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벌레
여름 연꽃이 만개할 무렵, 새로 지은 입도(入道)의 히메미야가 모시는 부처님의 공양 행사가 열리게 되었다. 염송당의 모든 장식과 비치된 도구는 로쿠조인의 뜻에 따라 기진된 것이었다. 기둥에 거는 번(幡) 등도 특별히 고른 중국 비단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무라사키 부인의 손끝에서 준비된 꽃상자 덮개는 사슴무늬 염색을 이용한 것이었는데, 색깔과 무늬 모두 고상한 멋이 넘쳤다. 장대(帳台) 사방의 휘장을 모두 걷어 올리고 뒤쪽에는 법화경 만다라를 걸었으며, 은 화병에는 높은 입화(立華)를 화려하게 꽂아 바쳤다. 부처님 앞의 이름난 향으로는 중국의 백보향이 피어 있었다. 아미타불과 협시보살은 모두 백단향으로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아가(閼伽) 그릇은 유난히 작게 만들어져 있었고, 백옥과 청옥으로 연꽃 모양을 낸 몇 개의 작은 향로에는 꿀의 달콤한 향을 물리친 하엽향이 피어 있었다. 경권은 육도를 헤매는 망자를 위해 육부를 직접 쓰게 하였다. 궁의 지경(持經)은 로쿠조인이 친히 쓰신 것이었다. 이를 부처님과의 인연으로 삼아 적어도 사랑하는 두 사람이 영구히 인도되기를 바라는 희망이 원문에 서술되어 있었다. 조석으로 독송할 아미타경은 중국 종이는 너무 약해서 어떨까 싶으셔서, 가미야가와 사람들을 불러 특별히 뜨게 한 종이에 올봄부터 정성을 다해 쓰신 이 경권은, 한쪽 끝을 멀리서 보기만 해도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선을 그은 황금 줄보다 먹의 자국이 훨씬 빛나고 있었다. 축, 표지, 상자에 쓰인 취향의 우아함은 말할 나위조차 없었다. 이 두루마리는 특히 침향나무로 만든 화족(華足)의 책상 위에 올려두어, 불상을 안치한 장대 안에 장식해 두었다. 당의 준비가 끝나고 강사가 자리에 앉아 행향(行香)을 하는 젊은 전상인들이 모두 모였을 때, 원께서도 그 불당 쪽으로 향하시다가 아마미야의 서쪽 처마 아래 객실에 먼저 들러 보시니, 좁게 느껴지는 이 임시 거처 안에 덥게 느껴질 정도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관들이 오륙십 명 모여 있었다. 동녀들은 북쪽 방 바깥 툇마루까지 나와 있었다. 화로가 많이 놓여 있었고, 훈향을 연기 자욱하게 여관들이 부채질하고 있는 곁으로 원께서 다가가셔서,
"향을 피우는 것은 어디서 피우는지 모르는 편이 느낌이 좋은 법이라네. 후지산 정상보다 더 심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은 좋지 않아. 설교 중에는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세세하게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법이니, 무례하게 옷깃 스치는 소리나 일어서고 앉는 소리는 가급적 내지 않도록 하게."
라고 평소처럼 경솔한 젊은 여관들을 타일으셨다. 궁은 사람들의 기운에 눌리셨는지, 작고 아름다운 모습을 엎드린 채 계셨다.
"와카기미를 이곳에 두지 말고, 좀 더 먼 방으로 안고 가도록 해라."
라고 또다시 여관들에게 주의를 주셨다. 북쪽 좌식과의 사이도 오늘은 미닫이문을 떼어내고 발을 쳐놓았으나, 그쪽 방으로 여관들을 모두 들이고 원께서 아마미야에게 오늘 의식에 관한 마음가짐을 일러주셨지만, 그저 그분이 가련하게만 느껴지셨다. 예전 원앙의 꿈이 서린 자리에 불좌(佛座)가 되어버린 장대가 발 너머로 보이는 것 또한 원을 몹시 슬프게 하였다.
"이런 의식을 당신을 위해 열어주는 날이 오리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소. 이것은 이것대로 해두고, 내세의 연꽃 위에서는 다정하게 살아가기로 기약해 주시오."
라고 말하고는 원은 눈물을 흘리셨다.
같은 연꽃 꽃대에 피자고 약속했건만 / 이슬처럼 갈라지는 오늘이 슬프구나
벼루에 붓을 적시어, 향을 입힌 궁의 부채에 적으셨다. 궁이 그 옆에,
가로막힘 없이 연꽃의 집에서 함께하자 약속해도 / 그대 마음은 편치 않으려 하시는구려
이렇게 적으시니,
"그토록 내가 신용받지 못하는 것일까."
웃으면서 원께서 말씀하시지만, 왠지 모를 사무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친왕들도 많이 참석했다. 로쿠조인의 부인들이 불전으로 바친 물건도 많았다. 일곱 스님의 법복이라든가, 이 법사에 관한 주요 보시물은 모두 무라사키 부인이 준비시킨 것이었다. 비단으로 된 법복이라, 가사의 솔기조차 평범한 물건이 아님을 말하며 당시의 승려들이 칭찬했다고 한다. 이런 일도 어려운 모양이다.
강사가 궁의 출가를 찬미하며, 이 세상의 뛰어난 영화를 한창 누릴 때 버리고 영구한 인연을 부처님과 맺었다는 점을, 학식이 풍부한 승려가 미사여구를 곁들여 계속 이야기하자 감동하여 숙연해지는 이가 많았다. 오늘은 그저 염송당 개당 법회로 연 것이었으나, 궁중에서도, 절의 법황에게서도 사자가 와서 독경 보시 등이 내려지는 바람에 갑자기 성대한 행사가 되었다. 처음에 준비는 간단히 하려고 원께서 생각하셨으나, 결코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던 데다 궁정의 기진품까지 더해졌기에, 참석한 승려들은 둘 곳도 없는 보시를 얻어 절로 돌아갔다.
출가하신 지금에 이르러 궁을 원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마음은 각별하여, 끝없는 애정이 쏟아지는 듯 보였다. 절의 제께서는 궁에게 배분해 주신 저택으로 이제는 옮기는 편이 세간의 체면도 좋으리라 권하셨으나, 로쿠조인은,
"멀어지면 수시로 뵐 수도 없어 곤란합니다. 매일 뵙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당신의 시중을 들 수 없게 된다면, 제가 기약했던 일들이 모두 그림 속의 떡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 해도 제게 남은 목숨이 이제 얼마 되지 않겠지만,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적어도 그 뜻만큼은 다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말씀하시며 찬성하지 않으셨다. 원께서는 그곳 저택도 깨끗이 수선해 두셨고, 궁이 관가에서 받으시는 수입이나 사유 장원, 목장에서 올라오는 물건 중에서도 저장해 둘 가치가 있는 것은 모두 그 산조의 궁 창고에 납입해 두게 하셨다. 새로운 창고까지 증축하게 하여, 그곳에는 법황이 이 궁에 무수히 나눠주셨던 귀중품 중 지금까지 로쿠조원에 있던 것들을 옮겨 보관하게 하셨다. 이는 영구히 궁의 가문을 경제적으로 보증할 가치 있는 재산이라 할 만한 것이다. 그리고 로쿠조원에서의 궁의 생활과 수많은 여관, 남녀 하인들에게 소요되는 비용은 원께서 부담하기로 정하셨다.
가을이 되어 원은 니노미야(尼宮)가 머무는 서쪽 와타도노 앞의 담장부터 동쪽 정원을 초원으로 만드셨다. 아가다나(閼伽棚) 등을 그곳에 만드신 것이 우아해 보인다. 궁의 출가를 뒤따라 유모와 그 밖의 늙은 여인들은 필연적으로 비구니가 되었으나, 한창때의 사람이라도 훗날 동요할 염려가 없는, 신념이 굳어 보이는 이들만 제자로 삼기로 하였는데, 너도나도 희망하는 자가 많은 것을 원께서 들으시고는,
"군중 심리로 지금은 그런 마음이 들겠지만, 그것을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불순한 자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다른 이들에게 폐가 됩니다."
라고 충고하시어, 전부 중에서 열 명 남짓만이 비구니 모습으로 시중들게 되었다. 이번에 만든 초원에 원께서는 벌레를 풀어놓으시고, 저녁 바람이 조금 서늘해질 무렵에 궁이 계신 곳으로 오셔서 벌레 소리를 감상하는 척하며 줄곧 궁을 유혹하려 하셨다. 이제 와서 그런 행동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궁은 그저 두려워하실 뿐이었다. 남들의 눈에는 이전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하시면서도, 그 비밀을 알고 난 뒤부터는 더러운 것으로서 혐오해 마지않았던 자신의 육체를 비관하는 마음이 출가의 주된 동기가 되었고, 비구니가 된 이후로는 일체의 애욕을 잊을 수 있어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즐기고 있는 자신에게 다시 이런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괴롭다고 궁은 생각하셨으며, 로쿠조원이 아닌 곳으로 옮겨 살고 싶어 하셨으나 이를 딱 잘라 말씀드리지 못하는 나약한 성품이셨다.
보름달이 아직 뜨지 않은 저녁에, 궁께서 불당의 툇마루 근처에서 염송을 하고 계시니, 밖에서는 젊은 비구니 서너 명이 꽃을 공양할 준비를 하며 아가 그릇을 다루는 소리와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 청춘의 꿈과 이것은 너무나 동떨어진 일로 보여 애처로운 때에 원께서 오셨다.
"함부로 벌레가 우는구려."
이렇게 말씀하시며 좌식으로 들어오신 원께서는 스스로도 나지막한 소리로 아미타 대송을 읊으시는 모습이 은은하고 숭고하게 밖으로 새어 나왔다. 원의 말씀대로 많은 벌레가 울어대고 있었지만, 그때 새로 울기 시작한 방울벌레의 소리가 유난히 화려하게 들렸다.
"가을에 우는 벌레는 모두 각기 다른 매력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마쓰무시(솔벌레)가 가장 뛰어나다고들 하여 중궁께서 먼 들판까지 사람을 보내 찾아다 풀어놓으셨지만, 그만큼의 효과는 없는 듯하오. 왜냐하면 가져와도 오래도록 들판에 있던 것처럼 울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이름은 마쓰무시지만 목숨이 짧은 벌레인가 보오. 사람이 듣지 않는 깊은 산속이나 먼 들판의 솔밭 같은 곳에서는 마음껏 울어대면서, 사람의 정원에서는 잘 울지 않는 심술궂은 면이 있는 벌레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방울벌레는 그런 일이 없고 애교가 있는 벌레라 귀엽게 느껴지오."
등등 원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계시던 궁께서,
가을이 무정한 줄 진작 알았건만, 뿌리치기 어려운 방울벌레 소리여
라며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매우 요염하고 앳되면서도 품위가 있었다.
"무슨 소리요, 당신이 원망할 만한 일은 없었을 텐데."
라고 원께서 말씀하시고,
마음으로야 풀 우거진 집을 싫다 하여도, 여전히 방울벌레 소리는 가시지 않는구려
라고도 속삭이셨다. 거문고를 가져오게 하여 원께서 오랜만에 연주하셨다. 궁께서는 염주를 굴리는 것도 잊은 채 원의 거문고 소리를 열성적으로 듣고 계셨다. 달이 떠올라 화려한 빛으로 가득 찬 하늘도 사람의 마음속에 절실히 가을을 느끼게 하였다. 원께서는 덧없이 변해가는 인생을 쓸쓸히 생각하며 평소보다 더욱 깊이 몸에 사무치는 선율을 타셨다. 해마다 그랬듯 오늘 밤에도 음악 연주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효부쿄 친왕이 방문하였다. 좌대장 또한 젊고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을 대동하고 입원(入院)하였는데, 이곳 저택에서 들려오는 거문고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
"심심해서 말이지. 일부러 모임을 가질 정도는 아니지만, 한동안 듣지 못했던 음악을 누군가 와서 들려주지 않을까 싶어, 불러내는 게 가능할까 하여 먼저 혼자 시작하고 있었는데 잘 듣고 찾아와 주었구려."
라고 원께서 말씀하셨다. 궁의 자리도 이쪽으로 마련하게 하여 초대하셨다. 오늘 밤은 궁중에서 달맞이 연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중지되어 아쉬워하던 사람들이 로쿠조원에 다들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찾아온 것이었다. 벌레 소리에 대해 평을 나눈 뒤 음악 합주가 이어져 흥미로운 밤이 되었다.
"달을 바라보는 밤이면 언제나 쓸쓸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이 중추의 달을 마주하고 있으니 이 세상 밖의 일까지도 여러 가지로 생각되는구려. 작고한 에몬노카미는 어떤 경우에도 떠오르는 사람이지만, 특히 무슨 예술에나 조예가 깊었기에 이런 모임에 그 사람을 빠뜨리는 것은 세상의 풍취가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드오."
이렇게 말씀하신 원께서는 스스로의 연주에서도 슬픔이 배어나는지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미스 안의 온나 산노미야가 지금의 말을 귀담아들었을까 마음 한구석으로 생각하면서도 그러하였다. 이런 음악 모임이 있는 밤이면 가장 많은 이들이 그리워하는 에몬노카미였다. 제께서도 어유(御遊) 때마다 고인을 그리워하셨다.
"오늘 밤은 방울벌레의 연회로 밤을 새우자."
로쿠조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술잔이 두어 번 돌았을 때, 레이제이인으로부터 사자가 왔다. 궁중의 어유가 취소된 것을 아쉬워하여 사다이벤, 시키부노다유 및 그 밖의 사람들이 원께 찾아갔는데, 사다이쇼 등은 로쿠조원에 모시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원께서 보낸 서신에는,
구름 위 아득히 떨어진 내 거처에도 잊지 않고 찾아와 주었구나, 가을 밤의 달이여.
"기왕이면 달과 꽃을 즐기는 이 아까운 밤, 마음 통하는 이와 함께 보고 싶구려."
라고 적혀 있었다.
"저는 굳이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신분이면서도, 한가롭게 지내시는 원의 안부를 묻지 않은 저의 태만을 탓하며 몸소 이렇게 서신을 보내주셨으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로쿠조인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나 레이제이인으로 향하시게 되었다.
달빛은 같은 하늘 아래 비치건만, 내 숙소에서 보는 가을은 유독 색다르구나.
이 노래는 문학적 가치를 떠나, 레이제이인의 재위 시절과 오늘을 비교하며 쓸쓸해하시는 로쿠조인의 진심이 느껴졌다. 사자는 술잔을 하사받고 텐토(纏頭)를 받았다.
참석했던 이들의 수레를 나가는 순서대로 정리하고, 이곳저곳에서 전구를 하는 사람들이 문안을 오가는 통에 고요했던 음악의 밤도 흩어지고 말았다. 로쿠조인의 수레에 효부쿄 친왕도 동승하셨다. 사다이쇼, 사에몬노카미, 도산기 등도 모두 수행하며 나섰다. 다들 가벼운 노시 차림이었다가 시타가사네를 갖추어 인참(院參)을 올리게 되었다. 달이 제법 높아져 아름답게 깊어가는 밤에, 젊은 덴조비토 등으로 하여금 거창하지 않게 피리를 불게 하시며 비공(微行)으로 외출하시는 것이다. 위엄이 필요할 때는 격식을 갖추어 왕래하시지만, 오늘 밤은 예전의 히카루 겐지 대신의 기분으로 갑작스레 찾아뵈었기에 레이제이인은 매우 기뻐하셨다. 미모가 완벽한 레이제이인과 로쿠조인은 갈수록 다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한창 나이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신 임금께 로쿠조인은 슬픔을 느끼셨다. 이 밤에 지은 시가는 모두 매우 훌륭했으나, 일부만 서투른 필자가 옮겨 적는 것도 송구한 기분이 들어 모두 생략하기로 하였다. 새벽녘에 그 작품들이 강독되고,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원에서 퇴출하였다.
로쿠조인은 중궁의 거처 쪽으로 가셔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셨다.
"지금은 이렇게 한가하시니 수시로 찾아뵙고, 별다른 일은 없더라도 나이를 먹을수록 도리어 짙어지는 옛 추억에 관해 말씀도 나누고 듣고 싶은데 그 뜻을 이루기가 참으로 어렵구려. 출가를 한 것도 아니고 속인이라 하기에도 어정쩡한 몸이라 행동에 제약이 많소. 어느 쪽이든 나보다 뒤늦게 뜻을 세워 앞서 나아가는 구도자가 많으니 마음이 쓸쓸하고, 마음먹고 시골 절로 들어가 버릴까 하는 생각도 요즘 들어 부쩍 드는데, 남겨진 가족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시길 예전부터 부탁드려왔으나, 정말로 그렇게 될 때가 오면 부디 가엾게 여겨 주시오."
등등 로쿠조인은 진지한 모습으로 이야기하셨다. 지금도 젊고 여유로운 말투로 중궁은,
"궁중에 머물던 시절보다 뵐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도 예상치 못한 일이라 쓸쓸하군요. 여러분이 출가하시는 이 세상이라는 곳에서 저 또한 떠나고 싶은 소망을 품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상담드리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고 있답니다. 예전부터 무슨 일이든 힘이 되어주셔서 독립심이 사라진 모양이에요. 당신의 의견을 듣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랍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구려. 궁중에 계실 때는 일 년에 몇 번씩 친정에 다녀오시기를 즐겁게 기다릴 수 있었는데 말이오. 이제는 형식적인 휴가를 내어 친정에서 지내는 것도 불가능해진 처지이니 도리 없는 일이겠지요. 이제는 임금과 왕후라기보다는 한 집안의 부부와 같으니 말이오. 방금 하신 말씀이지만, 별로 염세적으로 될 이유도 없는 분이 단호하게 이 세상을 버리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겠지요. 우리조차도 막상 그러려고 하면 속박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오. 남 흉내를 내는 도심(道心)은 도리어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절대 안 될 일이오."
라고 원께서 만류하시자, 궁은 자신의 마음이 깊이 헤아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원망스럽게 생각하셨다. 어머니 미야스도코로의 영혼이 허공을 떠돌며 어떤 고통을 겪고 계실까 하는 점은 중궁의 꿈속에서도 잊히지 않는 일이었고, 지금도 사람들에게 고인을 미워하게 만들 뿐인 이름을 모노노케가 나와서 말한다는 사실도 로쿠조인은 끝까지 비밀로 하셨으나, 자연스레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어 귀에 들어오게 된 뒤로는, 어머니를 매우 가엾게 여기셨고 인생 그 자체까지 싫어지게 되어, 가설일지라도 미야스도코로의 모노노케가 했다는 말을 로쿠조인으로부터 직접 듣고 싶었으나 정면으로 물어볼 수는 없어서,
"어머니의 영혼이 죄 깊은 모습으로 고통받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비록 확실치는 않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건만, 그저 죽음으로 이별했다는 사실만 슬퍼했을 뿐 내세까지 생각하지 못한 미숙했던 저의 마음이 잘못이었습니다. 뒤늦게 깨닫고 보니 종교에 밝은 분께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졌고, 제 힘이 닿는 데까지 죄의 불꽃을 꺼뜨려 구원해 드리고 싶다는 바람도 일어났습니다."
등등 우회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런 결심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애처롭게 생각한 원께서는,
"불꽃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애욕의 마음을 그 누구도 버리지 못하는 법입니다. 목련(目蓮) 존자는 부처에 가까울 정도의 고승이셨기에 곧바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할 수 있었겠지만, 그 흉내를 낼 수도 없으면서 스스로의 화려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억지로 끊어버리는 것도 자신도 모르게 번뇌를 만드는 결과가 되지 않겠소? 서두르지 말고 그 길을 연구하도록 하시오. 다른 방법으로 고인의 망집을 풀어드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나 자신도 그것을 충분히 해드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일들이 많다 보니 머지않아 내 본의를 달성할 날이 오면 조용히 내 손으로 명복을 빌어줄 예정인데, 이것 또한 어설픈 마음이겠지요."
등으로 말씀하시며 인생의 덧없음과 싫어짐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아직 두 분 모두 출가하기에는 인연이 멀어 보이는 한창때의 모습으로 보였다.
어젯밤은 비공(微行)으로 원을 방문했으나, 오늘 아침은 이미 겉으로 준태상천황의 의식을 행할 수밖에 없어서 원에 모여 있던 고관들은 모두 호위하며 로쿠조인을 배웅하는 것이었다.
원께서는 동궁의 어머니인 뇨고가 교육한 보람이 보이는 행복한 여성이 된 것과, 누구보다 뛰어난 사다이쇼의 존재도 기쁘게 여기셨으나, 그 두 사람에게 품는 사랑은 레이제이인을 향한 사랑의 조각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레이제이인 또한 항상 그리워하면서도 쉽게 만나지 못하는 것을 아쉽게 여겨 현재의 처지를 일찍 선택하기도 하였다. 중궁은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전보다 어려워져 보통 가정의 부부처럼 항상 함께 지내며 행사 등은 예전보다 화려하게 치르시는 등, 어느 점으로 보아도 행복하였으나, 어머니 미야스도코로의 일로 오로지 신앙의 길로 나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품기도 하셨다. 아무도 동의해주지 않는 일이었기에 적어도 공덕을 쌓음으로써 죽은 영혼을 달래고자 하는 생각으로, 이전보다 더더욱 선근을 쌓기 위해 정진하셨다. 로쿠조인 또한 중궁의 뜻을 도와 조만간 법화경 팔강(八講)을 거행하게 할 예정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