린 시절 내내 매 순간 품고 있었으면서도 누구에게도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내 수수께끼를 정확히 꿰뚫었다. 신과 악마, 신성한 공식적 세계와 침묵 속에 묻힌 악마적 세계에 대해 데미안이 말한 것은, 빛과 어둠이라는 두 세계 혹은 두 반쪽에 대한 나의 고유한 생각, 나의 신화와 정확히 일치했다. 나의 문제가 모든 인간의 문제이자 삶과 사유 전체의 문제라는 통찰이 갑자기 성스러운 그림자처럼 나를 훑고 지나갔다. 내 가장 개인적인 삶과 생각이 거대한 이념의 영원한 흐름에 얼마나 깊이 닿아 있는지 깨닫고 느꼈을 때, 나는 두려움과 경외감에 휩싸였다. 그 깨달음은 어떤 면에서는 나를 확인시켜 주고 행복하게 해주었으나 기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아이로 머물 수 없다는, 혼자 서야 한다는 책임감의 울림을 담고 있었기에 딱딱하고 거칠게 느껴졌다.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그렇게 깊은 비밀을 털어놓으며, 어린 시절부터 줄곧 품어왔던 '두 세계'에 대한 나의 생각을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내 가장 깊은 내면이 그에게 동의하며 옳다고 말하고 있음을 즉시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이용하는 것은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주의를 기울여 내 말을 경청했고, 내가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을 때까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에서 나는 또다시 그 기묘하고 짐승 같은 초월성, 그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세월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는 남에게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만약 그렇다면 너도 알 거야. 네가 생각한 것을 온전히 살아내지는 못했다는 걸 말이지. 그건 좋지 않아. 오직 우리가 살아내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는 거야. 너는 네 '허용된 세계'가 세상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고, 목사나 교사들이 그러는 것처럼 나머지 절반을 너 자신에게서 숨기려 했지. 하지만 그건 성공하지 못할 거야! 일단 생각을 시작한 이상, 그 누구도 성공할 수 없거든."
그 말은 내 가슴 깊이 박혔다.
"하지만," 나는 거의 비명처럼 외쳤다. "실제로 존재하고 정말로 금지된 추악한 것들이 분명히 있잖아, 그건 부정할 수 없잖아! 그런 것들은 어쨌든 금지되어 있고 우리는 그것들을 멀리해야 해. 살인이나 온갖 타락한 일들이 존재한다는 건 나도 알지만, 그런 것들이 있다고 해서 내가 직접 가서 범죄자가 되어야 한다는 거야?"
"오늘은 이쯤 해 두자." 막스가 나를 달랬다. "넌 분명히 살인을 하거나 소녀를 강간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넌 아직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는지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어. 넌 이제 막 진리의 일부분을 느꼈을 뿐이야. 다른 부분도 곧 알게 될 테니, 기대해도 좋아! 예를 들어 너에겐 지난 1년 정도부터 다른 무엇보다 강렬한 욕구가 하나 있지. 그런데 그건 '금지'된 것으로 간주되는 거야. 반면 그리스인이나 다른 여러 민족들은 그 욕구를 신격화해서 성대한 축제 때 숭배하기도 했지. 그러니 '금지'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며, 바뀔 수도 있는 거야. 오늘날에도 누구나 목사 앞에서 결혼식만 올리면 여자와 동침할 수 있지. 다른 민족들에게는 그조차 다른 방식으로 다뤄져. 오늘날까지도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각자는 스스로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는지, 자신에게 무엇이 금지되는지를 찾아내야 해. 금지된 일을 하면서도 아주 비열한 놈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사실 그건 편의상의 문제일 뿐이야!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심판자가 되기엔 너무 게으른 자들은 그저 기존의 금지 사항에 순응하며 살지. 그들은 편하거든. 하지만 누군가는 자기 내면에서 스스로 금기를 느껴. 남들은 매일 하는 일도 그들에겐 금지되어 있고, 남들이 비난하는 일들을 허용받기도 하지. 각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 홀로 서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