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리 1
한 부인의 충실한 남편이라는 평판을 받으며 품행이 방정함을 내세우던 겐노 사다이쇼였으나, 이제는 온통 뇨니노미야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 되어, 세상에는 고인에 대한 우정을 저버리지 않는 척하면서도 줄곧 이치조 저택을 찾아가곤 했다. 게다가 이 상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각오가 세월이 갈수록 굳어지고 있었다. 이치조노 미야스도코로 역시 그를 보기 드문 지극한 정성을 가진 사람으로 여기며, 요즘 들어 더욱 방문객이 줄어들어 적막해지는 저택에 자주 발걸음을 옮기는 대장 덕분에 위로받는 일이 많았다. 처음부터 구혼자로 나타나지 않았던 자신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다가가는 것은 체면이 서지 않으니, 그저 진심으로 헌신하는 모습을 알아준다면 자연스레 궁의 마음이 자신에게 향할 것임이 분명하기에 때를 기다리자, 대장은 이렇게 생각하며 하루라도 빨리 궁과 가까워질 기회를 얻고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궁이 직접 말씀을 건네시는 일은 아직 전혀 없었다. 언젠가 좋은 기회를 잡아 자신이 품은 열정을 직접 고백하기도 하고, 궁의 모습도 자세히 보고 싶다고 대장은 마음속으로 바랐다.
미야스도코로는 모노노케로 인해 병세가 위중해져 히에이산 산기슭과 가까운 마을인 오노에 있는 별장으로 병상을 옮기게 되었다. 이전부터 기도를 부탁해 왔던, 모노노케를 퇴치하는 데 뛰어난 릿시가 히에이산 절에 틀어박혀 당분간 교토에는 내려오지 않겠다고 부처님께 맹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초빙하기에 편했기 때문이다. 그날 여러 대의 수레와 전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대장이 보내준 것이었다. 오히려 가시와기의 동생들은 각자의 일로 바빠서인지 그런 배려는 전혀 없는 듯했다. 사다이쇼는 형의 미망인인 궁을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은근히 청했다가 말도 안 된다는 식의 강한 거절을 당한 이후로는, 수치심 때문에 아예 출입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에 비해 대장은 매우 능숙한 방법을 취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수법을 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장은 스님들에게 줄 보시와 정의(淨衣) 따위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서 산장으로 보냈다. 그때 병자인 미야스도코로는 답장을 쓸 수 없는 상태였고, 여관들이 대신 인사장을 보내면 상대방의 호의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고, 궁께서 너무 거만하게 구는 것처럼 비칠까 봐 염려하여 궁께 청하자 궁이 대신 답장을 쓰셨다. 아름다운 글씨로 쓴 여유롭고 짧은 서신이었지만, 정겨운 맛이 있었기에 대장의 마음은 더욱 기울어 그 후로 자주 편지를 올리게 되었다. 결국 자신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다고 구모이노 카리 부인이 벌써 눈치채고 있음에 곤란해하며, 대장은 오노의 산장을 방문하고 싶으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팔월 스무날 무렵이라 들판의 풍경도 감상하기 좋은 때였기에, 산장에 거처하는 연인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 대장은,
"오랜만에 산에서 내려와 계신 어떤 릿시(律師)를 꼭 만나 상담할 일이 있었고, 병중이신 미야스도코로님의 별장에도 문병을 할 겸 오노에 가볼까 하오."
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대장은 저택을 나섰다. 전구(前驅)도 거창하게 하지 않고 친한 이들 서너 명을 가리기누 차림으로 동행하였다. 그리 깊은 산속은 아니지만 마쓰가사키 봉우리의 단풍 색깔은 험한 산이 아님에도 붉게 물들어, 기교를 부린 도읍 귀족들의 정원보다 더 아름다운 가을 정취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곳은 소박한 사립문조차 고아한 멋을 풍기게 둘러놓은, 임시 거처라지만 품격 있게 꾸며진 산장이었다. 침전이라 할 수 있는 중앙 건물의 동쪽 방에 기도단이 마련되어 있었고, 북쪽 방이 미야스도코로의 병실인 관계로 궁께서는 서쪽 방에 머물고 계셨다. 물괴(物怪)를 두려워한 미야스도코로는 궁을 경내의 저택에 머물게 하려 했으나, 어떻게든 함께 있고 싶다며 따라온 궁을 혹여 물괴가 다른 곳으로 퍼질까 봐 병실과는 조금 거리를 두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손님을 들일 방이 없었기에 궁께서 머무는 방과 발로 가려진 서쪽 툇마루에 딸린 방으로 대장을 안내했고, 상급 여관으로 보이는 이들이 미야스도코로와의 대화를 전하러 나왔다.
"참으로 황송할 따름입니다. 정성껏 자주 안부를 물어주신 데다 몸소 문병까지 와주신 당신께, 이제 곧 세상을 떠나게 되면 직접 사례를 올릴 수 없게 된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노력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미야스도코로가 보낸 인사였다.
"이곳으로 옮기시던 날 저도 배웅을 하고 싶었습니다만, 하필 로쿠조인의 잔무가 남아 있어 실례를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이런저런 바쁜 일이 생겨, 염려하는 마음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 본의 아니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등으로 대장은 전하게 하였다. 안쪽에는 궁께서 조용히 계셨는데, 소박한 산장이라 안쪽이라고 해도 그리 깊지는 않아서 젊은 내친왕님께서 그곳에 계신 기척이 대장에게는 잘 느껴졌다. 부드럽게 몸을 움직이시는 옷깃 스치는 소리에 궁께서 앉아 계신 곳이 짐작되었다. 영혼이 그곳으로 가버린 듯 멍한 기분이 들면서도, 미야스도코로의 병실과 이곳을 오가며 시중드는 여관들이 왕래하느라 지체되는 동안, 평소 대화 상대였던 쇼쇼나 다른 궁의 여관들을 상대로 대장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궁을 뵙기 시작한 지도 벌써 몇 년이라 해야 할지 모를 만큼 시간이 흘렀건만, 아직도 이토록 거리감 느껴지는 대우를 받고 있으니 원망스러운 마음뿐입니다. 이렇게 발 너머로 사람을 통해 희미한 말씀이나 전해 들을 뿐이 아닙니까. 저는 아직 이런 차가운 대우라는 것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얼마나 구식에 눈치 없는 남자로 여기고 계실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젊은 시절 마음 편한 위치에 있었을 때부터 줄곧 연애를 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살아왔다면, 이렇게 서툰 사랑의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저처럼 오랫동안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대장은 그 말대로 더 이상 경박한 다정다감한 청년이 아닌 중후한 풍채를 갖춘 인물이었기에, 그가 대뜸 꺼낸 말이 이것이었음을 알게 된 여관들은 올 것이 왔다는 불안감을 미리 품고 있었던 탓에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는 기분이었다.
"제가 서툰 인사를 했다가는 도리어 좋지 않으니, 당신이 좀 하시오."
모두가 이런 말을 남몰래 주고받다가,
"저토록 간절히 말씀하시는 분께 너무 무관심하게 대하지 않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뭐라 답변이라도 좀 해주십시오."
라고 궁께 아뢰자,
"병자가 직접 말씀을 올릴 수 없는 실례되는 상황이라 저라도 대신 만나 뵙고 싶습니다만, 병세가 한때 너무 좋지 않았던 탓에 저까지 건강을 해쳐 어쩔 수 없이 그리되었습니다."
이렇게 전하게 하셨다.
"그것이 궁님의 말씀입니까?"
라고 대장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미야스도코로님의 병세를 제 병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걱정하는 것이 무슨 이유겠습니까. 황송한 말씀이오나, 우울한 기분이 밝아지실 때까지 그분이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분께 헌신하는 마음으로, 제가 당신께 품은 진심을 알아주지 않으시는 것이 원망스럽습니다."
라고 대장은 말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라고 여관들이 거들었다.
해는 저물어 가고, 하늘도 몸에 사무치는 빛깔로 안개가 감싸고 있어 산그늘이 진 정원은 어둑어둑한 분위기 속에 쓰르라미가 쉴 새 없이 울어대고, 울타리의 패랭이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도 운치 있게 보였다. 덤불 속 관목과 풀꽃이 제멋대로 어우러진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아련히 서늘했다. 한편으로는 매섭게 부는 산바람이 소나무 가지를 울리고 있었고, 불단경을 외우는 스님들이 교대할 시간이 되어 종이 울리자, 마침 스님들의 읊조리는 소리와 새로 들어오는 스님의 목소리가 겹쳐져 한꺼번에 높이 울려 퍼지는 경 읽는 소리가 신성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모든 것이 사람의 마음을 쓸쓸하게 하였으니, 사랑에 빠진 대장의 상념은 깊어질 뿐이었다. 돌아갈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릿시가 가지를 하는 소리가 들리고, 다라니경을 쉰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미야스도코로의 병세가 악화된 것 같다며 여관들은 대부분 그쪽으로 가버렸고, 원래 요양처라 수행원을 다 데려온 것이 아니었기에 궁 곁을 지키는 여관은 적어, 궁은 홀로 쓸쓸히 상념에 잠겨 계신 듯했다. 무척이나 고요한 이런 때에 자신의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대장이 생각하고 있을 때, 밖에서는 안개가 처마 끝까지 밀려와 있었다.
"돌아갈 길조차 보이지 않게 된 이런 때에,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대장이 말하고는,
산마을의 애처로움을 더하는 저녁 안개에 밖으로 나설 마음조차 들지 않는구려.
라고 아뢰자,
산지기의 울타리를 감싸고 일어서는 안개도 마음이 딴 데 있는 사람을 붙잡지는 못하는구려.
이렇게 희미하게 답해주시는 우아한 궁의 모습이 기뻐, 대장은 돌아갈 생각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찌할 도리가 없군요. 길은 알 수 없게 되었고, 이곳에서는 쫓아내려 하시니. 누구나 겪을 일을 전혀 겪어보지 않고 시작하려는 사람은 곧 이런 일을 당하는 법이지요."
등으로 말하며 아예 이곳에 눌러앉을 기색을 보이고, 차마 숨길 수 없는 마음을 은근히 비치며 이야기를 나누는 대장을, 궁께서는 평소에도 그 마음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모르는 척하고 계셨다. 그런데 막상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을 들으니 그저 곤란할 따름이라 말씀을 더욱 아끼시게 되었고, 대장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며, 결단은 지금 하지 않으면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잡고 있었다. 동정심 없는 경솔한 사람으로 보인대도 어쩔 수 없으니, 적어도 오랫동안 간직해 온 괴로운 마음만이라도 속삭이고 싶다고 생각한 대장은 종자를 불렀는데, 본래 우코노에후의 쇼겐이었다가 5위가 된 남자가 나왔다. 대장은 그를 가까이 불러,
"이곳에 와 계신 릿시를 꼭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는데, 병자의 호신법 등을 행하시느라 피곤하실 테니 휴식도 취하셔야 할 것 같군. 나는 이곳에서 묵으며 초야의 예불이 끝날 무렵 릿시가 계신 곳으로 가려 하오. 두세 명만 이 산장에 남겨두고, 그 밖의 수행원들은 쿠루스노 장원이 가까울 테니 그쪽으로 모두 보내서 말에게 여물이라도 먹이게 하고, 이곳에서 소란스럽게 사람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해주게. 이런 외박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십상이니 조심하도록."
라고 명했다. 사정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그 남자는 물러갔다. 그러고 나서 대장은 뇨보에게,
"길도 알 수 없게 되었으니 여기서 신세를 좀 지겠소. 허락해주신다면 이 발 앞을 좀 빌려주시오. 아자리의 용무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말이오."
라고 태연한 태도로 말하였다.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 머문 적도 없었고, 경박한 말을 내뱉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곤란하다고 궁께서는 생각하셨다. 하지만 일부러 야단스럽게 옆방으로 옮겨가는 것도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닌 듯싶어, 그저 소리를 내지 않고 그대로 계셨다. 그러자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한 대장은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라는 듯 온갖 말을 다하였는데, 궁께 나아가던 여관의 뒤를 따라 슬며시 발을 걷고 들어왔다. 저녁 안개가 집 안으로 자욱하게 흘러 들어올 무렵이라 방 안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여관은 놀라 뒤를 돌아보았지만, 궁께서는 겁이 나서 북쪽 문 밖으로 기어 나가려 하셨다. 대장은 재빠르게 쫓아가 손으로 붙잡아 말리셨다. 이미 몸은 옆방으로 넘어가 있었으나 옷자락이 아직 이쪽으로 끌려 있었다. 문은 옆방 밖에서 잠글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기에, 문을 닫아 건 채 궁께서는 물처럼 떨고 계셨다. 여관들도 멍하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쪽 방에는 잠금장치가 있어도,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두 당혹해하였다. 무리하게 거칠게 궁의 옷에서 손을 떼어내게 할 만한 상대도 아니었다.
"존경해 마지않는 당신께서 이런 일을 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릴 듯이 물러가 주기를 간청하였으나,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을 어찌하여 당신들은 이상하게 여기는 것입니까. 보잘것없는 저이지만, 진심을 보여드린 지 오랜 세월이 흘렀을 터입니다."
라고 여관들에게 대답한 뒤, 대장은 우아한 침착함을 잃지 않은 채 이 아름다운 사랑을 이루어야 한다고 궁께 설득하였다. 궁께서는 동의하실 수 없었다. 이러한 모욕까지 참아야 하는가 하는 마음만이 솟구쳐 올라 아무 말씀도 하실 수 없었다.
"너무나 소녀 같지 않습니까. 참다못한 마음에 억지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실례임이 분명하나, 이 이상의 일을 허락 없이 하려 함은 아닙니다. 이 사랑 때문에 제가 얼마나 번민을 거듭해 왔는지 모릅니다. 제가 감추고 있어도 자연스레 눈에 띄었을 터인데, 억지로 차갑게 대하시니 저로서는 이 방법 외에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배려 없는 행동으로 미움을 산다 해도, 짝사랑의 괴로움만은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뿐입니다. 냉담하신 모습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황송하신 당신이시기에 결코, 결코."
라고 말하며 대장은 짐짓 동정심 깊은 태도를 보였다. 어느 정도까지는 닫히지 않는 문을 궁께서 붙잡고 계시는 것은 이보다 허술한 방어는 없을 상황이었으나, 대장은 억지로 열려 하지도 않았다.
"이것만으로 제 열정을 거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는 것이 가엾을 따름입니다."
라고 웃어 보였으나 곧 곁으로 다가갔다. 그렇지만 궁의 의지를 존중하여 억지는 부리지 못하는 대장이었다. 궁께서는 그리움과 부드러움, 귀부인다운 매력을 충분히 갖추고 계셨다. 계속된 상념 탓인지 가냘프게 여위신 모습이 옷 너머로 맞닿아 있는 대장에게 절실히 느껴졌다. 은은한 향기 속에 깊이 감싸여 계신 모습 또한 부드럽게 대장의 관능을 자극하는, 더없이 고상하고 가련한 분이셨다.
부는 바람이 사람을 심란하게 하는 산속의 깊은 밤이 되고, 벌레 소리와 사슴 울음소리, 폭포 소리가 뒤섞여 요염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기에, 그저 평범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가을의 애틋함과 산속의 정취에 눈을 떠 가슴 사무치는 그리움을 알 법한 산장에, 격자문도 내리지 않은 채로 떨어진 달빛이 스며들어 대장의 마음에도 비애를 느끼게 했다.
"아직 제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으시는 것을 보니, 저는 도리어 당신께 실망스럽습니다. 이렇게 어리석을 정도로 자신을 억제할 수 있는 남자는 달리 없으리라 생각하는데, 믿어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무슨 일을 해도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부류의 남자들은 저 같은 사람을 바보 같은 태도라 비웃으며, 즉시 동정도 없이 힘으로 해결하려 들 것입니다. 너무나 제 사랑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시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위험한 마음이 자라나는 기분이 듭니다. 남성이라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 과거에 전혀 모르셨던 당신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다그침을 당하는 궁께서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괴로워하셨다. 이미 처녀가 아니라는 점을 말로 넌지시 비치는 것이 궁께서는 안타까우셨다. 박명함이란 자신 같은 여성을 일컫는 것이리라며 슬퍼하시고는, 대장이 도전해 오는 것을 죽을 만큼 괴롭게 여기셨다.
"제 지금까지의 운명이 아무리 박복하다 한들, 그렇다고 해서 이를 긍정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