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침착하고 사내다운 거친 면이 없는 가오루였으나 더욱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기에, 나카노키미는 이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마음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옅어져 편안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몸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어떤 병환이신지요?"
등으로 가오루가 묻지만 부인에게서 시원한 대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평소보다 침울해 보이는 데에 이유가 있음을 알고 있는 가오루는 안쓰러운 마음에,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가짐 같은 것을 마치 형제라도 된 듯 가르치고 위로하며 이야기했다. 목소리 등도 특별히 많이 닮았다고 그 당시엔 생각지 않았으나, 가오루에게는 신기할 정도로 옛 사람 그대로 들리는 나카노키미의 목소리였다. 남 보기에 흉하지 않다면 미스(발)를 걷어 올리고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싶고, 병중인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번민이 이어지는 법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자신은 또다시 이런 마음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음을 가오루는 스스로 깨달았다.
"화려한 세상의 존재는 아닐지라도, 마음속 번민과 슬픔으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평생을 보내고 싶었건만, 제 마음 때문에 슬픔을 겪게 되고 어리석은 후회도 거듭하게 된 점이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은 관위가 뜻대로 오르지 않는 것을 가장 큰 탄식으로 여기지만, 제 탄식은 그보다 조금 더 죄가 깊으리라 생각됩니다."
등의 말을 하며 가오루는 가져온 꽃을 부채에 올려 보고 있었는데, 그사이 흰 나팔꽃이 붉은 기를 띠어 아름다운 빛깔로 보이기에 미스 안으로 조용히 꽃을 밀어 넣으며,
"다른 것에 비겨 보아야만 하리라, 하얀 이슬의 인연을 남기고 맺힌 아침 나팔꽃이여."
라고 말했다. 작위적이지도 않고 이 사람이 가져온 것도 아닐 텐데, 이슬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고 잘도 가져왔구나 싶어 나카노키미가 넋을 잃고 바라보는 사이 꽃은 눈앞에서 시들어갔다.
"사라지기 전에 시들어버린 꽃의 덧없음에, 뒤에 남은 이슬은 더욱 슬퍼지는구나."
"무엇에 걸려있는가?" (이슬 같은 목숨이여.)
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그 뒤로는 아무 말 없이 조심스럽게 입을 다물어버리는 나카노키미의 이런 모습 또한 고인과 너무나 닮았다고 생각하자, 가오루는 무엇보다도 그 점이 슬펐다.
"가을은 저를 더욱 우울하게 만듭니다. 마음을 달랠까 싶어 지난번에도 우지에 다녀왔습니다. 정원과 울타리가 실제로 황폐해져 있었기에, (마을은 황폐해지고 사람은 떠나버린 암자인가, 정원과 울타리엔 가을 들판이 펼쳐져 있구나) 견디기 힘든 기분을 느꼈습니다. 저의 아버지인 원(院)께서 돌아가신 후 만년에 출가하여 은거하셨던 사가노인도, 또 로쿠조인도 들여다보는 이들마다 울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나무와 풀의 빛깔에서도, 물줄기에서도 슬픔이 묻어나 다들 눈물에 젖어 돌아오곤 했습니다. 원의 곁에 계셨던 분들은 평범한 분이 하나 없이 모두 훌륭하신 분들이었으나 각자 다른 곳으로 흩어져 세상과는 격리된 생활을 지향하셨습니다. 또 그리 대단치 않은 처지의 여관들은 슬픔에 잠겨 이제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 산속으로 들어가거나 보잘것없는 시골 사람으로 전락하여 뿔뿔이 흩어져버렸습니다. 그렇게 고인의 집을 사실상 완전히 황폐하게 만든 뒤, 사다이진이 다시 와서 살게 되었고 친왕가(親王家) 분들도 각각 나뉘어 로쿠조인을 쓰게 되어 지금은 옛 로쿠조인이 재현된 꼴이 되었습니다. 그토록 커다란 슬픔을 겪은 뒤에도 세월이 흐르면 체념이라는 것이 생겨나는 모양인지, 슬픔에도 시간이 한계를 지어준다는 것을 그때 보았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옛 슬픔은 소년 시절의 일이었기에 비통하다 해도 그 비통함이 몸에 깊이 사무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최근에 겪은 슬픔의 꿈은 아직 거기서 깨어날 수도 어찌할 수도 없습니다. 둘 다 사별에 의한 감상인 점은 다르지 않으나, 부모의 죽음보다 죄 깊은 연인 관계였던 사람의 죽음 쪽에서 더 큰 고통을 느끼는 것조차 스스로 참으로 한심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며 우는 가오루에게서 배어 나오는 듯한 정의 깊음이 보였다. 오오히메기미를 알지도, 사랑하지도 않았던 사람이라도 가오루의 이토록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을 터인데, 하물며 나카노키미 자신도 요즘의 씁쓸한 상념으로 마음이 외로워져 평소보다 더욱 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던 참이었기에, 가오루의 슬픔을 보고는 그 마음이 더욱 사무쳐 말을 잇지 못할 지경이 되었고, 울음을 참지 못하는 것을 가오루 또한 알게 되어 서로가 안쓰럽게 여겼다.
"옛사람이 '산속 마을은 쓸쓸하기야 하지만, 세상의 괴로움보다는 살기 편하구나'라고 읊었듯이, 저도 비교해 볼 생각도 없이 경도에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만, 요즘 들어 아무래도 산속으로 들어가 조용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하지만 생각만 할 뿐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없어 벤노아마를 부러워할 따름입니다. 이번 달 스무날께에는 그곳 산사의 종소리를 들으며 묵도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는데, 당신의 호의로 남몰래 산장에 갈 수 있도록 해주실 수는 없을까요. 이런 의논을 드리고 싶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카노키미가 이렇게 말했다.
"우지를 아무리 그리워하신다 해도 그것은 무리입니다. 그 길을 견디며 부인이 쉽게 다녀올 수 있겠습니까. 남자조차 오가기 두려운 길인지라 저 같은 사람도 가야지 마음먹으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입니다. 궁의 기일(忌日)은 그 아자리를 시켜 모든 일을 다 부탁해 두었습니다. 산장 쪽은 제 소망을 말씀드리자면 부처님만을 위한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때때로 가서 보면 가슴 아픈 슬픔이 엄습하는 곳이니, 죄업을 소멸할 수 있는 절로 만들었으면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의견에 따라 무엇이든 결정하고 싶으니, 저렇게 하고 싶다거나 저래도 좋겠다는 등의 말씀을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 해주십시오. 어떤 일이라도 당신의 마음을 그대로 따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라고 말하며 가오루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권이나 불상 공양 등도 그는 또 우지에서 하려는 모양이었다. 나카노키미가 아버지 궁의 기일을 핑계 삼아 우지로 가서 그대로 틀어박히려는 데에 동의를 구하는 눈치임을 알고,
"우지로 틀어박히겠다는 그런 생각은 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지켜보십시오."
등으로 충고하기도 했다.
해가 높이 떠오르고 시종들이 모여드는 기색이기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도 남들에게 비밀스러운 일이 있는 것처럼 오해받을까 싶어 가오루는 돌아가려 하며,
"어디를 가도 미스 밖으로 쫓겨나는 듯한 대접을 받은 경험이 없어서 부끄러워지는군요. 또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고 나섰으나, 궁은 자신의 부재중을 골라 왜 왔느냐며 의심을 품을 만한 분이라고 가오루는 생각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사무라이도코로의 장인 우쿄다유를 불러,
"어젯밤 궁께서 어소를 나오셨다고 듣고 찾아뵈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기에 실망했습니다. 어소로 찾아가 뵙는 편이 좋을까요?"
라고 말했다.
"오늘 중으로는 돌아오실 것입니다."
"그럼 저녁에 다시 오지요."
가오루는 그렇게 니조 원을 나왔다. 나카노키미의 발 너머 기척을 느낄 때마다, 어째서 대부인(오오히메기미)이 바랐던 일을 자신은 거스르고 사려 깊지 못한 처사를 취했을까 후회만 끊임없이 밀려오는 것을, 어찌하여 자신은 이토록 고집스러운 마음인가 하고 가오루는 반성하기도 했다. 그는 아직 정진을 계속하며 집에서는 불공을 드리는 일만 하고 있었다. 어머니인 궁은 아직 젊고 의지가 약한 성품이셨지만, 가오루의 이런 생활을 위험한 것이라 여기고는,
"나는 이제 그리 오래 살지 못할 테니, 내가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행복한 모습으로 있어 주렴. 네가 불도에 입문하려 해도 나 자신이 비구니가 된 몸으로 말릴 수는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의 나는 그것을 쓸쓸하고도 슬프게 생각할 테니 결국 죄를 짓게 되겠구나."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가오루에게는 송구스럽고도 안타깝게 느껴져, 어머니인 궁이 계신 곳에서는 근심 없는 척하였다.
사다이진 가문에서는 동쪽 저택을 닦고 정돈하여 사위를 맞이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하고 효부쿄 친왕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보름이 지난 달이 꽤 높이 뜰 때까지 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마음이 내키지 않는 모양인 듯하여 장래가 어떻게 될지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사람을 보내보니, 저녁에 어소를 나와 니조인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기에 그런 것이라 여기며 다이진은 불쾌하게 여겼으나, 오늘 밤에 치러내지 않으면 세간의 이목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아들 도노 추조를 사자로 삼아 다음과 같은 노래를 보내었다.
달조차 머무는 나의 집에 그대 오시기를 기다리는 밤, 어느덧 깊어가건만 그대는 보이지 않는구려.
친왕은 이날 신혼을 치르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 앞에) 눈앞에 보이고 싶지 않으며, 그것은 너무나 잔혹한 일이라 생각하여 어소로 가셨던 것이었으나, 나카노키미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 어떠했는지, 궁께서 깊이 감동하시어 몰래 다시 니조인으로 들어가신 것이었다.
가련한 부인을 보고 있자니 차마 떠날 마음이 들지 않아, 안쓰러운 마음에 앞으로의 긴 세월을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거듭하게 했다. 하지만 나카노키미의 마음이 풀리지 않음을 알기에, 그를 달래어 함께 달을 감상하던 차에 사자인 도노 추조가 니조인에 도착했다. 부인은 지금까지도 많은 번민을 겪어왔으나 밖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 억누르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기에, 오늘 밤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태연한 모습인 것을 궁께서는 안타깝게 여기셨다. 도노 추조가 왔다는 기별을 듣자, 과연 궁께서는 그쪽 사람도 가엾게 여겨 떠나려 하시며,
"곧 돌아오겠습니다. 혼자 달을 보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불안할 때는 위험해서 걱정되니까요."
라고 말씀하시고는 겸연쩍은 기분으로 가려진 복도를 지나 침전으로 향하셨다. 그 뒷모습을 배웅하며 나카노키미는 베개마저 뜰 정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원망스러운 궁께 애정을 느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했건만, 어느덧 그쪽으로 마음이 끌려가고 있기에 원망이 생기는 것임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없이 자라, 세상에 애착이 없으시던 아버지를 유일한 의지처 삼아 그 적막한 우지의 산장에서 오래도록 지냈건만, 어느덧 그 생활에 익숙해져 적적함은 느낄지언정 지금처럼 사무치게 슬픈 줄은 산장 시절의 자신은 알지 못했다. 아버지와 언니를 여읜 뒤로는 잠시도 살 수 없을 듯 고인을 그리워하고 슬퍼했으나, 목숨은 부지하고 있었고, 자신을 경멸하던 이들이 생각한 것보다 행복한 날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 여기진 않았어도, 자신을 향한 궁의 태도에서 성실함도 느껴졌고 정실로 대우해주시니 겨우 마음의 짐도 덜어가던 차였다. 하지만 이번 새로운 결혼 소문이 사실로 다가옴에 따라 과거에는 몰랐던 고통에 몸을 담그게 되었다. 이제 궁과 자신 사이는 끝났다고 생각되었다. 사람이 죽은 경우와는 달라서 아무리 새 부인을 아끼시더라도 가끔은 찾아오실 법도 하건만, 오늘 밤 이렇게 외로운 자신을 두고 떠나시는 모습을 본 순간부터 과거도 미래도 캄캄한 듯 막막하고 심란하여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스스로도 너무 속이 좁은 것이 한심하여, 살아있으면 또 비관할 일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니 스스로를 달래보려 했으나, 오바스테야마의 달('내 마음 달랠 길 없으니, 사라시나의 오바스테야마에 비치는 달을 보며')만이 맑게 떠올라 밤이 깊어갈수록 번민은 더해갔다. 솔바람 소리도 거칠었던 산바람에 비하면 온화하여 좋은 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은 오늘 밤에는 들지 않고, 산의 구실잣밤나무 잎 소리보다도 못한 곳이라 나카노키미는 생각했다.
산속 마을 소나무 그늘 아래서도 이토록 가슴 사무치는 가을바람은 불지 않았건만.
과거의 슬픈 꿈은 잊어버린 것일까.
늙은 여방들이,
"이제 안으로 드십시오. 달을 오래 보는 것은 좋지 않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요새는 간단한 과자조차 들지 않으시니, 이러다 어떻게 되시려고 그러십니까. 좋지 않습니다. 예전의 슬픈 기억까지 저희에게 떠올리게 하시는 건 곤란합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이런 말을 했다. 젊은 여방들은 기구한 세상이라며 탄식하며,
"궁님의 새로운 결혼 소식, 정말 싫네요. 하지만 이 안주인님을 버리시지는 않겠지요. 아무리 새로운 부인을 얻으셔도, 처음에 깊이 사랑했던 사람에게는 정이 남는 법이라고 하니까요."
등의 말을 하는 것도 나카노키미의 귀에 들어왔다. 보기 흉한 일이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스스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 모르는 척하겠다고 그녀가 다짐하는 것은 남들에게 평을 듣지 않고 스스로 혼자서 궁을 원망하려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습니까? 궁님에 비하면 저 주나곤님의 정이 얼마나 깊은지."
라고 늙은 여종은 말하고는,
"저분의 부인이 되지 않고, 이쪽의 안주인이 되신 것도 알 수 없는 운명이지요."
이런 말들을 속삭이고 있었다.
궁께서는 나카노키미를 가엾게 여기면서도 새로운 사람에게 차례로 흥미를 느끼시는 성품이셨기에, 상대에게 사랑받을 만큼 아름답게 꾸미고 가고 싶은 마음에서 향을 듬뿍 피우고 나서신 모습은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젊은 귀인이셨다. 로쿠조인의 동쪽 저택 또한 화려했다. 작고 가냘픈 공주가 아니라 적당한 체격을 갖춘 신부였기에, 어떤 사람일까, 너무 미인티를 내는 유연함 없고 자존심 강한 여자는 아닐까, 그런 아내라면 싫어질 텐데 하고 처음에는 생각하셨으나, 그렇지 않은 듯 느껴졌는지 애정을 품으실 수 있었다. 가을의 긴 밤이었으나 늦게 오신 탓에 곧 날이 밝아왔다.
효부쿄 친왕은 돌아오셨어도 바로 서쪽 대(對)로 가실 수 없었다. 잠시 자신의 거처에서 휴식을 취하신 뒤 일어나 신부에게 보낼 편지를 쓰셨다. 그런 모습으로 보아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것도 아닌 듯하다며 여방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
"대(對)의 안주인님도 참 딱하시네요. 궁님께서 아무리 큰 애정을 가지고 계셔도 자연스레 기에 눌리는 일도 생길 테니까요."
궁과 주종 이상의 관계를 맺은 이들이 많았던 탓에, 이곳에서도 질투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쪽에서 오는 답장을 확인하고 가려던 궁이었으나, 헤어져 보낸 밤이 예사로운 밤이 아니었기에 나카노키미가 얼마나 외로워할지 걱정되어 그대로 서쪽 대(對)로 향하셨다. 밤사이 매무새를 다듬지 못한 부인의 얼굴에는 매우 아름답고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었고, 궁께서 오신 것을 알고도 누워 있는 것이 반감을 살까 싶어 몸을 살짝 일으킨 얼굴에 붉은 기가 감도는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예뻐 보였다. 아무 이유 없이 궁은 눈시울을 붉히며 잠시 지켜보셨는데, 나카노키미는 부끄러워 얼굴을 숙였다. 그렇게 고개를 숙인 부인의 머리카락이 늘어진 모양과 이마에 난 머리칼 등에서 궁은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셨다. 겸연쩍은 마음에 사랑의 말은 선뜻 나오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말을 돌리셨다.
"어찌하여 이토록 괴로운 기색만 보이는 것이오. 더위 때문이라고 그대가 말했기에 이제 시원해졌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얼굴이 밝지 않으니 좋지 않군요. 여러 기도를 올리고 있건만 효험이 없는 듯싶소. 그래도 기도는 조금 더 미루는 게 좋겠소. 효험을 잘 보일 만한 승려가 필요한데, 아무개 승도를 곁에 머물게 하여 그대 곁에 붙여두는 것이었거늘."