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3 · 카탈루냐에서 일어난 다툼에 관하여, 한 여인이 남편의 지나치게 잦은 요구를 불평한 적이 있다. 내 생각에 그녀가 불편해서라기보다는(나는 신앙의 영역에서의 기적 외에는 기적을 믿지 않으므로), 그 핑계를 빌미로 결혼의 본질적인 행위인 남편의 권위를 제동 걸고 억제하며, 그들의 앙심과 악의가 부부의 잠자리를 넘어 비너스의 은총과 즐거움까지 짓밟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었다. 이 불평에 대해 참으로 짐승 같고 비인간적인 남편은 단식일에도 하루 열 번은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대답했다. 이에 아라곤 왕비의 주목할 만한 판결이 내려졌는데, 왕비는 신중한 회의 끝에 올바른 결혼 생활에 필요한 절제와 겸양의 규칙과 모범을 시대를 넘어 제시하기 위해, 합법적이고 필요한 한도를 하루 여섯 번으로 규정했다. 왕비는 '지속 가능하고 불변하는 편안한 형식을 확립하기 위해' 자신의 성(性)이 가진 욕구와 바람을 상당 부분 양보하고 포기한 것이다. 이에 학자들은 이렇게 외친다. 이성과 교화, 그리고 미덕조차 이런 수준으로 책정된다면, 여인의 식욕과 음욕은 도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우리 욕망의 판단 기준이 제각각인 점을 고려해 보라. 법학파의 수장인 솔론조차 부부 관계에 있어 실수가 없으려면 한 달에 세 번이면 충분하다고 규정했으니 말이다. 나는 우리가 그런 주장을 믿고 설파한 뒤에, 정작 여성들에게는 특별히 금욕을 강요하고 이를 어길 시 극형에 처하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것만큼 절박한 정념은 없는데, 우리는 그것을 오로지 여성들에게만 홀로 저항하라고 요구한다. 단순한 방종의 죄를 넘어, 신성모독이나 존속 살해보다 더한 혐오와 저주로 여기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은 아무런 죄책감이나 비난 없이 굴복하고 만다. 우리 중 그것을 극복해 보려던 이들조차 물질적 처방을 동원해 몸을 다스리고 약하게 하며 식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 사실상 불가능한지 충분히 인정했다. 반대로 우리는 그들이 건강하고 활기차며 살집 좋고 영양 상태가 좋으면서도 동시에 정숙하기를 바란다. 즉, 뜨거우면서도 차갑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불타는 욕망을 막아줄 것이라 말하는 결혼 생활은 우리 관습상 그들에게 거의 식혀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인이 젊음의 기운이 끓어오르는 남편을 만난다 한들, 그는 그 기운을 밖에서 쏟아내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 것이다. | TRANSREA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